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마다 한 사람씩 자기 마음을 움직인 시를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하이쿠나 단문으로 된 시라든가
은유가 굽이쳐 흐르거나
함의가 석류알처럼 빼곡히 박혀있거나
의식의 흐름이 징검다리를 퐁퐁 건너는 그런 시는
선생님께서 판단하시기로는,
천방지축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며 해들거리는 열네살 아이들이
제대로 느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라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시 중에 한 편을 골라오라고 하셨단다.
휴대폰을 들고 그 작은 화면 속에서 시를 찾는 따님을 위해
나도 잘 모르는 몇몇 시인을 천거하여 뒤적인 끝에 하나를 골랐다.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
하지만 발표할 날까지 아직 여유가 남았다고 하니
몇 권의 시집을 사주고 읽혀서 진짜 따님의 마음을 움직인 시를 고르게 하고 싶다.
엄마의 일천한 책읽기는 소설에 국한되어 있는지라
목적에 맞는 시인이나 시집을 고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시집이라곤 동시집도 읽어 본 적 없는 드 넓은 백지를 품안은 열 네살 소녀의
첫 마음을 움직여 줄 누군가를 아시는 분, 추천을 좀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