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살아오며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타인을 원망하는 습성은 나에게 없었다. 하지만 근간까지 겪은 일들은 사람에 대한 원망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만했다고 생각된다.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기회가 과연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까닭에 사람이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서를 구조화한 원형은 무엇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타인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문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한국인에 대해 알고 싶다는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한 의문에 답을 구하고 싶었다. 마침 그때 출간 소식을 알게 되고 서평단 모집이 있기에 기쁘게 다가섰다.
본서에 대한 첫인상은 [한국인의 눈부신 철학]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게도 민담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분석하는 책이구나 였다. 물론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철학이란 표현이 깊이 납득된다.
저자는 본 내용이 시작되기 전 [여는 글]에서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고 있다. 한국이 시작한 학문인 문학치료학과 우주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문학치료학의 기본 명제는 ‘인간이 곧 문학이고 문학이 곧 인간이다’라고 한다. 또 우주철학에서는 ‘인간을 우주와 분리되지 않은 존재로 인식한다’고 하며 한국인의 철학을 담론하는 이 책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문학이자 철학이자 우주로 확장하고 있다. 우주철학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눈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본다’고 전제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사전적 정의가 한문 사전으로 가면 ‘사람’이면서 또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철학이 궁극적으로 문학의 한 갈래’라고 했다고 하며 실용주의 철학자 로티는 ‘철학이 삶을 새롭게 재서술하는 작업’이라며 ‘철학의 문학화’를 주장했다고 한다.
까닭에 저자는 한국인의 철학을 조망하는데 문학으로 다가서고 있으며 그 가운데 민담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서사 중에서도 사회서사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의식을 분석하고 있다. 앞서 철학은 문학이며 문학은 곧 인간이라고 소개한 것이 저자이고 인간이란 사람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서사를 주목한 것은 적확한 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문학이라 했기에 타인도 곧 문학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나와 남과 사회를 두루 보는 것이 사회서사적인 관점인 것이다. 저자는 ‘사회서사는 사람을 우주인이자 문학으로 보는 우주철학에 기반하고 있기에 삶의 모든 것을 사회적 잣대로 판단하는 사회성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개개인이 사회를 인식하는 관점과 삶의 자세를 중시한다’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 사회서사를 설명하며 저자는 칼 융의 심리 유형 분석의 기반인 내향성과 외향성을 언급하는데 이를 다시 내향적 삶이 사회체제는 불변한다고 바라보며 이뤄지는 순종서사와 사회체제는 변화한다는 시각의 관조서사로 분류하고 외향적 삶이 사회체제가 불변한다고 인식하며 이뤄지는 적응서사와 사회체제가 변화한다고 바라보며 이뤄지는 실천서사로 분류하고 있다. 저자는 순종서사, 적응서사, 관조서사, 실천서사의 방향으로 인식과 대응의 변화를 바라본다. 한국인의 무의식은 실천서사가 지배적이며, 이것이 사회변화와 삶의 변화에 기회가 된다고 보고 있는듯했다. 저자의 논지가 이렇기에 이후 단군신화와 처용설화 해님달님 설화, 효자 호랑이, 신비한 눈썹, 아기장수, 그리고 단재 신채호의 최초 근대소설인 ‘꿈하늘’과 그의 선언서 ‘조선혁명선언’을 모두 실천서사의 관점을 설명하는 데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나로서는 한국 어르신들의 ‘팔자타령’이나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관점 그리고 ‘한’으로 정의되는 정서의 바탕과 맥락에는 관조서사가 근간이며 그것이 더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실천서사라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도 강간도, 살인도, 집단적 충돌도 모두 실천서사이다. 이 실천의 바탕에 관조와 성찰이 없다면 앞서 말한 범죄들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관조는 맑고 밝게 자신을 헤아리는 눈을 말한다고 본다. 메타인지도 관조의 하나이고 말이다. 관조가 없다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그리고 사회에서도 교훈과 반성, 성찰이 있을 수 없다. 순종과 적응을 실천으로 바꿔주는 것은 결국 관조라는 말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문학에서도 실천이 없다면 스토리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애초에 실천서사만을 한국인의 특색이라고 정의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이 남은 생이라도 다른 빛깔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은 관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보이는 것이 바뀌고 달라지는 것만이 서사가 아니라 같은 일상이라도 색깔이 바뀌는 것이 진정 중요한 서사적 요소일 것이다.
[노인과 바다]나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들은 종국에는 결국 각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들의 같은 일상이 더 이상 같은 빛깔이지 않게 해주는 건 관조와 성찰이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문학의 예이지만 우리의 ‘한’ 많은 선조들이 삶을 살아냈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겠다고 한 것도 그렇지만 곰이 여인이 된 것도 자성을 관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처용의 서사는 처용의 관조와 역신의 성찰이 주 내용이다. 신비한 눈썹도 관조와 성찰이 있기에 실천이라는 다음 스테이지가 가능했던 것이고 아기장수는 부모가 관조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이다. 효자 호랑이는 수신자인 민중이 자신을 성찰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와 견해는 다르지만 이런 관점으로 돌아본 것 자체가 이 저작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관조하고 성찰하고는 실행하라는 조언해 줄 수 있다면 이 저작의 도움이었다고 생각하며 내 삶과 다른 이와의 삶을 연결 짓는 관조와 성찰이 무얼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는 독서이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인의 의식과 정신을 다루는 많은 책들을 읽는 효시가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철수와영희로부터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인의눈부신철학 #손석춘 #철수와영희 #문학치료학 #우주철학 #사회서사 #민담 #책서평 #도서제공 @chae_seongmo @chulsu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