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뉴질랜드의 마운트 쿡에서 찍은 사진이다.

언뜻 추상화 같은 이 사진 속의 물체를 얼마전까지도 이끼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바위 위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었으니 내 얄팍한 지식으로는 떠오르는 단어가 '이끼'밖에 없었다.
또 다른 사진. 얼마전 나가사키의 '료마의 길' 계단에서 찍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생물체지만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예술 작품처럼 묘하고 신비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 역시 '이끼'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그러다가 <향모를 땋으며>를 쓴 로빈 춸 키머러의 책 <이끼와 함께>를 보고 '이끼'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된다는 건 내 삶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안착되는 느낌이랄까. 죽을 때까지 배울 게 많다는 건 아직까지는 축복으로 다가온다.
p. 31
사람들은 종종 '이끼'라는 단어를 이끼가 아닌 식물에도 쓴다. 순록이끼reindeer moss는 지의류고, 스페인이끼Spanish moss(수염틸란드시아)는 꽃식물이여, 아일랜드이끼(Irish moss는 조류고, 곤봉이끼club moss는 석송류lycophyte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끼일까? 진짜 이끼나 선태식물은 가장 원시적인 육생 식물이다.(중략) 이끼는 가장 단순한 식물이여 그 단순함에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몇 안 되는 기초적인 줄기와 잎으로만 된 구조이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진화한 이끼 종은 약 2만 2천 개에 달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내멋대로 단정한 이끼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끼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서 이내 AI한테 사진을 들이밀었더니 이끼가 아니고 '지의류'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끼는 뭐고 지의류는 또 뭐냐고.
* 이끼: 1)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엄연한 선태식물입니다. 비록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하등 식물이지만, 엄격히 '식물계'에 속합니다.
2) 주로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물이 없으면 금방 말라버리거나 활동을 멈추죠.
* 지의류: 1)식물이 아닙니다. 균류(버섯, 곰팡이)와 조류(광합성하는 미생물)가 서로 돕고 사는 공생 생물입니다. 곰팡이가 집을 제공하고, 조류가 광합성으로 밥(영양분)을 차리는 구조죠.
2) 이끼보다 훨씬 강인합니다. 극지방, 사막,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생존력이 강하며, 대기 오염에 민감해서 '대기오염 지표생물'로 쓰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드니 이런 책도 잘 읽히는구나 싶어 계속 읽어나갔다. 이끼에 대해서 이렇게 파고들며 공부하는 사람이 있구나, 내심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데 글솜씨에 또한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p.75
이끼와 물의 상호관계.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사랑을 통해 스스로 나래를 펴는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사랑의 존재로 확장되며, 사랑의 부재로 움츠러든다.
내멋대로 풀어쓰면, 이끼는 물을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물의 존재로 확장되며, 물의 부재로 움츠러든다....쯤.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수이듯, 이끼에게는 물이 필수라는 얘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물곰water bear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처음 들어보는 물곰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p.104
이끼의 삶과 가장 긴밀한 동물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완보동물, 즉 물곰water bear을 선택할 것이다. 대나무 숲에만 의지해서 사는 판다처럼 물곰의 삶은 물곰이 서식하는 이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뭉툭한 여덟 개의 다리를 구르면서 잎사귀 사이를 킁킁거리는 물곰은 영락없이 작은 북극곰을 닮았다.
p.105
이끼, 물곰, 담륜충 모두 부활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19세기 담론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이 세 가지 생명체의 행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린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삶의 징표인 운동, 기체 교환, 신진대사 모두 소멸한다. 셋 모두 생명력이 없는 가사동결 상태가 된다. 하지만 수분이 다시 생기면 곧바로 되살아난다....물곰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단적인 실험의 대상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어떠한 생물체도 살아남지 못할 건조한 환경, 팔팔 끓는 액체, 절대영도에 가까운 영하 273.142도의 진공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이같은 고문을 모두 이겨내고 물 한 방울로 다시 살아났다. 물과 만나면 생며의 화학작용이 재개되는 메커니즘은 이끼와 물곰에게 일상이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물곰은 크기가 보통 0.1mm ~ 1mm 정도여서 현미경으로 봐야 보인다는데...내 관심은 딱 여기까지. 부지런한 사람들이 올린 물곰 이미지를 검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끼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온 건 잔디 때문이었다. 앞마당에 깔린 손바닥만한 잔디밭이 언젠가부터 폭신폭신해지면서 카펫을 밟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잔디 밑에 이끼가 시루떡모양 깔려 있었다. 왕성한 이끼의 번식력 앞에서 번식력의 대왕인 잔디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탈모로 엉성해진 머리털 같다고나 할까. 괴씸한 마음에 잔디를 쥐고 있는 이끼를 호미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끼를 걷어낸 자리는 한동안 잔디가 기를 펴는 듯했으나 다시 봄이 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끼의 아성은 이내 회복되고 만다. 그러면 또 호미를 들고 이끼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비가 오면 다시 이끼가 득세하고, 또 호미를 들고....무한 반복이다.
p. 161
한번은 도시에 거주하는 어떤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잔디에 난 이끼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정성스럽게 가꾼 잔디를 이끼가 죽인다고 확신했고 이끼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니 단풍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운 집에서 잔디를 심은 곳은 북쪽 방향이었다. 그가 보기에 잔디는 언제나 시들했고 잔디가 있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이끼가 잔디의 빈 공간을 차지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끼는 풀을 죽이지 못한다. 전혀 적수가 될 수 없다. 이끼가 잔디밭에 등장하는 까닭은 주변 환경이 잔디보다는 이끼가 자라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이끼를 죽인다고 해서 시들한 잔디가 살아나진 않는다. 햇빛을 더 잘 받도록 하거나, 아니면 더 바람직하게는, 남아 있는 잔디를 뽑아 자연이 선사하는 훌륭한 이끼 정원을 가꾸면 된다.
잔디를 뽑는 게 빠를까, 이끼를 뽑는 게 빠를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둘 다 만만찮은 생명력 대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