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보단 영상적 이미지에 더 매혹되었고 때문에 소설을 포함한 문학보다는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았던, 반항적이고 외골수의 소년이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서가에 꽂혀있던『백경』읽고 일찌감치 항해사의 꿈을 키운다. 청소년 시절의 막연한 이상이나 바람이 아니었다. 소년은 항해사란 꿈을 위해 '국립 전파 고등학교'에 입학해 통신시가 되어 머나먼 대양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입학과 동시에 학교는 취미가 되어버리고 성적은 늘 바닥을 전전한다. 세월은 바다로부터 점차 그를 멀어지게 했고 어찌어찌 졸업과 동시에 '텔렉스 오퍼레이터'라는 셀러리맨으로서의 자리로 그를 데려다 놓았다. 이십 대 전후의 그에게, 누구와도 쉽게 협조할 줄 몰랐던 일본의 또다른 '홀든'에게, 조직에서의 봉급쟁이 생활이란 그야말로 악전고투일 뿐이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입사한 지 삼 년이 못돼 회사는 기울기 시작했고 샐러리맨으로서의 회의도 동시에 찾아온다. 그러다 '문득' 소설이란 걸 쓰려한다. 단지 연필과 노트, 사전이면 족할 뿐 더이상의 자본은 들지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틈틈히 소설을 썼고 문예지에 출품을 했다. 그리고 그는 1967년『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 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영예를 얻는다. '마루야마 겐지'다.
아버지의 영향과 외동아들이라는 가정적 환경 때문인지 소년은 일찌감치 문학에 매료되었다. 다만 당시의 일본문학이 아닌 스탕달과 도스토옙스키 등 미국과 유럽의 고전을 주로 읽었고 음악의 세계에도 좀더 깊숙이 빠져든다. 학교에 대한 불만은 있었겠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표출적인 저항이나 반항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그 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던 아이였다.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채 결혼과 동시에 '피터 캣'이란 재즈바를 운영하며 하루종일 재즈를 듣고 칵테일과 음식을 만든다. 그러던 맑게 갠 화창한 오후, 야구장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플레이를 보다 갑자기 '소설을 쓰자'고 결심한다. 가게를 운영하고 틈틈히 소설을 써나갔고 그것으로 그의 인생은 서른이 되기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의『잡문집』을 읽는 틈틈히 겐지의『소설가의 각오』를 읽었다. 스무 권이 넘는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왔고, 단 한 권의 겐지 작품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기묘할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등단은 너무도 급작스럽고 일반인의 시각에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어릴적부터 쌓였던 문학적 토양을 고려한다 해도 본격적인 문학적 수업이나 사사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날 문득 '소설을 써볼까'하는 결심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것이. 아마도 60~70년대에나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하지만 겐지와 하루키의 문학적 그리고 일상적 세계는 극단적이라 할만큼 대척점을 향해 갈라진건 아닐까란 생각이다. 어찌보면 문학적 場으로 들어가지 않고 '변방'에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이지만 아마도 겐지에겐 하루키의 포지션조차 지극히 세속적이고 혐오감을 불러오진 않을까. 그만큼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는 예외적이고 외골수이며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소설가의 각오』를 읽는 건 심히 불편하다. 어쩌면 불쾌하기까지 하다. 서른이 넘어『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으며 느꼈던 '홀든 콜필드'에 대한 불편함과는 농도가 다른 불편함이다. 여성에 대한 비하는 물론 자신을 찾아오는 독자들과 편집자들에 대한 편집광적인 비난들, 자신의 문학 외부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동시대적 문학에 대한 비판들은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빠진 작가의 외퉁수적 시선이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으로서만 말한다'라곤 하지만 에세이 또한 작가가 잉태한 자신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소설가의 각오』는 겐지의 순수 문학적 작품을 오히려 멀리하게끔 만들 정도였다.
어제 배달된 책중엔『달에 울다』가 포함되어 있다. 역시 그럼에도였다. 겐지의 일반인에 대한 성토는 그렇다쳐도 일본 문학계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비단 당시의 일본만의 풍경은 아닐터이다), 점점 세속화·상품화 되어가는 작가와 문단에 대한 일침은 분명 타당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북알프스의 산속에 들어가 작품을 쓸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만으로, 마치 수도승이나 '니어링부부'를 연상시키는 탈세속적 삶과 그 속에서 겐지가 추구하는("내게 유일한 관심사는 소설 언어라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를 마음껏 구사한 소설을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생물의 핵심에 얼마만큼 욕바할 수 있는") 문학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의 문학일까(책을 읽는 내내 그와 가장 근접한 작가가 떠올랐으니, '김훈'이다) 궁금했고, 세상과 인간적 관계를 져버린 채 오로지 홀로됨을 자처하며 끊임없이 문학의 광맥을 찾고자 하는 겐지,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문학 또한 얼마만큼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결정난다. 불안이나 고독에서 슬픔과 분노가 태어난다. 그 벽을 돌파한 곳에 나 자신의 혼이 있다. 거기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불안과 고독이야 말로 창조하는 자들의 보물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쓴 작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막의 바람 같이 습기 없는, 쨍쨍한 태양빛 아래서 이글이글 작열하는 소설이란 생각이든다.『달에 울다』의 표지에 실린 '겐지'의 얼굴은 '30 days of night'에 나오는 뱀파이어를 연상시킬만큼 섬뜩하다. 지구의 적도와 극지방을, 자연 앞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외소함, 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글쓰기와의 치열한 사투를 본격적으로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