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거리의화가의 서재
  • [전자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조형근
  • 16,000원 (800)
  • 2024-09-23
  • : 590
시사인을 몇 년 이상 구독하면서 매주 꼬박꼬박 읽지는 못하지만 관심 가는 코너들이 있다.
저자도 시사인의 한 코너를 맡아 연재를 해왔던 칼럼들을 모아 이 책을 펴냈는데 나도 그 애독자 중 하나였다.
매주 시사인을 정독하지는 못해도 그 코너만큼은 꼭 읽고 넘어갔으니 말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관습과 통념에서 벗어나서 다르게 생각해보자 제안한다.
예를 들면 제국주의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에 대한 전후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
일본은 자신을 전범국가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그래도 사과라도 하고 반성이라도 하지 않았느냐는 우리의 통념 같은 것 말이다. 과연 그렇게 단순할까?

이 책은 다양한 지역의 역사를 다루는데 지리적 범위가 따지고 보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만큼 역사도 그만큼이나 다양하다.
챕터마다 한 지역의 역사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와 비교하여 제시해주며 말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자로서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생각하고 관련 자료를 찾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각 챕터의 역사에서 다루는 사건이 하나만이 아니고 관련 인물도 많다 보니 읽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여길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인물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사건을 다 파고들지 않아도 ‘오~ 이런 인물도 있었어? 이런 사건도 있었어?‘ 또 ‘아... 이렇게도 연결지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얻을 수 있다면 저자가 의도하고자 한 바가 독자에게 가 닿는 거라 여긴다.
나 또한 칼럼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 책으로 읽을 때도 챕터당 기억할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소개한 역사 속 빚어낸 사건과 인물이 흥미로워서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리샹란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몇 달전 한중일 근대 시기의 예술인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를 알게 되었기에 보자마자 반가웠다.
그녀는 만주국 배우이자 가수로 중국, 일본, 조선 삼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고위급 관리가 그녀의 팬을 자처했다고 하니(팬클럽이 있었다고) 든든한 후원으로 활동 내내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쟁이 끝나고 부역자로 체포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자신의 실제 국적이 일본인임을 고백한다. 중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였는데 이것이 그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헐리웃에 진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후에는 방송인으로 얼마 간 활동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나는 뒷 내용에 사실 놀랐는데 1990년대 위안부 고백이 시작되었을 때 위안부를 위한 운동가로 활약했다고. 만주국에서 노래를 하고 영화를 찍어 부역이 있었던 사람이 이런 활동을 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그녀가 심적으로나마 빚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떨쳐내려는 의도였을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추가로 언급할 인물은 진비후이(일본 이름으로는 리샹란과 이름이 같은 가와시마 요시코)다. 그는 청 황실의 친왕인 숙친왕의 14번째 딸로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금수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 첩자 노릇을 하며 특급 인재로 대우받았다고.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동양의 마타하리, 만주의 잔다르크일까. 리샹란은 일본 국적이라 매국노 처벌을 받지 못했지만 진비후이는 매국노로 1948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책의 제목과 동명인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어느 면으로 뜯어보나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태국-버마 전선 철도 공사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무척 위험한 난공사로 악명이 높았다. 이곳에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약 천여명이 투입되었음은 이학래의 회고록 등을 읽었던지라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최근 들어 고백한 영국 포로 부대원이었던 알리스터 어쿼트라는 사람의 회고록을 언급한다. 그는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가 사실을 포장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한다. 아무래도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영화는 습윤한 기후, 열악한 환경에 대한 상황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포로들에 대한 가혹 행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특히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은 악질적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또 그들 모두가 악질은 아니었고 일부는 그들에게 동정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하여 단체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모두가 다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집단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한데도 동화되어 잘못인지 인지조차 않고 가학 행위를 하는 경우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시선이 동양을 지배하던 관념인 오리엔탈리즘은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참을 이어졌다. 이를 그린 문화 예술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이른 시기 동양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나비부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기원을 따라가보면 <국화부인> 소설이 있다. 해군 장교를 지낸 피에르 로티가 1885년 일본 체류 당시 35세 나이에 18세의 일본 소녀와 일종의 계약결혼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결혼 계약에 들어가기 전 로티는 곧 자신이 프랑스로 돌아갈 몸이며 그 뒤에 소녀는 바로 일본인 남성과 재혼하게 될 것임을 양측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1880년 <로티의 결혼>을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나비부인은 이 모티브를 따와서 극화시켰던 것이다.
이후 베트남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미스 사이공>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크리스는 사이공에 있던 한 클럽에서 바걸로 일하던 베트남 소녀 킴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까지 가졌지만 이후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녀와 아이만 남고 만다는 이야기. 한편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영화화한 <지옥의 묵시록>도 있다. 소설 속 배경은 19세기 콩고였는데 영화는 이를 베트남으로 변경했다. 정글에 갇힌 병사들은 플레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아무튼 정글에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사들은 미쳐간다는 이야기다.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궁금했는데 덕분에 잘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얼마 전 읽은 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역사를 추가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사할린에는 총 인구의 5.5%로 약 3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어쩌다가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러일전쟁 때 승리한 일본은 사할린의 남부 땅을 얻어 그곳을 식민지화했다가 1943년에 본토로 편입하였다. 최초 한인 이주민들은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일부 건너간 사람들이 정착했다. 두 번째는 조선 내 일자리가 없어 자발적으로 떠난 경우다. 세 번째는 강제 징용으로 가게 된 경우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었음에도 이들은 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을까. 1946년 미소 간 협정이 이루어졌으나 귀환 대상은 일본인만이었고 조선인은 호적이 조선이라는 이유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1957년에서 1959년까지 진행된 소련과 일본 간 협상 때도 조선인은 논외 대상이었다. 그후로 수십년이 지난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가 이루어질 때 이들은 비로소 한국에 방문이 가능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들의 귀환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조차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할린 한인들은 이제 몇 세대가 지나갔을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넋놓고 있어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추가로 한 두개의 내용만 더 언급해보자.

우선 근대 시기 과학과 제국의 시대였으나 조선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과학은 유용성이나 편리함에 치중해 있다는 지적은 뼈아팠다. ‘세계적인 과학저술가 사이먼싱은 말한다. “기술은 삶(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반면,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호기심이다.”’ 우리가 받아들인 과학은 이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술 만능주의, 편리하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라는 식으로 수십년이 이어진 결과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곱씹어볼 부분이다.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지녔지만 다양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미륵은 압록강을 건너 독일에 정착했고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펴냈고 세계피압박 반제국주의의회 유일한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서양은 간도에서 독립군 군의 활동을 했고, 김필순은 독립 운동을, 그 아들인 김염은 중국에서 항일배우로 활동했다. 이태준은 난징,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의료 봉사를 했다. 유상규는 오롯이 계속 의사의 길을 고집한 경우다. 그러나 그도 민중을 위한 봉사를 하다 사망했다고. 지금 의료개혁 문제로 몇 년째 환자와 의사 간 갈등이 극도로 달해 있어서인지 이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깊었다.

이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이 책은 관련 자료를 직접 찾고 확인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는 따로 빼야하겠지만 음악 같은 경우는 책을 읽으면서 듣는다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는 개미일 따름이라고 주저하거나 세상 일에 관심을 등한시하며 살고 있지 않나. 그러나 작은 사람이라고 해서 역사의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작은 사람이야말로 역사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숙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말은 노트에 적어 두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들여다보고 싶은 말이었다. 좋은 책 감사하게 잘 읽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