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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도 늘 SNS용으로 짧은 글만 써대는 요즘. 오랜만에 추천도서를 올려본다. 우연히 떠오른 책이 있었고, 작정하고 읽은 책이 있었다. 한창훈 쌤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와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이다. 둘다 애정하는 작가라고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만, 이번 두 작품만큼은 아예 강추를 하며 무조건 읽어보라 하고 다닌다. 그만큼 나에게는 감동과 공감을 주었던 책이기 때문.

 

 

 

_일본어로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괴팍한 일본인 교사들에게 배운 말이었지만 일본어는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였다.

_그런데 쇼코가 나타나자 할아버지는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일본어로 말하면서 시시때때로 껄껄댔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많이 하는 모습을 본 전 그때가 처음이었다.


_할아버지는 쇼코에게 자신을 '미스터 김'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쇼코와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다 늙은 교장선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면서.


 

위의 글은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에서 할아버지에 관한 부분들이다. 단편이라고 하기엔 좀 긴 분량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뭔지 모를 공감이 가득했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그래서 공감을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비밀독서단에서 김연수 작가가 말했는데,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아마 할아버지를 이해했던 것 같다.

 

다시 읽으며 내가 그때(그러니까, 『2014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도대체 무엇에 공감을 해서 다른 좋은 작품들을 제치고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 젤 좋더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어제, 비밀독서단에서 「쇼코의 미소」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걸 듣다가 문득, 아! 그랬구나,했다.


 

그랬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공감을 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이해가 되었고, 그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암튼,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적다 보니, 괜히 울컥해져서 한참동안 천장만 바라보았다.

 

 

 

 

 

"바다의 특징은 잔잔하거나 파도가 치거나 똑같이 한다는 것이에요. 그제는 한 팔 정도의 파도가 쳤는데 모두 그 높이였어요. 어제는 가문비나무 높이만큼 치솟았는데 모든 파도가 그랬어요. 오늘은 보시다시피 똑같이 잔잔해요."

"과연 그렇군."

모여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도처럼 하면 되겠군."

드디어 그들은 법을 만들었다.

법은 이랬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그들은 그 법으로 살았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았기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낮지 않았다. 그들은 그 법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만나면 서로 손을 뻗어 어깨에 대는 것으로 인사를 했다. 그 인사는 '저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었다. 아무도 법을 더 만들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선을 잡고 열매를 주워 말렸다.


이제는 파면되었다고 하는, 나라의 교육부에서 정책을 기획(!)하던 분이 개돼지 발언을 한 날, 기사를 읽다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기사를 읽다가도 책을 떠올리는 1인) 떠올린 책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였다.

 

 

책은 다섯 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겨우 176쪽의 책이고, 일러스트가 들어 있는 터라 소설이라기보다는 우화에 가깝다. 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이 되어 있어 연작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마다 다른데,  ‘물질과 소유 중심주의’, ‘소통과 공감의 부재’, ‘성공 지상주의’,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주의’, ‘독재의 폐해에 시달리는 사회’를 풍자했다. 이중 그 기사를 읽고 떠올랐던 작품은 첫번째 이야기인 「그 나라로 간 사람들」이었다. 평등이랄까, 소유랄까, 욕심이 없달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달랐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은 곳,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과 대화를 이끌어주는 사람, 무슨 일이든 성공보다는 좋아서 해도 되는 곳이며,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 우선인 곳. '신분'이라는 말은 당연히 모를 것이며 빈부격차는커녕 권력의 힘조차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그곳이다,  그날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를 떠올리며 그저 그런 곳이 그리웠던 것이다. 개돼지로 살아가야하는 이곳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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