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3 저자:장강명.
열 권이 넘게 소설, 산문집, 르포, 어느 시점까지는 다 읽어 오다 내가 ‘졸업’한 작가 중 하나가 장강명이다. 노동과 사회 문제에 관한 소설이었나, 그걸 읽는 순간 자아 성찰도 했지만 동시에 이제 더는 안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과 저자를 알게 되고, 소재가 AI 관련이라는 것, 제목이 뭔가 나중을 끌어다가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가 들어서 펼쳐보았다.
책의 초중반 대부분은 저자가 인터뷰한 바둑 기사들의 말이 많이 인용되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과 생계와 대응방식이 뒤집어진 것을 내가 잘 모르던 바둑이라는 분야에서 보여주었다. 저자는 바둑계의 변화를 소설 창작 생태계에 닥칠 상황으로 대입해보며 이런저런 예측을 한다. 애초에 지금하는 예측 대부분은 틀릴 거라 가정하면서, 그런 안전 가드를 올리고 내 생각에는, 하는 이야기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옮겨 놓았다. 대부분 단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반대의 경우가 아니라는 것 또한 증명되지 않았다, 그런 식의 서술이 자주 있었다.
인공 지능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 반대인 사람, 인공 지능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내 분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우리가 잃게 될 것, 체념할 것, 그런 것을 바둑이라는 예술 또는 스포츠, 아니면 그냥 바둑 그 자체라는 분야를 통해 미리 보여준다 생각해서 제목을 저렇게 붙인 것 같다.
내 직업에서도 계속해서 업무나 수업에 AI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도자인 강사들이 와서 시범을 보이고 팁을 주는 교육을 한다. 그런데 새로운 도구가 들어온 듯 보일 뿐이다. 이 책 주장과 비슷하게 인공지능이 뭔지 파고들게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교육이 뭔지, 학교는 왜 존재하는지, 그런 걸 더 고민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뒤쳐지지 않아야 하고, 니들도 이걸 알고 써야 하고, 애들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도 예측 밖이지만 하여간에 대응해야 하고, 혼란의 도가니인 것 같다.
후반부는 기술 발전 일반과 윤리,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성찰의 부족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반복해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인공지능이 뭐 어쩔 거래? 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딱히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름대로의 제안을 하긴 하지만 막연하고 본인도 그걸 실행하는 게 자기 일 아니고 국가 차원만으로도 할 수 없는 큰 과제라고 한다. 자세하게는 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걸 누군가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STS의 효용을 밝히면서 은근슬쩍 자기 작품 홍보(이전 작품, 차기작들)가 좀 많다.
작가는 창작자 입장에서 나보다 쟤(인공지능)가 더 잘 쓰고 감동을 주는 날이 오면 어쩌지? 난 붕괴될텐데, 그런 가정을 하며 글을 쓴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쟤들을 미리 읽는 독자처럼 대한다. 아직은 뭐 써 봐, 하고 읽어보면 조금 우습고 애는 썼네, 하는 수준이어서 그냥 읽기나 해, 고칠 생각하지 마, 읽고 감상평이나 말해 줘, 그렇게 자아성찰 및 자기 비평용 머신으로 쓴다. 뭐 그런 희망도 본다. 혼자 메아리조차 없이 떠드는 그런 막연함을 벗어나, 사람은 아니라도 단 하나의 읽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계속 쓸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독자는 미래의 나 자신이다.
+밑줄 긋기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일단 겁부터 주고 시작)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인공지능 이전에도 일에 대한 긍지를 어떻게 가질지 고민하며 20년이 흘러버린 사람도 있다. 저요...)
-감성이 어떤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나면 이성은 그런 결정의 근거가 될 적절한 논리를 찾는다. (사후합리화, 갖다 붙이기, 그렇게 서사를 완성하길 좋아하는 게 인간)
-인간은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이해하고 그 아래 있는 듯한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개념어와 비유를 동원해 설명을 만들었다. 그 설명에 의존해 행동 규칙을 세웠고, 그에 따라 일한다. 예술 분야에서뿐만 아니다. 경영 이론, 경제 이론, 사회 이론, 정치 이론, 교육 이론 같은 것들이 다 거기에 해당한다. (언어의 한계, 암묵지의 존재 같은 걸 책에서 다룬다.)
-내게는 사람들이 자기 부족의 중요한 토템을 모욕당해 화를 내는 원주민처럼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고유성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자아정체성 가르치면서 고유성이란 말을 교과서에서 쓰고 있는데, 자라날수록 정체성이 명확해지기는 커녕, 차이보다 고만고만함이 훨씬 눈에 띄지 않나 싶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열심히 쓰는 사람들을 보며 아 내가 뒤쳐지고 있나, 뭘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그 암묵지는 많은 인간 전문가에게 단순히 그들이 보유한 지식 상품이 아니라, 자기효능감과 자부심, 자존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현장 업무에 대한 애착, 매일의 작업을 일종의 수련으로 여기는 자세, 더 나아가 자기 직업을 삶과 동일시하는 경향 등이 나타난다.(이번 생에 이런 경향을 가질 수 없다면 넌 전문가가 아닌 루팡이라고 읽힌...이상한데서 긁힘)
-불쉿 직업은 힘들고 보수와 처우가 형편없어서 인기 없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그것은 ‘쉿 직업(shit jobs)’인데, 그런 쉿 직업들은 불쉿 직업과 반대로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으며, 종사자들이 사라지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이나 건설 현장의 잡부가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보수와 처우가 괜찮고 노동 강도가 높지 않은데도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불쉿 직업이다. 그레이버는 인사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 조사원, 금융 전략가, “불필요한 위원회의 문제를 처리할 직원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상 업무로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그 예로 들었다. (나도 그 쉿 직업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었다. 그리고 내가 마음이 힘든 이유도 스스로 불쉿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가치를 없애버린다. (이건 좀 주어가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이 등장했으니 넌 죽어,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비참함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호함과 강요된 시늉” 때문에,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비참하다.(그래서 소설가는 좋다고 주체성 자랑한다.)
-최근 20년간 우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우상(idol)으로 섬기고, 그의 팬을 자처하는 명분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인플루언서는 온갖 이유로 인플루언서가 된다. 얼굴이 잘생겨서, 노래를 잘 불러서, 운동을 잘해서, 연기를 잘해서, 그림을 잘 그려서, 글을 잘 써서, 말을 잘해서, 옷을 잘 입어서, 놀라운 주장을 해서, 인플루언서의 가족이라서, 돈이 많아서, 너무 많이 먹어서, 범죄 피해자라서, 아는 게 많아서, 아는 게 없어서, 행실이 훌륭해서, 행실이 막돼먹어서….(진짜 엄청난 다신교 세상이 되어 버렸어…)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가 알던 개념을 바꾸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개념이 된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세계를 이루고 유지하는 근본 개념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이다. (국가가 할 일도 아니긴 하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지닌 사람은 보다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사실 좋은 삶을 살려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 꼭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내내 수백 명과 화상통화를 하는 사람은 좋은 삶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있는 사람만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하는 태도를 버릴 수 있다. 우리는 그 힘을 배워야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런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 (눈뜨고코베인이 부릅니다.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