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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너 마저?"


(카이사르 암살)

 

이 짧은 대사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말도 드물지 싶습니다. 이 말은 사회생활 경험이 일천한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서도 패러디로 널리 쓰일 정도이지요. 누구나 한 번만 들으면 금세 '상황 파악'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아무개, 너 마저?" 라고 외칠 만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맞닥뜨렸던가요.

 

고대 로마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했던 저도 저 짧은 대사만큼은 부지불식간에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제가 품었던 생각은 이랬습니다. '브루투스는 '참 나쁜 사람'이었구나, 카이사르가 자신을 그토록 믿고 아껴주었는데 어떻게 그 끔찍한 '암살'에 가담하게 되었을까?' 그런 오해와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마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거듭 읽고 나서였지 싶습니다. 몽테뉴가 '저 위대한 브루투스'라고 말하며 칭송을 거듭할 때까지도 저는 브루투스의 위대성을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으니까요.


(플루타르코스의 작품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영웅전』에는 '카이사르 암살 장면'이 두 번씩이나 거듭해서 나오는데, 한 번은 「카이사르 편」에서, 다른 한 번은「브루투스 편」에서였지요. 그런데 플루타르코스가 쓴 책에는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표현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습니다. 두 사람씩 짝지어 대비시킨 23쌍 46명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 가운데 「카이사르 편」을 거듭 뒤져 봐도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말고는 더 이상 인상적인 대사는 없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장면에서 플루타르코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카이사르의 목소리는 기껏해야 "비겁한 놈! 카스카, 이게 무슨 짓인가?"가 전부입니다. 「브루투스 편」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일부러 살짝 비틀어 번역한 "카스카, 이 못된 놈! 이게 무슨 짓이냐?"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유명한 대사는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습니다!

 

        카스카

손이여 말해 다오!  (그들이 시저를 찌른다.)

 

           시저

브루투스, 너 마저? ㅡ 그럼 시저, 죽으리라. (죽는다.)

 

           신나

자유다! 해방이다! 독재는 무너졌다!

뛰어가서 공포하라, 길거리에 외쳐라.

 

 - 『줄리어스 시저』, <3막 1장> 중에서

 

 

이 '역사적인 장면'에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그 유명한 말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천병희 선생님이 열 명의 영웅전만 발췌 번역한 한 권짜리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브루투스도 카이사르의 아랫배에 일격을 가했다. 일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항하며 그들의 가격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으나 브루투스가 단검을 빼어든 것을 보자 머리에 토가를 뒤집어쓰고는 …… 폼페이우스의 입상이 서 있던 대좌에 쓰러졌다고 한다. (550쪽)

 

주석)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내 아들아, 너 마저?"(kai su, teknon?)라는 유명한 그리스 말은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82장에 기록되어 있다. "브루투스여, 너 마저?" 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온다.

 

 - 천병희 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에서

 

이 짧은 주석이야말로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국가 원수 시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의 정답을 제시하는 셈인데, 이 주석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죽으며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말 "내 아들아, 너 마저?"라는 말은 결코 카이사르가 죽을 때 정신줄을 놓으며 내뱉은 '헛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간의 사정을 플루타르코스의 설명을 통해 좀 더 알아 보지요.


(마르쿠스 브루투스)

 

카이사르도 브루투스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부하들에게, 전투를 할 때에도 브루투스는 죽이지 말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만일 그가 항복하면 자기에게 데려오고,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절대로 다치게 하지 말고 도망가도록 놓아두라고 했다. 카이사르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브루투스 어머니인 세르빌리아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에 세르빌리아를 알게 되어 한때 서로 깊이 사랑했던 사이였다. 브루투스가 태어난 것도 바로 그 무렵 일이었으므로 카이사르는 어쩌면 그가 자기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언젠가 로마를 뒤엎으려는 카틸리나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 원로원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였다. 서로 반대 의견을 주장하던 카토와 카이사르는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때 카이사르에게 쪽지 한 장이 전해졌고, 이를 본 카토는 분명히 적과 내통하는 자들로부터 온 편지일 것이라며 카이사르를 공격했다. 다른 의원들까지 카이사르를 몰아세웠으므로 카이사르는 하는 수 없이 그 쪽지를 카토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카토의 누이인 세르빌리아가 카이사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였다. 카토는 그 편지를 카이사르에게 도로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술주정꾼 같으니라고. 어서 가져가게."


카토는 다시 회의에 정신을 쏟았다.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졌을 만큼 유명했다.(1775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이쯤에서 다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잠시 되돌아가 보지요. 셰익스피어가 쓴『줄리어스 시저』에서는 모두 여덞 명의 등장인물이 죽는데, 카이사르가 맨 처음으로 죽고, 브루투스는 맨 나중에 죽습니다. 이 극의 핵심 주제는 그토록 위대했던 두 사람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 그리고 그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드러나지요. 그 주제는 '이상주의'입니다. 로마의 기나긴 역사를 통해 볼 때 브루투스만큼 '고귀한 성품'을 지닌 인물도 드물었습니다. 
브루투스의 이상주의는 '공화정 옹호와 독재 반대'로 나타나면서 불가피하게 카이사르의 암살로 이어집니다. 브루투스가 생각하는 공화정 최고의 가치는 '자유'였습니다. 그로서는 이 자유가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왕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유 수호'를 위해서 그는 기꺼이 자신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이상주의와 현실의 충돌'은 극의 도입부에서부터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카이사르의 개선 장면에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을 보고 한심해 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왜 축하해? 그가 뭘 정복해서 가져오지?

어떤 조공 사신들이 포로 되어 묶인 채

전차 바퀴 장식하며 로마로 따라오지?

 

로마 시민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폼페이우스가 개선할 때 카이사르와 똑같은 방식으로 열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죽이고 돌아오는 지금도 로마 시민들의 반응은 똑같았습니다. 로마의 군중들은 "목석 같은 멍청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욕을 잔뜩 먹었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등장시킨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였지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일 뿐인 국가 지도자를 보면서, 매번 똑같은 역할을 떠맡지만 '등장 인물'만 바뀔 뿐인데 거기에 매번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을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꾸짖었던 셈이었습니다.


(카이사르 동상)

 

이제부터는 '카이사르 암살'에 대한 브루투스의 태도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했을 만큼 나쁜 인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사정을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는 뜻밖에도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먼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까지도 이 사건에 희미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그러나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음모를 꾸미게 된 까닭은 카시우스와는 좀 다르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편지들이 그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어떤 시민은 옛날에 왕정을 뒤엎었던 유니우스 브루투스 동상에 이런 글을 새기기도 했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브루투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법무관인 브루투스가 법정에 나갈 때면, 그의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쪽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브루투스, 아직도 잠자고 있는가?"

 

"당신이 진정한 브루투스인가?"

 

하지만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하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까닭은 카이사르에게 아첨하는 이들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들은 민중의 이름을 빌려 카이사르에게 온갖 영광을 주려 했고, 한밤에 몰래 카이사르 동상 위에 왕관을 씌워놓아, 집정관을 넘어서 왕으로 내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카이사르 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177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유니우스 브루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했던 인물은 브루투스의 의동생이었던 카시우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브루투스와 카이사르 사이의 돈독한 관계 때문에 브루투스에게 '자신의 의중'을 솔직히 밝힐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브루투스를 암살 계획에 가담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카시우스는 마침내 그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카시우스가 브루투스를 설득하는 대사가 매우 길지만 거기에서도 역시 '또 한 명의 브루투스'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이 시저가 무엇을 먹었기에

이렇게 커졌지? 시대여, 넌 창피당했다!

로마여, 네 고귀한 혈통은 다 사라졌다!

대홍수 이래로 어느 한 시대가

한 사람만으로 유명한 적 있었단 말인가?

지금까지 로마를 얘기할 때 그 누가

그 넓은 거리가 한 사람만 품었다 할 수 있나?

오로지 한 사람만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게다가 여지가 충분한 로마로다.

오, 자네와 난 선친들이 하는 얘기 들었지,

일찍이 또 한 명의 브루투스는 로마에서

왕이 쉽게 자기 옥좌 지키게 하느니

영원한 마왕이 그러도록 놔뒀을 거라고.


(『줄리어스 시저 』, <1막 2장>)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를 쓰면서 참고한 책이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었습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가 쓴 원전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원작'보다 훨씬 더 생생한 극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것도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말이지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플루타르코스는 과연 어떻게 썼는지 살펴 보면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이 얼마나 독자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하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은 유니우스 브루투스이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왕정을 몰락시킴으로, 로마인들은 그가 칼을 빼들고 선 동상을 카피톨리움에 있는 왕들 동상 사이에 세웠다. 성격이 지나치게 강직한 그는 남들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학문으로도 그런 성격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독재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독재자와 공모한 자기 아들들까지 모두 사형시켰다.

 

그러나 이제부터 쓰려는 브루투스는 성격이 유순한 데다가 철학과 학문을 갈고닦아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롭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성품으로 나랏일에 헌신했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에 좋은 일들은 모두 브루투스 공으로 돌리고, 나쁘거나 잔인한 일들은 브루투스의 친척이자 친구인 카시우스 잘못으로 돌렸다. 그만큼 카시우스는 정직함이나 동기의 순수함에서 브루투스를 따라가지 못했다. ……

 

브루투스의 어머니 세르빌리아는 철학자 카토와 남매 사이였다. 브루투스는 로마 사람들 가운데 외삼촌인 카토를 가장 존경했으며, 뒷날 카토의 딸 포르키아를 아내로 삼았다.(1772∼1773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브루투스 가계도)

 

이런저런 이유로 마침내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계획에 합류하게 되고, 암살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비밀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훗날 마키아벨리가 쓴 『로마사론』에서도 <음모에 대하여>라는 유명한 장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과 함께 치밀하게 분석되어 있는데, 카이사르 암살 음모가 실행 전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탄로날 위험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암살 계획에 뒤늦게 합류한 브루투스가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그의 아내 포르키아였습니다.

 

브루투스는 이제 용맹과 문벌에서 로마 으뜸가는 인물들 운명이 모두 자기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 밖에서는 행동을 조심하면서 여느 때처럼 일을 처리했지만, 일단 집 안에 들어온 뒤에는 여러 문제들로 고민하며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러나 한방을 쓰는 아내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중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거나, 아니면 매우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는 카토의 딸로, 두 사람은 사촌 간이었다. 포르키아는 젊었을 때 첫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 비불루스를 데리고 브루투스와 재혼했다. 비불루스는 뒷날 《브루투스 회상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철학을 사랑했으며, 용기도 뛰어나고 이해심도 넓었던 포르키아는 남편에게 비밀을 묻기 전에 먼저 자기 의지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그녀는 시녀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다음 손톱을 깎는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찔렀다. 많은 피가 쏟아졌고, 심한 통증에 포르키아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포르키아는 자신을 간호하는 브루투스에게 통증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브루투스, 나는 카토의 딸이에요. 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은 당신과 잠자리나 하려던 것이 아니라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서였지요. 이제껏 우리는 잘 지내왔고 당신도 잘못한 게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은 무언가로 무척 괴로워하면서도 내게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있어요. 물론 당신이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런 중대한 일이라면 비밀과 믿음이 꼭 지켜져야 하겠지만, 나는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어요.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본디 여자들은 마음이 약해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러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바른 교육을 받고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여자들도 달라지는 법이에요. 나는 카토의 딸이고, 브루투스의 아내예요.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 전에는 내가 정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이제 나 스스로 시험해 보니 어떤 고통도 참고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는 허벅지 상처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이것은 자신의 의지를 시험한 증거라 털어놓았다. 브루투스는 깜짝 놀라더니, 포르키아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고, 자기 계획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포르키아에게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려주었다.(178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 

 

위험천만했던 카이사르 암살은 결국 성공했고,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명연설을 했으나 이 모든 노고가 로마 시민들을 향한 '안토니우스의 선동'으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직후에 안토니우스가 취한 놀라운 행동과 로마 시민들을 격분시키는 명연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줄리어스 시저』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장면이지요.


(브루투스의 죽음)

 

브루투스에게는 졸지에 '카이사르 살해자'라는 오명이 씌어졌습니다. 그는 안토니우스와 간신히 타협하여 마케도니아 속주 총독 자격으로 망명하듯 길을 떠났습니다. 로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급부상하면서 안토니우스와 손잡고 암살 공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에 착수하지요. 오늘날 북마케도니아에 위치한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잘 싸우고도 전황을 오판하여 끝내 자결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로마 공화정'도 이내 끝나고 말지요. 남편의 자결 소식을 들은 카토의 딸 포르키아도 남편 못지 않게 인상적인 죽음을 택했습니다.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는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친구들 감시 때문에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끝내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숯덩이를 입에 물고 질식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철학자 니콜라우스와 역사가 발레레우스 막시무스 기록에 나와 있다.(181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포르키아)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용기 있는 죽음을 택한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를 위해서도 특별한 배려를 잊지 않았는데,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유태인 상인을 굴복시키는 기지를 발휘하는 여주인공 이름을 포셔(포르키아의 영문 이름)로 지었을 뿐 아니라, 극증 인물의 대사를 통해서까지 그녀의 미덕을 칭송하기 때문이지요.


        바사니오

  그녀는 아름답고, 그보다 더 아름답게 

  놀라운 미덕을 가졌다네. …… 

  이름은 포셔이고,ㅡ 로마 장군 카토의 딸

  브루투스의 포셔보다 평가가 못지않고 

  이 넓은 세상 또한 그녀 값을 알고 있지.

 

 - 『베니스의 상인』, <1막 1장> 중에서

 

로마 역사상 보기 드분 훌륭한 인격을 두루 갖춘 브루투스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려 다시 한번 각별하게 애도했습니다.

 

 안토니

이 사람이 그들 중 가장 귀한 로마인이었다.

그를 뺀 나머지 공모자들 모두는

위대한 시저에게 악심 품고 그 짓 했다.

오직 그만 공적이고 정직한 생각에서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한 패가 되었다.

그의 삶은 고귀했고 인성은 완벽하여

자연의 여신조차 일어서서 온 세상에

'이게 사람이었다.'라고 했을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 <5막 5장> 중에서)

 

 

이제부터는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마키아벨리의 평가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브루투스 가문의 사람들만큼 '로마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도 흔치 않은데, 마키아벨리의 얘기를 들어 보면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짧은 대사에 담긴 의미가 얼마나 다양한 함의를 지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속속들이 썩어버렸기 때문

 

로마의 실례만큼 이 점에 꼭 맞는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타르키니우스 가를 멸망시킨 뒤 로마는 곧바로 자유를 획득하여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나 가이우스 칼리굴라, 그리고 네로가 죽고 카이사르의 혈통이 완전히 절멸한 뒤에 로마는 자유를 유지하기는 커녕 그에 한 발도 접근할 수 없었다.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해서 같은 조건 아래 생긴 일인데도 결과가 아주 정반대로 되어 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인이 아직 그다지 타락해 있지 않았던 데 비해, 카이사르 시대에는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의 민중으로 하여금 국왕의 압제 정치를 물리치고자 굳게 결의시키는 대신, '로마에서는 앞으로 어떤 왕도 통치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민중에게 맹세시키는 일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전 오리엔트의 지지를 배경으로 가진 브루투스의 권력이나 가혹함을 가지고도 로마 민중을 분기시켜서 자유를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브루투스는 초대 브루투스를 본받아서 로마 민중에게 자유를 되돌려주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처럼 자유를 회복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때까지 가이우스 마리우스 일파가 민중에게 심어 놓은 타락한 풍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평민당 수령이 된 카이사르는 교묘하게 민중의 눈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목에 칼을 쓰고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207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17장 <퇴폐한 민중은 해방된다 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해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왕정을 종식시킨 브루투스의 조상>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날카로운 분석을 조금만 더 들어보지요.

 

훌륭한 일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 철저한 배려와 현명함을 높이 찬양받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바보처럼 가장하고 수행한 그 행동에는 가까이 따라갈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티투스 리비우스는 브루투스가 그런 짓을 한 것은 자기의 몸의 안전과 집안의 대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브루투스가 한 행동을 생각해 보면, 그가 바보를 가장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속셈을 눈치채이지 않으려는 수단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왕을 타도하고 로마를 해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폴로 신전의 신탁에 대한 해석 방법을 보면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탁을 받을 때 그는 자기의 계획에 신의 가호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발부리를 차고 넘어져서 남몰래 어머니인 대지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루크레티아의 죽음에 즈음해서는, 아버지와 그의 남편과 그 밖의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서 맨 먼저 그 상처에서 단도를 뽑고는, 앞으로는 어떤 왕의 지배도 로마에서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켰다.

 

이 브루투스의 고사는, 군주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일이다. 즉 우선 자기 자신의 실력을 측량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를 적으로 맞아 당당하게 싸워 나갈 만한 확신이 설 만큼 자기의 실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당연히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위험이 적은 자랑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434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3권 제2장 <백치를 가장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타르키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아주 가증스런 방법으로 왕국을 손에 넣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가 이전의 왕들의 유훈에만 따랐더라도 그의 입장은 그대로 용인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원로원과 평민이 힘을 합해서 그의 손으로부터 국가를 빼앗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방된 것도 그의 아들 섹스투스가 루크레티아에게 무례함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 국법을 유린하고 제멋대로 폭정을 폈기 때문이다.

 

(중략)

 

앞에서 말한 루크레티아에 대한, 아들 섹스투스의 능욕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뭔가 다른 사건이 벌어져서 결국은 같은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타르키니우스 자신이 자중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때까지의 국왕과 변함 없는 행동을 했더라면, 아들 섹스투스가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브루투스도 콜라티누스도 섹스투스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을 타르키니우스에게 호소했을 뿐이지 인민에게 호소해서까지 그와 같은 행동을 일으킬 리는 없었다.(438∼439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3권 제5장 <국왕이 세습한 왕국을 잃는 이유에 대하여>


마키아벨리의 책에서 언급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고대 로마의 왕정을 종식시킨 덕분에 '공화정의 창시자'라는 영광스런 칭호가 붙을 만큼 로마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왕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타르키니우스 왕의 아들 섹스투스는 전방부대를 이탈하면서까지 몰래 부하장교의 아내를 겁탈했는데, 이 유명한 '고대 로마의 성폭행 사건'을 두고도 셰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강간』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무려 1885행에 달하는 기나긴 설화시로 말이지요.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난폭하게 성폭행을 당한 루크레티아는 죽기로 결심하고 심부름꾼을 시켜 친정 아버지와 남편을 급히 불러모은 뒤에 강간범 섹스투스의 범행을 알리고 자신의 복수를 다짐받은 직후 자결하지요. 이 때 범행 고발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에는 브루투스의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습니다. 폭정을 거듭하던 강간범의 아비를 왕위에서 끌어내릴 기회만 기다렸던 그는 자결한 루크레티아의 몸에서 손수 칼을 뽑으면서 '타르키니우스 가문 전체를 뿌리 뽑겠다'고 맹세하였고,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끌고 광장으로 가서 '독재 왕정의 폐단'과 '범죄 만행'을 고발했고,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콜라티누스는 로마 최초의 집정관에 오르게 되지요. 


(루크레티아의 죽음)


그로부터 물경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다시 '왕관'을 욕심낸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때 '브루투스'가 다시 나타나 그를 찔렀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었습니다. 『루크리스의 강간』까지 창작해낸 셰익스피어가 살해당한 카이사르보다 살해범 브루투스에게 얼마만큼 더 깊이 공감했는지는 브루투스의 다음 대사만 들어봐도 능히 짐작할 수있을 듯 합니다.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카이사르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카이사르는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3막 2장 중에서

 

이것으로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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