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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자물쇠
  • 나의 눈부신 친구
  • 엘레나 페란테
  • 14,400원 (10%800)
  • 2016-07-07
  • : 8,195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 4부작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현재 서구 독서계를 사로잡는 두 이름,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두 작가 모두 자전적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방대한 시리즈에 담았다. 둘 다 노르웨이어와 이탈리아어로 씌여져 번역조차 쉽지 않은 기획인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선 한길사가 그 총대를 맸다. 노르웨이와 이탈리아의 소설이니 역자 구하기도 쉽지 않을 터!! 한길사 창립 40주년의 기념 발간이다.

 

 

 

그 중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가 한길사에서 7월 7일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아무 흔적없이 갑자긴 사라져 버린 친구의 삶을 증거하기 위해 작가가 쓰는 일종의 비망록이자, 자서전이다.

 

서로 경외와 질투, 기쁨과 고통, 자랑과 열등감의 대상이 동시에 되는, 그러면서 평생 인생이 서로 뒤섞이는 두 여인이 주인공이다. 페란테가 형상화한 '릴라와 엘레나의 관계는 데미안과 싱클레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와 같이 문학사를 장식한 특별한 관계의 전형에 비견될 만하다. 그런데 선악 너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친구인 데미안과 선의 세계에 갇힌 규범적 싱클레어의 경우나,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와 노력형 수재 살리에르의 경우엔 그 관계가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반면에, 릴라와 엘레나의 관계는 평등하고 역동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평과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것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지닌 본성에 기인한다. 우정은 본질상 평등성과 상호성, 향상성에 기반한 아주 냉철하고 고독한 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의 정의처럼  서로가 친구라고 인정해야 우정이 성립한다.  그래서 우정에는 항상 인정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엘레나와 페란테가 서로의 마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에 기반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것만큼 힘드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어느 시점에 피빛발로 깽기발을 하며 따라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 또 달라진 위상 속에서 보폭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 우정의 지난한 과정과 과업을 엘레나 페란테는 놀랄 정도로 세밀히 묘사한다. 우정이 사람의 구체적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 깊숙히 관여하며 서로를 좌절시키고 또 눈부시게 이끌었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더듬었다.

 

"나는 한동안 릴라를 피했다. 그만큼 화가 났다. 나도 그리스어 문법책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지만 우리 도서관에 비치된 유일한 그리스어책은 체룰로네 온 식구가 번갈아가며 빌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칠판에 그린 그림을 지우듯이 릴라를 지워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연약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며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릴라를 찾았다.˝ (183쪽)

 

초기의 둘의 관계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그것처럼 천재적 직관과 악마적 매력을 소유한 릴라에게 추가 기운다. 그것은 상급학교 진학이라는 분깃점을 두고 서서히 엘레나 쪽으로 넘어오다가,

사춘기를 지나 청년기로 오면서 균형점을 찾는다. 엘레나에 비해 어른스럽고 똑똑했던 릴라는 가정형편 때문에 제도적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독학에 의지한다. 그녀는 엘레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해서 상급학교로 진학한 엘레나에게 오히려 지적 영감을 제공하고 엘레나를 독려하는 위치에 선다. 한편 엘레나는 이런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극을 받아 학업적 난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로 독자적인 공부의 기반을 쌓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은 한계를 지니고 릴라는 점차 다른 세계로 빠진다. 릴라는 공부로 균형점을 찾기 힘들자 돈으로 엘레나가 가진 교육의 계단과 나란히 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릴라의 잘못된 결혼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암시하면서 1권은 끝난다. 두 여인을 구별하던 불균형의 잣대, 즉 천재와 범재, 초월적 매력과 규범적 착함을 가르던 선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깝다. 엘레나의 마음 역시 그러했으리라!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는 즐거움은 눈부신 우정의 추이를 지켜보는 데에만 있지 않고,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상들이 행동을 선택하는 심리적 동기 들여다 보는 데에도 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윤곽(프레임 혹은 상)이 허물어지는 징조를 느끼거나 관계의 파국의 전조를 감지하는 것은 거창한 사건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하고 미미한 차이에서 이다.

페란테는 우리 인생에 커다란 구멍을 내거나 분깃점이 될 수 있는 그런 미세한 차이들에 관해 세밀히 살펴 눈부신 통찰을 표시안나게 소설 곳곳에 뿌려놓았다. 거창한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작고 작은 사건을 흥미롭게 서술하는 게 소설의 본령이 아닌가! 그녀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데에는 이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기이하게도 감상을 배제한 건조하면서도 가벼운 문체로 씌여졌는데도 소설에서 서정적 심미감과 진중한 무게감을 느꼈다. 문학적 시의는 서정적 문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시선에 있음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그 없이는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시절, 그런 우정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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