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난후 갑자기 동생친구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랑 나랑 한잔 하고 싶다고.한참 김장용 마늘을 까고 계시던 엄마는 바톤을 나한테 넘기셨고, 결국 집앞으로 온 동생친구녀석과 히레 사케를 마시게 되었다.
난 이제까지 살면서 내동생과도 술을 마신적이 없었고, 동생녀석 군대면회도 간적이 한번 없었지만( 내동생은 용산 미8군에 있었고,매주 금욜마다 집에 왔다.도무지 면회를 가고 싶어도 갈 틈이 없었다), 동생 친구와는 3번정도 술을 마셨고, 강원도로 놀러가다가 군대 면회까지도 간적이 있다.
어머니가 요즘 항암치료를 받으셔서 갑자기 우리엄마 생각이 나서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들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물었는데 어제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고,오늘같은 내일을 맞이할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요즘 무지 힘든일이 있었고, 그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좀 나아질지도 몰라라는 말을 혼자서 마구 속으로 해댔다.
난 술을 마시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지나온 날들을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들리지 않게 난 너무너무 힘들고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혼자 속으로 지껄여대었다. 사케 2잔을 마시면서 아마 그 녀석도 나에겐 들리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속으로 했을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둘은 서로에게 그동안 있었던 무수한 이야기들을 했을것이다. 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난 그녀석이 엄마 가져다 드리라고 사준 피칸 파이를 신나게 들고 들어왔고, 가슴 속에 막혀있던 길 하나를 뚫고 왔다. 그녀석도 그렇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