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통해 작성한 리뷰 〉
《 타인의 얼굴 》_아베 코보(지은이), 이정희(옮긴이)
/ 문예출판사(2026-07-30)
원제 : 他人の顔 (1964년)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고대 로마 가면을 뜻한다. 현대에서 페르소나는 주로 심리학적 관점에서 사용된다. 타인에게 드러내는 사회적 가면이나 외적 인격을 의미한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와 가족이나 지인들과 있을 때 또는 직장이나 비즈니스 환경에서 각기 달라지는 이미지를 뜻한다. 나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로 부르기도 하지만, 사회적, 환경적 요구에 맞춰 겉으로 드러낼 태도와 행동을 조절하는 기능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페르소나가 외부 세계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적응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얼굴이다. 얼굴의 표정이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고분자 화학분야 종사자이다. 실험 중에 액체질소가 폭발해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얼굴이 되었다(현시대 의학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64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SF 소설이 아니다). 신체의 다른 부분이 상실되는 것보다 얼굴의 손상이 주는 고통과 상실감은 더욱 클 것이다. 주인공의 마음은 점점 안으로만 기어들어간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심지어는 함께 살아가는 아내와도 점점 소원해진다. 아내 역시 붕대를 휘감은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지만, 사고 전과 다름없이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있을 뿐이다.
소설은 세 권의 노트로 편집되었다. ‘검은색’, ‘흰색’, ‘회색’ 노트로 이름이 붙었다. ‘검은색 노트’는 주인공이 화학전공자답게 온갖 재료와 기술을 동원해서 인공가면(타인의 얼굴)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흰색 노트’는 드디어 가면을 쓰고, 달라지는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매우 섬세하게 기록되었다. 붕대 감은 그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과,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짐짓 무심한 듯 지나치던 성인들. 그러나 가면을 쓴 뒤로는 그런 반응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회색노트’에선 가면이 점점 더 대담해진다. ‘나 아닌 나’가 되고 싶어진다. 내 안에 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가면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자신의 아내를 유혹한다. 아내가 넘어온다. 아내 몰래 얻어 둔 집에서 아내와 동침한다(사고 이후로 집에선 아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소설에 반전이 없으면 밋밋하다. 끝부분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니 영화〈페이스 오프〉(1997)가 생각났다. 홍콩 영화의 대부인 오우삼 감독이 미국에서 제작했다.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다. 영화 후반부에 딸을 가운데 두고 서로 얼굴이 바뀐 두 남자가 서로 자신이 진짜아빠라고 딸에게 납득시키려는 팽팽한 긴장감이 기억에 남는다. 오우삼 감독은〈페이스 오프〉의 각본은 처음엔 보잘것없는 SF였는데, 아베 코보 원작의 영화〈타인의 얼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어쩐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소설〈타인의 얼굴〉은 2007년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이정희 교수) 되었었다. 리뉴얼된 이 소설을 다시 정리한 이정희 교수는 아베 코보 연구자이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베 코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믿고 읽을 만한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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