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을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읽게 되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책을 읽고난 뒤의 '충격'이랄까, '전율' 같은 것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독서가 주었던 몇 안되는 '사건'들 중의 하나임엔 분명하게 각인돼 있다. 『다시쓰는한국현대사』, 『전태일평전』, 『숙명의 트라이앵글』 등이 이 순간 생각나는 그런 '독서적 사건'의 지층들이었다. 그럼에도 그와의 인연이 기묘했던 건 위의 세 권의 책들이 순수한 의지와 결정에 의해 선택되었다면, 공대생이었던, 더우기 지금과 같은 독서편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푸코'라는 저자를,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어떻게 접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조차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놉티콘'이란 '원형감옥'에 대해서 수업 중에-전공이 건축이었기에-스쳐지나가듯 언급이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던 건 아닐까...란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확신할 순 없다.아무튼 '푸코'는 나에게 '마르크스'보다 먼저 도착한 철학자였고 지금에와선 '지젝'과 나란히 서가에서 자신의 존재를 가장 크게 외치는 '철학자'가 되어버렸다.
『푸코에게 역사의문법을 배우다』는 '역사'라는 하나의 창을 통해 바라 본 '푸코'라는 '미시사'다. 그렇기에 푸코의 전체상을 조망할 순 없다.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두 권에 시선이 집중된 탓에 보다 철학적 색채를 띠고 있는 『지식의 고고학』이나 『말과 사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안내서'가 되기에도 부족하다. 그것은 물론 '푸코'가 성취한 학문적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푸코와의 인연의 시간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에리봉'의 『미셸 푸코』를 읽어보지 못했던 관계로 '푸코'라는 인물의 실존적 삶을, 그리고 푸코가 천착했던 '이성과 비이성',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는 근대의 이면들이 '푸코'의 개인적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주제였음을 이 책을 통해서, '이제서야' 알게되었던 것은 재미난 '수확'이었다.
상류계급에 속했던, '일류'라는 엘리트 코스를 무난히(!) 밟아나가는 '푸코'는 그럼에도 자신의 계급에 동화되지 못하는 '광인'이었으며 '동성애자'라는 '비정상인'이었다. 푸코의 위대함은 그러한 자신의 '소외'와 '비동일성'을 주관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소외' '비동일성'이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연구함으로써 '근대적 이성'이 어떻게 '타자화'와 '배제'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는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비판은 단지 학제적 담론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정보모임(GIP)과 같은 실천적 활동을 통해 '사르트를'를 잇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자신이 받아낸 시간의 양은 제각기 다르다. 충분히 무거워질만큼 무거워진 나의 바구니는 점점더 '권력' '담론' '실증적 연구' '저항' 이라는 기표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인문' '철학'이라는 주제들이 공허한 것은 아닌가라는 회의가 짙어지게 한다. '권력은 획일화되거나 가시적인 것이 아닌 사방에 배치되어있고 따라서 저항은 한 곳에 집중될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성이 광기를 어떻게 배제해왔고 정상은 비정상을 어떻게 타자화 시켰는가' 등등은, 월요일 아침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 더이상 '소통' '유통'되지 못하고 방부제로 살균처리 되고 만다. 아니 오히려 일상에서 '푸코'는 '짐바브웨'의 대통령에 대하 말하는 것이(솔직히 나도 모른다) 좀더 현실적일만큼 낯선 존재다.
점심을 먹다가, "광기와 비정상은 이성과 '지식-담론-권력'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야"
"뭐라는 거야, 그럼, 연쇄살인자들은, 걔네들 미친거 아니었어? 그런 범죄자들은 싹다 죽이거나 병원에 가두는 게 그럼 잘못이야!"
뭐, 이런 정도의 대화는 유통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책은 끝까지 읽었고 우연치 않게 마지막에 '얼 쇼리스'가 말한 대목을 읽고서야 '그럼에도'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었다.
"(...)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무조건 반응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해서 잘 대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공부입니다. 인문학은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입니다.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정치를 '가족에서부터 이웃, 더 나아가 지역과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부자들은 이런 넓은 의미로 정치를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력을 즉각 사용하지 않고 협상하는 법을 배웁니다." (p3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