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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는 나에게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 고통스러운 아우슈비츠를 살아내고도 또 평생을 함께할 여인을 만나고
화학자라는 직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자살해야만 했을까
작년 이후로 '자살'은 나에게 하나의 화두이자 수수께끼이다
아마도 평생 풀지 못할지도 모르는 수수께끼
(인용은 모두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언제나 변함없이 죄없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저녁녘 나에게 이런 북적거림은 손으로 만질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그네 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이것은 반투명의 피막으로 가로막힌 '저 건너편'의 풍경이다
-49쪽
'이해'에 대한 간절한 욕망, 그것은 소년시절부터 변함없이 쁘리모 레비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다.
과학정신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는 비합리적인 정신주의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통해 파시즘에
의한 부식으로부터 자신의 혼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유토피아의 세계에
던져졌을때, 역유토피아를 지상에서 실현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져갔다.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그 생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욕망은 생환한 후에도 증폭되었다.
그것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욕망이었다.
-61쪽
'동화 유대인'으로 태어나 자란 쁘리모 레비에게 단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문화'는 바로
자신이 가진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이루는 기초였다. 그렇기 때문에 파시스트의 반유대 조치라는 촉매에
의해 이탈리아 사회에서 '불순물'로 색출되어 배척되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야만적 파시즘'에 대한 '문명적인'이탈리아
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화되어 갔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 아이덴티티는 단순히 한 민족 한 국민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인문주의 내지 계몽주의 맥락에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로 연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레비가 가진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는게 대단히 큰 힘이 되었다.
단테의 [신곡]을 암송하는 장면은 그것을 상징한다
-163쪽
쁘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것이 단순 명쾌했으리라. 인생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레비에 의해서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인생을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금 뭔가를 고뇌할 필요가 있을까......그런데 그런 그가 우리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