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리꽃 》 1 _조정래 (지은이) / 해냄(2026-08-24)
조정래 작가님의 오랜만의 신작이다. 2023년 『황금종이』이후 처음 인 듯하다. 『서리꽃』은 해냄에서 출간된 전 2권 장편소설이다. 등단 56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자 작가 스스로 마지막 장편이라고 밝힌 소설이다. 혹자는 눈꽃보다 서리꽃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일반적인 눈꽃은 내린 눈이 쌓여 만들어지지만, 서리꽃(상고대)은 ‘공기가 빚어낸 예술’이다. 눈꽃보다 훨씬 섬세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그러나 햇빛이 강해지면 금방 녹아버리는 것이 단점이다.
주인공 이재이는 미국 유학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 절친 민태석을 만난다. 재이는 금수저 집안 형제 중 둘째이자 막내다. 재이의 형은 아버지의 사업을 전략적으로 잘 키워가고 있다. 약 1조원의 기업가치가 있다는 회사다. 재이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재이의 아버지와 형은 재이가 못마땅하다. 문과 중에서도 지지리 취업운이 없는 철학과이기 때문이다. 재이의 아버지는 대학졸업을 마치자마자 졸업식도 마치기전에 재이를 미국으로 쫒아냈다.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오라는 이야기다. 재이는 등 떠밀려 미국으로 간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학과를 바꿨다. 다시 철학과로. 물론 집에는 비밀이다. 난리가 날건 뻔하기 때문이다. 재이는 귀국 후 태석에게 처음으로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미혼인 재이와 달리 태석은 학교 후배와 일찌감치 결혼을 했다, 태석의 부인과 함께 나온 여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여인(윤소인)은 재이가 대학 재학 중 글쓰기 동호회에 가입해서 대학 4학년 때 시화전을 열었었는데(가을축제) 재이에 시에 그림을 그려준 미술대생이었다. 2년 후배이다. 재이는 소인을 학교에서 처음 보고 말을 더듬을 정도로 첫 눈에 반했다. 그러나 그 후 두 사람이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재이가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소인의 보드라운 미소와 맑고 깊은 눈은 사라지고, 소인의 얼굴에는 잔뜩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 후 재인과 소인이 거듭 만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재이는 소인에게 문자 그대로 무조건의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준다. 그렇게 소심하고 내향적인 재인이 소인을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거침없이 앞길을 열어간다.
그래, 세상에 이런 사랑이 아직 남아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먼 훗날 내가 차지할 크나큰 재정적 이익도 포기하고, 오직 현재 사랑하는 사람의 상황을 회복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사랑이야기만 진행했다면 밋밋했을 것이다. 시대감각과 의식에 투철하신 작가님께서는 등장인물들을 여행을 떠나게 해서, 독자에게 기억해야 할 부분을 상기시킨다. 제주도에 가선 ‘제주 4.3평화기념관’을 들른다. 재이의 입을 통해 4.3의 진상을 간략하지만 핵심내용을 정리해서 담았다. 소인에 대한 재이의 사랑은 뜨겁고 믿음직하다. 아직 1권만 읽었기에, 2권에선 ‘아낌없는 사랑’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해가 뜨면 사라지는 서리꽃처럼 그 사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의 투병기인 작가의 말, ‘직업병의 행렬 속에서’를 가슴저려가며 읽었다. 작가의 작품마다 병명이 하나씩 붙었다. 소설가라는 직업병 때문이다.『태백산맥』을 쓸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작품을 끝내고 『아리랑』을 시작하려던 참에 위궤양이 두 군데 생겼다. 『아리랑』을 절반쯤 쓰고 있을 때는 오른팔 마비현상이 찾아왔다. 이 소설 『서리꽃』을 쓸 때는 복부대동맥 팽창으로 수술을 받았다. 원인은 글 쓰느라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휘고 복부가 접혀진 탓이다. 본격적으로 소설 『서리꽃』을 쓰기 전, 2024년 9월 초순경에 반 고흐(소설 중에 자주 등장)의 그림을 따라 프랑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저 대단한 작가의 의지와 열정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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