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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햇살처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15,300원 (10%850)
  • 2018-06-20
  • : 83,763

1. 니체의 영원회귀

 

사랑의 형태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수만큼 다양하다. 사랑의 과정 역시 무수한 감정들의 교차로 이루어진다. 우연인가 싶다가도 필연이구나 싶고 확신했다가도 후회의 감정이 무한반복된다. 그러면서 사랑은 깊어가기도 하고 끝나기도 한다. 토마시와 테레사의 사랑도 그러하다. 토마시는 사랑을 믿지 않지만 테레사를 본 순간 책임감을 느낀다. 바구니에 넣어져 온 아기 같은 테레사에게 묶여 버린다. 꼭 그래야 하는가 의문을 지니며 선택을 망설이지만 결국은 테레자 옆에 머문다. 방황을 하면서도 자유로우면서도.

니체의 영혼회귀에 관한 문장들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삶의 순간들이 무한이 반복된다면이라는가정과 삶은 단 한번뿐이어서 무의미하다는 단정적 서술로는 부족하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삶이 한 번뿐인 가벼움에 대한 허무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삶의 무거움을 긍정하기기도 한다.  자신의 삶의 순간이 다시 반복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긍정할 수 있도록 강한 의지로써 받아들이라는 것 아닌가. 역사적 순간의 반복에 개인이 어쩔 도리없이 휩쓸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삶을 사랑하고 즐기고 오직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니체의 사상은 극에서 극을 오가며 삶을 변주한다.

소설의 시작이 영원회귀를 아무런 의미 없음이라는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서술한 듯하여 잠시 작가를 오해하기도 하였다. 가장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인 히틀러도 시간이 가면 잊혀지고 사라진다.오히려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은 어쩔 수 없음으로 냉소적 허용으로 망각되고 흩어진다. 그래도 괜찮은가. 일제의 광기어린 제국주의에 짓밟힌 식민의 역사,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겪은 정치적 독재 하에서 무수하게 생명을 잃고 고통 받았던 개인이 있다. 허무하게 잊혀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역사의 수면위로 떠올라 무한 반복되어 후세로 이어지고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냉소와 영원성, 가벼움과 무거움 ,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테레사를 쫒아 스위스에서 체코로 돌아와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에 빠진 토마시의 무거운 선택.. 그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받아 들였다. 선택의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토마시라면 테레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바구니에 담겨져 온 아기였으니 자신만이 건져 올려야 했을 테니까. 새롭게 어려움이 오더라고 의연한 기쁨으로 반복하게 될 토마시의 선택.. 그것이 무거움이라면, 영원회귀의 긍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자신만의 몸짓, 스타일, 그 무거움과 가벼운 것의 모순 속에서도 신비로움을 잃지 않는 것.
테레자는 우연히 태어났다. 가장 중요한 생명인 테레자는 그녀의 엄마가 장점이 서로 다른 아홉 명의 남자 중에서 우연히 하나를 선택해서 태어났고 계획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잉태되었다. 육체의 탄생은 육체를 빌어야 한다. 철저하게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세계에서 영혼이 튀어오르는 경험은 토마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만남의 배경음악으로 올려 퍼진다. 가벼운 우연들이 죽음을 같이할 운명을 뒷받침한다. 우연이 의미를 지니면 필연이 된다.

테레자는 영혼의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랑의 행위는 육체를 통해서 가능하다. 실제적인 사랑은 육체에 있다. 꾸르륵 소리나는 몸을 그대로 받아준 토마시가 다른 육체를 탐하는 것에 이를 드르륵 갈고,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육체의 고통을 토마시에게 보여준다. 토마시가 그녀가 있는 프라하로 돌아왔을 때,  토마시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 영혼은 육체와 삐긋대기도 하고 일치하기도 한다.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한다.

 

2. 작가의 등장이 독특하다

 

네 명의 남녀가 주인공인데 소설의 시작은 작가의 사유로 시작된다. 영원회귀 속 무거움과 가벼움. 영혼과 육체 사이를 직접 나레이션하며 인물의 가장 내밀한 성생활부터 사회적인 참여까지를 전지적이고도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나'로 등장하지만 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나'가 아니라 독자는 작가의 애매한 등장으로 잠시 소설의 흐름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장치가 그의 소설을 철학적으로 무겁게 하며 네 명의 등장인물들의 변주되는 삶을 일정한 질서의 틀로 끌어들인다. 

p 10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14 나는 수년 전부터 토마시를 생각했다.

p 74 나는 가끔 그녀의 생김새가 어머니와 닮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삶도 어머니 삶의 연장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토마시와 테레자를 탄생시킨 작가로서의 '나'가 맞는지 진정한 의도가 뭔지 분명하지는 않다.


3.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토마시는 테레사와 함께 죽고 싶었다. 그건 그녀가 그에게 오는 처음 순간 알았다. 영혼으로부터 분리된 육체의 사랑을 찾아다니던 그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가벼움의 상징이었지만 테레사의 삶 속으로 들어가 기꺼이 끌어 안으며 자신을 버리면서 무거움의 상징으로 바뀐다. 또한 소련의 침공이라는 사회적 격변은 개인의 삶을 휘청이게 만들고 어떤 선택과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겠는가 라고 묻는다. 그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를 오가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적인 사랑의 화신으로 주체적 지식인으로 삶을 형성한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테레사와 함께 죽는다. 주어진 임무란 없고 자유로움과 홀가분함으로 행복하다. 그가 테레사와 함께 들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여운으로 남는다. 삶의 한없는 가벼움을 벗어나 한 여인을 자신의 품으로 받아 들이고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짊어짐으로써 그의 삶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땅으로 내려 앉았다. 그래야만 하는가와 그래야만 한다 사이에서 그가 얻은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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