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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삼체 0 : 구상섬전
  • 류츠신
  • 17,010원 (10%940)
  • 2025-08-28
  • : 33,240

삼체 시리즈의 전사를 담았다고 하는 이 책을 펀딩 거의 막바지에 알게 되었다. 사실 굿즈는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나중에 주문해도 되었을텐데 본 김에 그냥 펀딩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주문해 받았다. 삼체 시리즈를 참 재밌게 읽었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문명의 역사와 과학 기술을 절묘하게 엮어냈기 때문이었다. 삼체 시리즈가 문명과 과학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과 미래를 좀 더 어둡게 그렸다면 구상섬전은 조금은 낙관적인 방향으로 이를 그려냈을 뿐 주제 의식은 비슷하다. 삼체에 나오는 ‘딩이’가 이 책에도 등장하는 등 연결 지점을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역자는 삼체 2, 3부를 번역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드라마인 ‘연화루’와 ‘마천대루’의 원작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참 매끄럽게 번역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만족스러웠다. 


번개 치는 밤 붉은 섬광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이는 주인공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바꾼다. 구형 번개(ball lightning)를 뜻하는 구상섬전(전자기파가 구형 안에 갇혀 있는 형태이며 선택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을 만나며 주인공은 물리과학에 미치게 되고 전공을 대기과학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류츠신은 실제로 1980년대 구상섬전 현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위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년 간 매몰되었으나 계속 실패한다. 


[60] 이때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안개가 걷혔다. 여름밤 하늘에는 찬란한 별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멀리 산 밑에는 타이안의 야경이 또 하나의 작은 별바다를 이루어 밤하늘이 마치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보였다.

린윈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멀리 가로등 불이 밝아오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듯이. 하늘에 별들이 떠오르네. 무수히 많은 가로등 불을 켜놓은 듯이.”

나도 그녀를 따라 읊었다.

“저 아득한 하늘에 분명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은 필시 이 세상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리라.” (궈모뤄의 ‘하늘의 거리’(1921) 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이 아름다운 밤 세상이 눈물 속에서 어룽지다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나는 내가 꿈을 좇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그런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깨달았다. 저 안개 속에 갇힌 난톈먼이 영영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는 영원히 산을 오를 것이다.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 자신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여 실패했음을 깨닫고 방향을 전환했는데 이후로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배울 부분이다. 늘 문제 앞에 서면 왜 머리가 빙빙 돌며 복잡해지는지.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나씩 해나가면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책에는 기술을 증오하면서도 기술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이 등장한다. 아이들을 납치하여 위협하고 발전소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을 감행하는 일 말이다. 

개발을 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술적 난관보다는 정신적 난관이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 군사 등 국방 쪽에 종사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보다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만든 기술이 긍정적인 곳에 쓰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악의로 접근하여 흉악한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테러 조직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조직의 이름은 ‘에덴동산’이었다. 핵(융합)도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현재는 자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용 물질로 쓰이는 것처럼.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긍정적인 기술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때론 후퇴했다가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과연 그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주인공이 구상섬전을 발견하기 위해 쫓는 과정, 결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낯선 용어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많지만 문장을 읽고 그림을 머릿 속에서 그리며 읽다 보면 어느새 푹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역시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읽지 않고 단 번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더 언급하는 것은 줄거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스포가 되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하겠다.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찡함과 울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무엇인지, 앞에서도 언급했듯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440]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고

나는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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