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뇌수의 한구석에서, 기도란 반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 번갯불처럼 번득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성교와 마찬가지로 반복이 기도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이건 나무관세음보살이건 상관없다. 모든 쾌감의 본질은 반복이다. 기도와 성행위가 바로 그런 점에서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종교의 진정한 쾌락을 이해해가고 있었다. 자아 없는 반복. 그것이 최고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을 혐오하고 기피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불에 데인 것 같은 짜릿한 쾌락으로 사람을 매혹시키며, 기도보다 더 알기 쉽게 자아 없는 반복의 경지로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라는 인내를 요하는 자발적 행위의 결과로 달성되는 자아 없는 반복보다도, 본능에 따를 뿐인 성적 반복의 결과로 달성되는 자아 상실 쪽이 더 알기 쉽고, 실천하기 쉽고, 생과 사의 단순 모델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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