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사랑이 싹트는 둥지(배경으로서의 공간) , 그리고 베껴쓰기
"사랑이 싹트는 둥지"(제가 임의적으로 붙인 제목)
원제: <알리는 말씀: 우리 모두 산림을 보호합시다> 중 일부
번역1
"사랑하는 남자는 연인의 '결점'에만, 여자의 변덕과 약점에만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얼굴의 주름, 기미, 낡아빠진 옷과 비뜰어진 걸음걸이가 모든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그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그렇다면 왜?
감각은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창문, 구름, 나무를 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보는 장소에서 느낀다는 설이 있는데 ,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볼 때도 우리 외부에 있게 된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장하며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채, 현혹된 우리의 감각은
여자의 광휘를 새들 무리처럼 빙빙돈다. 그리고 새들이 잎이 무성한 나무의 은신처에서 보호처를 찾듯이 온갖 감각은 애인의 육체의 그늘진 주름 , 품위없는 동작, 눈에 잘 띄지않는 결점 속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안전하게 은신처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바로 이곳, 즉 결점이 있는 곳, 비난받을 만한 곳에 한 여자를 숭배하는 남자의 화살처럼 빠른 연정이 둥지를 튼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출처: <알리는 말씀: 우리 모두 산림을 보호합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조형준 역, 새물결, 2007, 33쪽)
번역 2
> 더 보기"다른 번역"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의 '실수', 여성스러운 변덕이나 약점에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 더 오래, 더욱 더 사정 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어째서인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한 창문, 구름, 나무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여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서 몸을 움츠린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떨림은 바로 거기, 결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될 만한 것 안에 둥우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일방통행로>>,최성만 외 역,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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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짧은 단상의 제목이 왜 '산림을 보호하자'일까요.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곳이 우리 내부의 뇌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며, 타인을 바라볼 때조차도 본래의 모습보다 외부적 요소와 결합된 배경 속 모습에 더 현혹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듯이 '산림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가 무언가를 더 잘 느끼게 하는 그런 배경 공간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일 수 있지요. 같은 사람도 상이한 공간적 배경 속에서는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연인의 옷도 걸음걸이도 주름도 기미도 다 일종의 그녀 바깥의 공간적 배경이지요. 우리는 주관적인 것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습관에 물들어있지만 진정성이 발휘하는 곳이 꼭 내면공간만은 아니란 이야길 벤야민은 하고 싶었나 봅니다.
사랑이 싹트는 둥지가 결점이 있는 곳, 비난받을 만한 곳이란 말은 참 시사적입니다. 어쩌면 관계 속에서 내가 작용할 공간이 확보되는 곳을 원하는지도 모르지요. 또 대저 약점이 있는 곳에 바로 그 장점이 숨겨져 있는 법이기도 하고요!! 아무도 모르는, 세밀히 들여다 보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그녀 혹은 그의 고유성!
2. 발터 벤야민은 텍스트를 베껴쓰는 일을 강조했어요. 그는 텍스트를 그냥 읽는 것과 베껴쓰는 것의 차이는 시골길을 비행기를 타고 풍경의 일부로 보느냐 아니면 걸어가면서 굽이굽이 펼쳐진 길의 멋진 조망을 세세히 맛보느냐의 차이와 같다는 것이죠. "베껴 슨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게 호령할 수 있는 반면, (텍스트에 의해 열린) 단순한 독자는 자기 내면의 새로운 광경들, 계속 다시 빽빽해지는 내면의 원시림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하늘을 떠돌며자아의 움직임을 따르지만 베껴적는 사람은 그러한 움직임에 호령하기 때문이다."(같은 책,27쪽) . 그런 맥락에서 벤야민은 중국 서적의 필사전통을 중국 문예문화에 공헌한,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 보았고, 그 필사본들을 '중국의 공예품'이라 보았죠.
3.
저 역시 베껴 써보았어요!! 벤야민의 뜻에 따라, 그의 글에 대한 경의로!!
작가 김훈은 훌륭한 문장을 쓰려면 좋은 문장을 많이 외워야 한다고 하였어요. '문장을 외우는 것', 이 역시 '입으로 베껴쓰기' 이죠. 외우면서 되새김질 하는 것! 텍스트 원저자의 생각 속을 걸어서 갖고 나온 글들을 다시 내 생각 속으로 넣어 굴리는 일. 어쩌면 "번역"도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서 베껴쓰기를 좋아한 벤야민이 그의 번역이론에서 수용자인 독자보다 원저자의 의도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