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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기억을 위한 송별회
  • 에브리맨
  • 필립 로스
  • 11,700원 (10%650)
  • 2009-10-15
  • : 7,277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13쪽
복도는 수술실로 이어졌고, 그곳에는 닥터 스미스가 의사 가운과 하얀 마스크 차림으로 서 있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어쩌면 닥터 스미스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사람, 스물로비츠라는 성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서 성장하지 않은 사람, 그의 아버지가 전혀 모르는 사람, 아무도 모르는 사람, 그냥 우연히 수술실로 들어와 칼을 집어든 사람일 수도 있었다. 마치 질식을 시키려는 듯이 그의 얼굴에 에테르 마스크를 씌우던 그 공포의 순가에 그 의시가, 그가 누구였건, 이렇게 소곤거렸다고 그는 맹세라도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널 여자로 바꿔주마."-36쪽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37쪽
그저 우리 몸만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서 우리에 앞서 살다 죽어간 몸들이 결정한 조건에 따라 살고 죽는 몸. 그가 그 자신을 위한 철학적 틈새를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틈새였다. -58쪽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남자가 말했다. "여섯 달 뒤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여덟 달 뒤에는 또 하나뿐인 누나가 죽더군요. 일 년 뒤에는 결혼생활이 망가져 아내가 모두 갖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 누가 나한테 다가와 이렇게 말할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네 오른팔도 자를 거다. 그걸 견딜 수 있을 것 같냐?' 그렇게 그들은 내 오른팔을 자릅니다.(이어서)-74쪽
(이어서) 그들은 나중에 다시 와서 말합니다. '이제 왼팔을 자르겠다.' 왼팔도 자르고 난 뒤 어느 날 그들이 돌아와서 말합니다. '이제 끝내고 싶으냐? 이걸로 충분하냐? 아니면 계속 네 다리도 잘라나갈까?' 나는 그동안 내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도대체 언제 끝을 내야 할까? 언제 가스를 켜고 머리를 오븐에 박아야 할까? 언제쯤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십 년 동안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꼬박 십 년이 걸리더군요. 그래서 슬픔은 마침내 끝이 났는데, 이제 이놈의 병이 시작되더군요."-74쪽
그는 척 클로스가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을 기억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86쪽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30~131쪽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135쪽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쪽
우리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손이 아직 따뜻할 때 주는 게 최선이다.'-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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