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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옹달샘

지난 해 가을부터 음악치료를 시작했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여 표현하고 공감능력을 키움으로써

인지능력과 사회적 관계를 향상시키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신나게 뛰거나 마음껏 웃거나 그러지 못했다.

지나치게 자기조절을 하는 경우에

소심해지고 결정장애까지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알아내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려다보니

아주 사소한 것을 선택하는 일도 힘겨워질 수 밖에 없단다.

 

다행히 산골소년은 그런 지경은 아니었지만

저 사람이 나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어떤 답인지 끊임없이 눈치보고 고민한다.

공공장소에서 과잉행동은 어쩔 수 없이 제지하다보니

내가 이런 일을 과연 해도 되는 것인지 자기점검을 먼저하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운이 좋게도 선생님과 금방 친해져서 수업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나름대로 좋다싫다 비교적 분명하게 얘기하는 요즘이어서 참 대견하다.

 

어제는 아빠 차를 타고 수업하러 가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찢어졌다.

갓길에서 30분쯤 기다렸다가 견인차를 얻어타고 진주까지 가야했다.

봄비답지 않게 주룩주룩 끈질기게 비까지 내렸다.

와이퍼가 미친듯이 움직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더니 도로 위에 떨어진 무언가를 피하지 못했다.

 

엄마랑 아빠 사이에 앉아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지만 겁먹은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지난 주부터 욕심내어 시작한 미술치료도

미리 얘길 못해서 그런지, 음악수업 그만두고 미술수업하자는 걸로 오해했던 것인지

수업을 하긴 하면서도 예상보다 거부감을 심하게 드러냈다.

 

주변환경과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고 그에 따른 자기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음악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감정의 진폭이 커지고 넓어지는건가보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 견인차 타도 괜찮지? 견인차 타고 가니까 어때?

답을 정해놓은 아빠 물음에는 불안한 눈빛과 움츠린 어깨로 모기소리만 하게

- 좋아요

라고 했는데 견인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수업하러 가는 도중에는

- 차가 고장나서 걱정되었니?

라고 답을 정해놓은 엄마 물음에는 작지 않은 소리로

- 슬퍼요.  감정이... 슬퍼요!

라고 대답했다.

 

무척 늦었지만 다음시간에 수업이 없다고 두 분 선생님께서 수업을 꽉 채워 해주시고

늘 먹는 해물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좋아하는 블럭카페에서 자동차 한 대를 조립하고

이어서 언어치료까지 일상적으로 흘러가자 안정을 찾았는지 수업을 참 잘했다고 칭찬도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제부터 책상 위에 펼쳐놓고 몰두하고 있는 1000 조각짜리 퍼즐에 열중했다.

혼자서 하기 힘들다고 엄마랑 같이 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옆에 앉아서 같이 조각을 찾는 동안

캄캄한 밤에 별이 빛난다는 이야기를 좀 부족한 문장이긴 하지만 너댓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전히 행여라도 조각이 하나 없어질까봐 챙기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지만

완성하기 전까지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버티거나 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학교도 다녀오고 예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

조각 하나 없어지면 대성통곡하고 떼를 썼는데

블럭카페에서 조각이 하나 모자랐는데 대수롭지 않게 대충 넘기고 계속 조립하기도 했다.

 

산골소년의 감정이...

이렇게 계속 깊어지고 넓어지고 분화되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그리하다가 다른 사람의 그런 감정도 이해하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이해받고 어울리고 그리그리 되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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