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Value Investing


양피지 쪽들에 호메로스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뒷세우스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 마르티알리스


* * *

호메로스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의 작가나 시인을 꼽으라면?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 이들도 물론 탁월한 시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가장 좋은 대답은 아마도 호메로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들과 성격과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고 하더라도,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통해 그토록 많은 인물들과 대규모의 전투씬들과 심오한 역사관과 사상들을 담아냈다고 하더라도, 저 까마득한 옛날 눈먼 음유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남겨놓은 양대 서사시와 비교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런 대비가 어딘가 잘못된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호메로스가 인류 문명에 남겨놓은 유산이 탁월하고도 심원하기 때문일 테지요.

호메로스가 쓴 양대 서사시 가운데 본편이라고 할 만한 『일리아스』만 하더라도, 이 작품 속엔 고대의 숱한 전설적인 영웅들뿐 아니라 그 당시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온갖 신들이 총망라하다시피 등장합니다. 트로이아 전쟁은 외관상으로는 인간들이 벌인 전쟁이었으나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신들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저 유명한 헬레네 납치 사건 하나만 하더라도 신들의 사소한 불화 때문에 빚어졌던 일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요?

신들의 회의

신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펠레우스가 바로 『일리아스』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였지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엔 당대의 온갖 저명인사들이 두루 참석했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대 받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결혼 잔치에 참석한 여신들 사이에 문제의 황금 사과를 툭~ 내던지는 묘수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사과 한 알이 어머어마한 대사건으로 발전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했습니다.

던져진 황금사과

여신들은 사과를 보자말자 서로 앞다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트로이아의 왕자였던 파리스에게 심판을 받게 되지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이었습니다. 여신들은 그 황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 자신들에게 어울릴 만한 달콤한 반대급부로 파리스를 유혹하지요.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을,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 미인을 아내로 주겠다면서 자신을 밀어달라고 호소하지요. 그러자 파리스는 그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네주고, 파리스는 그 여신의 도움을 받아 이미 다른 남자의 부인이었던 절세미인 헬레네를 얻게 되고, 트로이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바로 그 사건 때문에 결국 파멸적인 10년 전쟁에 뛰어들게 되지요.

여신들의 약속

고대의 숱한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유별난 탐구심을 발휘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가 이 대사건을 모른 체 할 리는 없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입심으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멋지게 요약했습니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트로이아 전쟁

인류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전쟁이 있다면 그건 바로 트로이아 전쟁입니다. 그 누가 용맹무쌍한 아킬레우스와 꾀많은 오뒷세우스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모를 것이며, 그 누가 트로이의 목마를 모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유명한 고대의 전쟁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결국 '신들의 집안 싸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싸움의 원인 제공자인 헬레네는 족보로 따지자면 엄연히 제우스의 딸이었습니다. 스파르테 왕 튄다레오스와 그의 아내 레다 사이에는 2남 2녀가 태어났는데, 클뤼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와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그들이지요. 그런데 제우스가 백조의 모습을 하고 레다에게 접근한 까닭에 흔히 헬레네와 쌍동이 남자 형제들은 '제우스의 자식들'로 인정받습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훗날 로마의 수호신으로도 인정받아 로마 시내를 대표하는 건축물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로마 시청사

헬레네의 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트로이아 전쟁때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아내였고, 헬레네는 아가멤논의 아우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니 제우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딸이 자신의 사위를 배신하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멀리 트로이아까지 도망친 사건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빠진 셈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했던 여신인 테티스의 간절한 호소 때문에라도 자신이 그 전쟁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테티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낳았는데, 하나뿐인 자식이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이후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그리스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으로부터 부당한 처사를 당하자 곧바로 제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붙잡고 간청합니다.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을 타고난 명 짧은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어떡하든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드높여 달라고 말이지요. 제우스는 일이 그렇게 되도록 우선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 트로이아 군대가 분발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트로이아 전쟁 내내 수세에 몰려 있던 트로이아 군대는 전세를 뒤집었고, 그리스 군대는 해안까지 밀려나 자신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 모조리 불에 탈 위기에까지 내몰리지요.

제우스에게 간청하는 테티스

이처럼 제우스와 테티스는 트로이아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데, 이들 말고도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신들은 여럿 더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가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두 여신들은 이미 파리스의 심판에서 아프로디테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아테네는 전쟁의 여신이니 고비때마다 자신의 전투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제우스와 형제 사이인 포세이돈 역시 그리스 편이었습니다. 대지를 흔드는 신인 포세이돈은 과거에 한때 트로이아의 성벽을 튼튼하게 쌓아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트로이아 왕이었던 라오메돈의 부탁으로 1년 동안이나 성의껏 도와줬지만, 성벽이 완성되자 라오메돈은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고 포세이돈을 몹시 박대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포세이돈의 하소연을 잠시 들어 볼까요.


이번에는 아폴론을 향해 대지를 흔드는 통치자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생각이 모자라구려. 그대는 여러 신들 중에

우리 둘만이 일리오스에서 고생하던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가!

그때 우리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오만한 라오메돈에게 가서

정해진 보수를 받기로 하고 만 일 년 동안 그자를 위해

봉사했고 그자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었지.

나는 트로이아인들을 위해 그들의 도시가 함락되지 않도록

도시 주위에 넓고 더없이 아름다운 성벽을 쌓아주었고

포이보스여! 그대는 숲이 우거지고 주름이 많은 이데 산의

계곡에서 걸음이 느리고 뿔이 굽은 소 떼를 먹였지.

하지만 즐거운 계절들이 보수의 기한을 다 채웠을 때

무서운 라오메돈은 우리에게서 보수를 전부 빼앗고는

협박하며 우리를 내쫓았지.

그는 우리의 손과 발을 함께 묶어

멀리 떨어진 섬에 갖다 팔겠다고 위협했지.

그리고 그는 우리 둘의 귀를 청동으로 자르겠다고 공언했지."


- 『일리아스』, 제21권 441행∼455행


라오메돈 왕은 요즘으로 치자면 악덕 임금체불업자나 다름없었습니다. 더군다가 그가 실컷 부려먹었던 사람들이 막강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이었으니 라오메돈은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친 셈이었습니다. 라오메돈의 아버지는 일로스였고, 이 이름에서부터 '일리아스'라는 이름이 생겨났지요. 할아버지는 트로스였는데, 이 이름에서는 '트로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라오메돈 왕의 '약속 불이행'은 비단 이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이 바다괴물에게 붙잡히자 딸을 구해주면 자기 명마들을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때 사기를 당한 인물은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였습니다. 열이 잔뜩 받은 헤라클레스는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트로이아를 손쉽게 함락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트로이아 전쟁때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 대왕이었습니다.

트로이아 왕가 계보

헤라클레스는 이때 바다괴물로부터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구한 뒤 부하 장수 텔라몬에게 주었고, 그녀는 그리스군의 명궁이자 '큰 아이아스'의 이복동생인 테우크로스를 낳았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에는 텔라몬의 두 아들인 큰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물론이고, 헤라클레스의 아들까지도 전쟁 영웅으로 활약하는데,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이들 영웅들의 아버지가 팔팔하던 젊은 시절부터 이처럼 다양한 사건들로 이래저래 엮여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리스 연합군 vs 트로이아

다시 '신들의 전쟁' 이야기로 되돌아 오지요. 방금 『일리아스』에서 인용한 싯구에서 보듯이,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한때 트로이아의 튼튼한 성벽을 함께 쌓아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아폴론은 트로이아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도리어 트로이아를 편들고 있는 걸까요? 그건 바로 아폴론의 사제였던 크뤼세스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전쟁통에 붙잡혀간 자신의 딸을 구하려고 아가멤논을 찾아갔지만 거기서 난폭하게 쫓겨났기 때문이지요. 아폴론은 자신을 위해 신전을 짓고 제물을 바친 사제의 간절한 청탁을 듣고 전쟁 내내 트로이아를 도와줍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날카로운 화살들로 그리스인들을 괴롭히고 그리스 군대에 역병이 돌게 만든 것도 아폴론이 벌인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쟁이라면 아무런 계획도 절제도 없이 마구 뛰어드는 '전쟁의 신' 아레스까지 트로이아 전쟁에 뛰어듭니다. 그는 만용이 지나쳐 그리스군 장수 디오메데스의 창에 부상당하기도 하고,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에게 13개월 동안이나 포로로 붙잡히기도 합니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체통이 말이 아니지요. 아레스는 또한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밀애를 즐기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고안한 교묘한 그물에 갇혀 신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레스가 애인 아프로디테와 함께 트로이아 군대를 편들고, 오쟁이 진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그들에 맞서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또한 헤파이스토스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기는데, 무구(武具)마저 잃어버린 아킬레우스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창과 방패와 투구와 정강이받이 등 제구일습(諸具一襲)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지요. 그 전에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보이콧하던 와중에 절친인 피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몽땅 빌려 줬는데, 그가 헥토르와 싸우다가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아킬레우스의 무구까지도 한꺼번에 다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 때문에 비탄에 빠진 아킬레우스에게 무구를 전해주는 테티스

이렇듯 트로이아 전쟁은 외견상으로는 '한 남자의 오입질' 때문에 빚어진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지만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들의 뜻이었노라고 노래합니다. 한낱 필멸의 인간들이 어찌 감히 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면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넌지시 충고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인간들은 비록 필멸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언제나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나 제우스의 아들로 인정(?) 받았던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 또한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알고도 불굴의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지난한 과업들을 이룩해 냈습니다. 참혹한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을 더 방황한 끝에 고향 이타케에 당도한 오뒷세우스나 불구덩이 속에서도 아버지를 등에 업고 트로이아를 빠져나와 간난신고 끝에 로마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아이네이아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웅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세이렌의 유혹을 견디는 오뒷세우스

그런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방대한 등장 인물들은 물론이고 온갖 상세한 지명과 사건들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 등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서 이 이야기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아니면 눈 먼 음유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전승된 이야기에 자신의 창작 솜씨를 덧붙여 꾸며낸 이야기인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일리아스』의 초반부에 마치 거대한 진입장벽처럼 버티고 있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유명한 <함선 목록>만 살펴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토록 구체적인 연합군의 함선 목록이 실제적인 사실의 뒷받침 없이 어떻게 꾸며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그 목록이나 함선의 숫자들은 너무나 구체적입니다. 어디서 누가 몇십 척씩 이끌고 왔다는 설명이 그리스 군대에서만 29차례에 걸쳐 낱낱이 소개되고, 함선들의 숫자는 3척, 7척, 9척까지도 일일이 따로 소개한 끝에 도합 1,186척에 이릅니다. 척당 80명씩만 잡아도 무려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트로이아 땅에 집결한 셈인데, 그토록 많은 군대와 말들을 먹일 식량이 10년 동안에 어떻게 조달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요. 그러니 실제와 허구와 상상이 이처럼 한꺼번에 절묘하게 녹아 있는 고대의 문학 작품도 찾기 어려운 셈입니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도시국가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그토록 훌륭하고 완벽한 고대의 영웅 서사시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마저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비록 호메로스가 아무리 교묘한 솜씨로 이들 영웅들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자주 엿보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독자들은 『일리아스』를 아무리 거듭해서 읽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일부분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가령, 파리스의 심판으로부터 비롯된 전쟁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불화 때문에 그리스 군대의 패전 위기로 내몰렸다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의 참전으로 다시 재역전되고,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마저 죽이겠다고 덤벼들다가 전사하고, 절친을 잃고 비탄과 분노에 휩싸인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이아 군대의 핵심이자 가장 사랑했던 아들인 헥토르를 잃고 비탄과 절망에 빠진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홀홀단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고, 아킬레우스의 막사에서 극적으로 회동한 두 사람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함께 꺼이꺼이 울고 난 뒤에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잠정적인 휴전 상태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른다는 얘기 말이지요. 『일리아스』는 딱 여기서 끝납니다.

헥토르의 시신을 옮기는 트로이아 사람들

그러니 독자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아무리 열심히 읽더라도 궁극적으로 영웅 아킬레우스가 과연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고, 그때 그토록 훌륭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테티스의 비탄과 고통이 얼마만큼 컸고, 10년 동안이나 함락하지 못한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기 위한 극비 작전인 '트로이의 목마'가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트로이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함락된 끝에 비참하게 무너졌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대가 어떤 방식으로 전리품들을 나눠 가진 끝에 귀향길에 올랐으며, 또 각자 귀향길과 자신의 궁궐에서 어떤 비참한 운명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모든 나머지 이야기들은 호메로스의 관심 영역 밖이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리아스』가 훨씬 더 방대한 전체 이야기의 자그마한 일부라는 사실을 한번쯤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 서사시가 얼마만큼 많이 존재했는지, 고대의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인류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를 '거대한 전체 속의 일부'로서 들여다볼 때 보다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서사시권(敍事詩卷)'이라는 큰 전체의 일부분입니다.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서사시들은 모두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요. 지금부터 간략하게나마 이들을 살펴 보지요.

트로이아 서사시권

그 첫 번째는 『퀴프리아』입니다. 여기서는 이른바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합니다. 우리가 『일리아스』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그 전말을 알고 있는 '황금의 사과' 이야기 또한 『퀴프리아』에 자세히 담겨 있으리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가 바로 『일리아스』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일리아스의 다음 이야기가 제일 궁금한데, 그 내용이 바로 세 번째인 『아이티오피스』에서 이어집니다. 여기에는 아킬레우스가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와 아이티오페스족의 왕 멤논을 죽이고 나서 자신도 아폴론 또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죽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멤논이라는 인물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제법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도시인 테베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대한 석상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인데, 오이디푸스 왕이 다스렸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바이도 이집트의 테베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이 인물의 이름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멤논과 싸우는 아킬레우스

저는 여러 해 전에 이집트의 고대 도시 테베에 갔을 때 '멤논의 거상'을 직접 본 일이 있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을 때 잠깐씩 들어본 게 다였습니다. 그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며, 헥토르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었고, 나중에는 제우스의 배려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일리아스』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거대한 전체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일부를 장식하는 핵심 인물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인물의 이름을 붙인 거대한 석상이 이집트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트로이아 서사시권'이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류 문명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삼 반증하는 셈입니다.

멤논의 거상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巫具)들을 놓고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야기인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의 목마 작전'에 따라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영웅이 벌였을 엄청난 경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인 소포클레스의 작품 『아이아스』에서도 다루고 있고,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도 거듭 자세히 묘사한 덕분에 후세에 널리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숱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결하는 아이아스

또한 『일리오스의 함락』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야말로 트로이아 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희귀한 창조물인데, 오늘날 트로이아의 목마에 얽힌 이야기가 온전히 전해지는 문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형편이지요. 그토록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낸 꾀많은 오뒷세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뒷세이아』에서도 그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옛 이야기 중에서 희미하게 잠깐씩 비칠 뿐입니다. 숱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들도 트로이의 목마를 핵심 포인트로 삼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이토록 대중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사물이 온전한 텍스트도 없이 3,000년이 넘도록 인류의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례도 찾기 어렵지 싶습니다.


어쩌면 트로이의 목마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로마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가 쓴『아이네이스』에서 살펴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건국 신화를 담은 그 이야기 속엔 '트로이아가 얼마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몰락했는지를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 속에 '트로이의 목마'가 빠질 리 없기 때문입니다.

트로이 함락

그때 라오코온이 수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가운데

앞장서서 성채 위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려오며

멀리서 외쳤습니다. '오! 가련한 동포들이여,

그대들은 그토록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들은 적군이

배를 타고 떠난 줄 아시오? 일찍이 다나이족의 선물에

음모가 없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보시오.

그대들은 오뒷세우스를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었소?

이 목조물 안에 아카이오이족이 숨어 있거나,

우리의 집들을 들여다보고 위에서 시내로 내려와

우리의 성벽들을 공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계략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소. 말(馬)을 믿지 마시오,

테우케르 백성들이여.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다나이족이 선물을 가져올 때에도 두렵소.'

이렇게 말하고 그는 짐승의 옆구리에, 널빤지들을 둥그스름하게

이어붙인 복부에 힘껏 큰 창을 던졌습니다. 창은 떨면서 그곳에 꽂혔고,

충격이 가해지자, 텅 빈 뱃속이 공허하게 울리며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뒤틀리지만 않았더라면,

신들께서 내리신 운명대로 우리는 아르골리스인들의 은신처를

칼로 열어젖혔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트로이야는

아직도 서 있을 것이고, 프리아모스의 높은 성채여, 너도 남아 있겠지.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2권 40∼56행



라오콘 조각상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섯 편이 전쟁을 노래하는 데 반해 나머지 세 권에서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여섯 번째인 『귀향』은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다른 그리스군 장수들의 귀국을 노래하며, 일곱 번째가 바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입니다. 여덟 번째는 『텔레고노스 이야기』인데,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그의 아들 텔레고노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말고도 여섯 편에 더 담겨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벅차고 충분히 놀라운데 그리스인들은 이것 말고도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테바이 서사시권' 이야기까지 남겼습니다. 그나마 '테바이 서사시권'은 규모가 훨씬 단촐하기는 합니다.


이것은 오이디푸스 왕의 놀라운 운명을 노래한 『오이디푸스 이야기』(Oidipodeia)와 오이디푸스 왕의 추방된 아들 폴뤼네이케스를 중심으로 모두 일곱 장수들이 테바이를 공격한 이야기를 노래한 『테바이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테바이 공략에 실패한 뒤에 그의 아들들이 결국 테바이 공격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후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테바이를 떠나는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무리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결국 '트로이아 서사시권'과 '테바이 서사시권'을 아우르는 방대한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은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에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하는 무수히 많은 영웅호걸들 가운데에는 '테바이 서사시권'에 속하는 이야기인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후손들까지도 자주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입니다. 그는 힙폴로코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와의 일전을 앞두고 서로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다면 그대는 먼 옛날 부조(父祖) 때부터 나의 빈객(賓客)이오'라는 말을 건네면서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의 손을 잡고 우정을 다짐합니다. 그리고는 곧장 서로의 무구들을 교환합니다. 이때 글라우코스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는지는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인용될 정도였는데, 그는 황소 백 마리의 값어치가 있는 자신의 황금 무구들을 황소 아홉 마리의 갑어치밖에 안 되는 디오메데스의 청동무구들과 맞바꾸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입니다. 흔히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모두 305편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작품들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작품들은 불과 33편에 불과합니다. 그 33편 가운데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그 절반인 16편인데, 그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시간으로 따져보면 『일리아스』와 겹치는 작품은 『레소스』 하나밖에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 개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란 뜻으로,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신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비극 3부작)만 하더라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사건들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인가요?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아가멤논이 살해될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오레스테스는 훗날 청년이 되어 누이동생 엘렉트라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벗어나면 이토록 비극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셈이지요.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클뤼타임네스트라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가운데『필록테테스』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시기를 조금 벗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함선 목록>에도 당당히 올라 있을 정도로 트로이아 전쟁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인물이었지만 『일리아스』에서는 딱 한 번만 언급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메로스가 이 희귀한 인물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까지 몰랐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잠깐이나마 그의 운명을 넌지시 암시하기 때문이지요. 서유럽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인물에 대한 회화와 조각작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을 정도인데, 『일리아스』에서만큼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인물일 뿐입니다.


그가 서양예술의 온갖 분야에서 오랫동안 비중있는 인물로 기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로빈슨 크루소의 진정한 원조(元祖)여서? 아니면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신궁(神弓)을 물려받은 인물이어서? 아니면 그가 전쟁의 원흉인 파리스를 쏘아 죽여서? 아무튼 그는 『일리아스』를 벗어나면 꽤나 유명한 인물로 돌변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습니다.


메토네와 타우마키에에 사는 자들과,

멜리보이아와 울퉁불퉁한 올리존을 차지한 자들,

이들의 함선 일곱 척은 궁술에 능한 필록테테스가 지휘했다.

배마다 선원들이 쉰 명씩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궁술에 능한 용감한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휘자는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신성한 렘노스섬에 누워 있었다.

파멸을 꾀하는 물뱀에게 심하게 물려 괴로워하던 그를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이 그곳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 괴로워하며 누워 있지만, 아르고스인들은 머지않아

함선들 옆에서 바로 그 필록테테스 왕을 생각해야 할 운명이었다.


- 『일리아스』, 제2권, 716∼725행


렘노스 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 가운데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들은 트로이아가 함락된 이후에 '트로이아 여인들'이 겪는 끔찍한 참상들을 낱낱이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일리아스』 이후의 사정들을 파악하는데 더없이 요긴합니다. 한때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던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가 전쟁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딸과 막내 아들을 어떻게 비통하게 잃었으며, 헥토르의 아내였다가 패전 후에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의 첩으로 전락한 안드로마케가 어떤 기구한 운명을 겪었는지는 『일리아스』에서 예고편으로 슬쩍 엿보여준 내용들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투구를 번쩍이는 위대한 헥토르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난들 어찌 그런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

(…)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믈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

그때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말하겠지요.

'저 여자가 헥토르의 아내야. 사람들이 일리오스를 둘러싸고 싸울 때

그는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 중에서 으뜸가는 전사였었지.'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굴종의 날에서

당신을 구해줄 그러한 남편이 없음을 새삼스레 슬퍼하게 될 것이오.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주었으면!"


- 『일리아스』, 제6권 440∼465행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일리아스』의 밖에서 또다시 차고 넘치도록 쏟아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가 지니는 불후의 위상이 낮아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트로이아 서사시권'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그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는 '플롯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요.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 그리고 『소(小) 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만 하더라도 '너무나 방대해서' 좀처럼 완독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더해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나머지 6편까지도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졌더라면 과연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벅찬 독서과제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몽테뉴와 같은 인물들은 우리와는 정반대로 두 팔을 들고 환호작약했겠지만 말이지요. 이러한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까지를 포함하면 더욱 심해집니다.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만 하더라도 무려 305편에 이르는데 그 작품들이 온전히 다 전해졌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이 고작 33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도리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들

『일리아스』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트로이아 서사시권'을 거쳐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들로 확장되다 보니 이 영상이 다루는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진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이제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되돌아 가지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벗어난 고대의 작품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일리아스』라는 단 하나의 작품이 품고 있는 방대함과 탁월함은 그 어떤 다른 문학작품들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 말입니다. 모두 24권으로 된 『일리아스』 하나만 하더라도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른 4개의 전쟁 서시사를 모두 합친 것(22권)보다 길며, 24권으로 된 『오뒷세이아』 또한 다른 영웅들의 귀국을 노래한 것(5권)보다 훨씬 더 방대하니 말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함선 목록>처럼 단지 물질적인 요소들만 방대하게 수록한 작품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지닌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등장인물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롭게 담겨 있습니다. 그토록 등장 인물들도 많고, 각각의 인물들마다 사연도 많고, 전투에서 적과 맞닥뜨려 싸우다가 다치고 죽는 모습들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인데, 호메로스는 10년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던 그 유명한 전쟁 이야기를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줬을까요.

호메로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안에서 진행된 9년 동안의 일들을 단지 50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역병이 만연하던 9일, 올륌포스의 신들이 아이티오페스족의 잔치에 가 있던 12일,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던 12일, 헥토르의 화장을 위해 장작을 준비하던 9일을 빼고 나면 실제로 '실시간 생중계 화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된 날들은 불과 며칠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일리아스』를 읽고 나면 마치 온갖 무기들이 격렬하게 맞부딪쳐 굉음을 내고, 전차와 말들이 순식간에 주인을 잃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두개골이 박살난 시신들이 처참하게 벌판을 가득 채운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호메로스의 묘사가 그만큼 탁월하고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지요.


호메로스를 다루게 되면 그를 흠모했던 숱한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그런 인물들 모두가 호메로스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플라톤만 하더라도 『국가』에서 호메로스의 문장들을 얼마나 심하게 타박했던가요. 수많은 문장들을 일일이 적시하면서까지 말이지요. 그의 비판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시인은 진실재인 '이데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상을 화가처럼 '모방'하기만 하는 모방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스스로 '시의 매력'에 한없이 이끌리면서도 결국 '이데아'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시인'을 비판해야만 했습니다. 플라톤의 '시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나중에 결국 쇼펜하우어에 의해 '플라톤의 결함'으로 비판받게 되고, 니체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까지 몰아부칩니다,

<호메로스의 대관식>(부분)에 잠가한 인물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시'에 대한 입장만큼은 서로 확연히 달랐다는 점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가 무작정 스승의 입장만을 옹호했더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결코 쓰여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지요. 호메로스를 흠모했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고 싶은 사람은 아무래도 몽테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입심좋기로 소문난 그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지나친 너스레가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코스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네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호메로스에 대한 수많은 상찬 가운데 몽테뉴가 했던 말보다 더한 상찬을 과연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 위대한 문학작품은 현대인들이 단번에 완독하기에는 분명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마치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다녀온 듯한 느낌마저 들 만큼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인간계뿐 아니라 신계까지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호메로스의 세계가 그만큼 드넓고도 심원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으로 호메로스에 대한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