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HOUM
  • 닥치고 정치
  • 김어준
  • 12,150원 (10%670)
  • 2011-10-05
  • : 27,967


'아마'나 '어쩌면'이 아닌,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열흘', 이후에나 돌아올 줄 알았다. 열흘 간 입을 옷부터 자칫 냉장고 안에서조차 푸른 꽃을 피울지도 모를 밑반찬들, 한 시간이 채 안될지라도 또 하루를 살아냈구나 자위해줄 수 있는 몇 권의 책들,을 챙겨 목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이르게 일이 끝나 버렸다. 여전히 다른 파트에 배치된 동료들은 바지런히 손을 놀리고들 있었지만 질끈 눈을 감는다. 어짜피 오늘보다 더 긴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여기까지,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꼼수다' 23회를 한 주 더 기다린다는 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고문이다. '나꼼수'는 이미 어딕션의 단계로 들어가 버렸다. (스마트폰도 아니고, 사무실 컴퓨터론 이어폰을 꽂아도 소리가 없다. 적막하다. 그렇다고 업무에만 집중하라는 작은 '가카'들의 넓은 아량 때문은, 물론 아니다. 그냥 오래된 컴일 뿐이다.)
 



 

 

총수는 책의 마지막에 "나는 잘생겼다! 크하하하"라고 했지만 역시, 사족일 뿐이다. 『닥치고 정치』를 읽고 나면 표지에서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듯 한껏 X폼을 잡고 있는 총수가 '톰 크루즈'나 '조지 클루니'보다 멋져 보지이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 있어 일찍 파했던 수요일, 책의 반을 읽었고 나머지는 퇴근 후 한 시간 남짓 정도만 읽었을 뿐이지만 녹취록을 문자로 옮긴 책이니만큼 가독성이 엄청나다. 여담이지만, 항상 머리맡에 두고 출근한 후 이슥한 밤이 되어서야 총수를 만날 수 있었는데 어머님이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시는, 아니 혐오하시는 남자가 긴머리의 또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다. 책표지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총수, 긴 머리에 콧수염까지 기른 총수. 언제라도 어머니 눈에 발각되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 한마디가 없으셨다. 제 딴엔 또, 그게 서운하다.

 
뭐랄까, 외모나 스타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은 집에 있는 정치철학분야의 저자들, 가령 비슷한 덩치에 콧수염을 가진 지젝, 천상 선비 이미지의 고진이나 바디우, 바우만 그리고 국내저자로는 논리와 사상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김규항과 진중권, 모두와 맞짱을 뜬다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노빠' 였거나 일개 범부적 정치의식의 한계 내에 있기 때문이라 해도 좋다. 언제나 합리성과 이성에 밀려 뒤쳐져야 했던 값싼 '감정'을 내세워 정치를 논한다는 점, 아니면 눈앞의 집권을 위해 원대한 대의나 절대적 이상을 무시한 듯한 언설은 좌나 우, 모두로부터 손가락질 받거나 혀를 내두르게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은 김어준이란 사람 자체를 고려의 대상에서 일찌감치 배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총수에게 무쟈게 공감한다. 공감을 넘어, 그의 예언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부터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하나하나 실현되어가는 과정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싶다.

 

市場의 언어로 썰을 풀어놓지만 그래서 그의 언어엔 생동감이 넘쳐난다. 누구나? 누구나! 노력만하면 지적 담론을 풀어놓을 수는 있다. 그리고 누구나? 누구나! 관념적 이상을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스스로는 고귀해질 수 있을테니. 하지만 나는, 우리는 생활인이고 우리는 매일처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사람을 만나고, 생활을 지속한다.

2002년 대선 때의 흥분, 근 십년 만에 총수는 그 당시의 흥분에 불을 댕겼다. 말미에 했던 '나꼼수'는 이미 그가 한 예언이 실현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선동'이라 타박해도 좋다. 그런 선동이라면 쌍수들고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 주변에 있는 한 두명쯤은 헤드락을 걸어서라도 그 선동에 동참하게 만들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난, 확실히, 이번엔 바뀔 수 있다!, 라고 자신'했다.' 그건 바람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이것이, 어쩌면, 주관적 보편성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게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뀔 수도 있다!'의 '느낌표'는 언제라도 '물음표'로 대체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오늘 아침. (어째서 그런 대화가 연출되었나는 모르겠다.)
 

"엄마, 안철수하고 박근혜하고 대선에 나오면 누구 찍을꺼야?"
"나야, 당연히 박근혜한테 표 주지. 여기 동네 아줌마들은 다 박근혜야" "아~~~~왜!"
"안철수 나오면, 민주당으로 나올테고...난 손학규가 싫더라, 웬지. 만약 안철수가 되면 손학규도 한 자리 떡 차지할텐데...난 그꼴 못봐"
"에이, 그럼, 그럼 이명박은 좋아?" "싫지" "근데 왜 박근혜야"
"그냥" (말그대로 여기엔 논리도 이성도 없다. 그냥이면 된다. 누나는 좋겠다. '시바')
 

저녁에 동기들이 잠깐 다녀갔다.
"나는 꼼수다 알아"
남자동기 "그게 뭔데? 그런게 있어?"
여자동기 "어 알지, 근데 그런걸 뭐하러 들어"
나..."웁스"
나 "너 이번에 나경원 찍을거야 박원순 찍을거야"
여자동기(서울집) "나!, 투표 안 할 건데"
나(속으로) '시바'

총수는 좀더 분발해 줘야겠다. 제발 저 '물음표'를 앞으로 남은 일 년 동안 부지런히 지워나가려면 지금보다 쬐끔 더 해줘야겠다. 그러니 총수는 주일 방송을 1회 늘려 주 2회 방송으로 '나꼼수'를 증편한는 것도, 심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갑갑증이 남는다. 침울하다.

우리,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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