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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농담처럼 말했지
  •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인디고 연구소 기획
  • 16,200원 (10%900)
  • 2012-02-28
  • : 1,432

공들인 인터뷰집.  

인터뷰어들에게 있어 지젝이 지나치게 메시아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쯧,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번역과 각주 모두 마치 학습노트처럼 성실하다.

책도 잘 만들어졌다.

 

인디고의 질문들은 잘 던져진 것이었다.

허나 잘못 던져진 것들은 아니었지만, 지젝이 위치한 담론장 내부에서 순환하는 언어들이라 참신하진 않았다.

지젝에게 지젝의 말로 묻는다는 것.

 

지젝 사유의 가장 큰 매력은 특유의 급진성(흔히 그렇듯이 수사적 급진성과 사유의 급진성이 섞여 있다)을 탁월한 설득력을 발휘해 독자에게 납득시키고야 만다는 것인듯 싶다.

어떤 대목은 의도치 않은 모순처럼 느껴지고, 어떤 대목은 의도적인 충돌로 읽힌다.

 

:) 폭력에 대한 지젝의 언급은 그 개념의 구체화와 실천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아쉽다.

'방어적 폭력defensive violence'이라 칭한 '폭력'에 대한 그의 개념(심지어 '비폭력적인 것'이라고도 했다.)은, 벤야민의 '신적 폭력'이란 명칭보다 다소 구체적이고 소극적(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아마 지시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소극적인 게 무조건 싫은 건 아니지만, 전제와 한계, 확장과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다른 개념을 설명할 때보다 확실히 모호하다. 이 개념의 구체화에 있어서 이 책에서는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개념의 잔여가 있는 듯하다.

 

::) '대의제'에 대한 신뢰의 문제에 관해서는 지젝과 네그리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듯하다. 대의제와 민주주의의 관계도 마찬가지. 좀더 공부해볼 것.  

 

이 책에서 내가 감명받은 것은 지젝보다는, '인디고'의 지적 실천력과 이동성, 그리고 '지적 연대'의 단초처럼 보이는, 그들이 슬로베니아에서 만난 폴리투스, 스튜디오 포퍼이다. 그들의 결과물들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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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삶에서 최상의 '선'은 물질적 삶의 안정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표면적인 정치적 담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은 손대지도 못하고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투쟁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어설프게 소비할 뿐이라고 지젝은 비판한다. 그렇기에 지젝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통해서 진정한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할 수 있으며, 그것을 시도하는 정치-사회적 행위야말로 새로운 '선'의 범주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13)

 

이것이 바로 제가 독재적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입니다. 이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저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에 대해 논쟁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쟁해야 하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입니까? 저는 강간이 역겹고 정신 나간 짓이라고 여겨지는 그러한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완벽히 교조적인 방식으로 여겨지는 사회 말입니다. 저는 "오, 강간은 안 돼요"라고 순진하게 말만 하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가당찮은 것입니다. 이 같은 논의는 인종주의, 파시즘 등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62)

 

저는 하나의 혁명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노동자 계급'과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혁명의 주체는 제가 '프롤레타리아적 입장Proletarian Position'이라고 부르는 위치를 스스로 점유하고 체현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난하고, 때로는 살 만한 그런 유동하는 삶의 양식 말입니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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