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통해 작성한 리뷰 〉
《 죽음을 알면 삶이 보인다 》 _이상재(지은이) / 작가와비평(2026-08-31)
삶과 죽음은 각자 따로 일까?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는 지나온 삶의 흔적이 담겨있다. 하나의 순환이다. 사회가 다변화 되어가면서 고독사로 떠나는 이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삶은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삶을 바꾼다. 그 바뀐 삶이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도 다른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삶에 대한 생각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지만, 나의 죽음 역시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을 남길지는 모르는 일이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예전엔 산 사람들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이 그리 편치 않았다. 죽음을 키워드로 한 도서 출판도 많지 않았다. 내 기억에(틀릴 수도 있지만) 2000년대 이전에는 죽음을 테마로 한 책들이 그저 임사체험(臨死體驗, 심정지나 중증 외상 등 의학적 사망 상태 또는 그에 근접한 상황에서 겪는 주관적 의식 경험)에 관한 도서가 가끔 눈에 띌 정도였다. 영적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스위스 출신의 미국인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스베덴보리의 책을 자주 접했다.

10여 년 전부터 ‘죽음’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죽음’을 입력하면 수천 권의 도서가 뜬다. 중복되는 것을 감안해도 대단한 숫자다.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죽음 가장 큰 선물 -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죽어 가는 이를 돌보는 일에 관한 묵상』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중에서 읽은 책도 있고, 읽으려고 찜해놓은 책도 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죽음과의 만남이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죽음을 맞이한 내 가족을 어떻게 놓아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숙명적으로 장례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마을의 이장이셨던 지은이의 부친은 마을에서 드문 지식층이었다. 마을사람들에게 혼인신고서, 제사 지방(紙榜)을 써주는 것은 일상다반사이고, 동네 장례식 때 입관(入棺)을 맡으셨다. 아버지는 장의사가 직업인 분이 아니셨다. 단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에 당신이 나선 것뿐이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자란 지은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지은이의 아들도 그 뒤를 이어서 3대가 장례지도사가 되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 본인이 그간 장례지도사로 걸어오며 느낀 단상을 담담히 또는 강하게 글로 남겼다. 금기된 주제인 죽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삶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한다. 장례의 본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장례(葬禮)라는 한자에 이미 답이 들어있다. ‘장(葬)’은 죽은 이를 땅에 묻는 행위이고, ‘례(禮)’는 예의와 의식이다. 죽음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예우하는 것이 장례의 본질이다. 최근 경제적 또는 다른 이유로 무빈소 장례를 치루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빈소의 ‘빈(殯) 염할 빈’은 장례를 치르기 전에 고인을 일정기간 모시는 것이다. 오늘날의 ‘빈소(殯所)’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빈소를 차리는 의미는 고인을 즉시 처리(화장이든 매장이든)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선언이다. 그러나 무빈소는 고인에 대한 예우가 사라졌다. 그저 처리만 남는다. 무빈소 장례에 반대 입장인 지은이의 뜻과 함께 한다.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루더라도 빈소는 갖춰야 할 것이다.
부록에 실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안내’ , ‘장례 준비 체크리스트’, ‘품격 있는 장례를 위한 10가지 원칙’도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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