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는 실용적 지적욕구가 있고, 순수한 지적욕구가 있다. 하지만, 번외로 ‘여성주간지적 지적욕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속물적이며 저속한 욕구에 속한다.
저자는 ‘인류의 지(知)의 총체’를 향한 도전이란 목표로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나름 실천하고 있다. 그에게 특이한 점은 그의 <고전古典>에 대한 재정의이다. 보통 고전이란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은 19세기의 전형적인 문학의 범주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전은 적어도 500년-1000년 정도의 검증을 받은 텍스트를 가리킨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고전은 이미 과거완료형의 내용이기 때문에 의미가 덜 하다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최신보고서에 확대되고 집적되어 있는 지知의 총체에 더 의미부여를 한다. 고전과 더불어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모든 것, 말 그대로 전체적인 통합의 관점에서, 보다 폭 넓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길 바란다. 독학은 ‘마음먹은 일을 지속시키는 일’이며, 그러기에 ‘비용을 지불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학의 위험성은, 응답과 질의과정이 없기 때문에 독선적인 해석의 리스크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어떤 분야, 이슈에 대해 읽고자 할 때, 먼저 입문서 한권을 정독하고, 다시 입문서 5권을 가볍게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 물론 책상 위에 일단 쌓아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저자는 책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는 팁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다카시의 방식이고, 독서를 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독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간혹 너무 두꺼운 책을 밑줄 긋지 않고 중요한 페이지를 접었다가 나중에 다시 체크하려 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필사도 해보았지만, 확실히 책읽는 속도가 더뎌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연찮게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노트에 메모하면서 독서를 했다. 근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그렇게 메모를 했을까? 아마도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라 다시 볼 기회가 없으니 메모를 했을 것이다. 근데, 한 번씩 대학노트를 뒤적이면 메모의 내용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책의 내용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게 메모의 힘이다. 독서를 할 때 너무 속도 위주로 가다보면, 기억은 휘발되고 망각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잊어버려야 또 받아들일 수 있으니.
하지만, 속도도 중요하다. 독서를 시작할 처음엔 독서법에 대한 책중에 김병완의 <퀀텀독서법>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독서는 뇌로 하는 것이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결국 양이 질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3년 1000권, 더 나아가 자신은 3년 1만권 독서를 했다고 자랑한다(독자들 중에는 김병완작가가 너무 자랑이 심하다고 하더라ㅎㅎ). 독서를 처음 할 때는 굉장히 도전이 되었다. 하지만, 김병완 작가의 자기계발서를 계속 읽다보니 중복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손에 그 사람 책을 잡기가 싫어졌다. 중복이 많아도 너무 많아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모든 책은 모든 독자에게 다양하게 자신에게 나름대로 필요한 책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평가한 것 때문에 그 책을 가까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선입견을 가져 멀리하게 되면, 그것만큼 악평한 자가 저자에게 미안한 일도 없다. 그래서 평가하는 것이 때론 조심스럽다. ‘결국 양이 질을 낳는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기에, 김병완 작가의 책들은 선별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다독가이기에 메모하고 머무르는 여유보다는 전진하는 데 더 큰 장점을 둔다. 독서법의 왕도는 없는 듯하다.
‘지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에겐 확실히 지적인 광기가 있는 듯하다. 놀란 것은 그의 부모가 크리스챤이었다는 것이다.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에서 기독교집안의 출신이라는 것. 그가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런 신앙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가 신앙을 가진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은 판단된다. 영어, 페르시아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가정교사를 두어 외국어를 배웠다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있다.
엄청난 정보광, 지적인 호기심이 ‘고양이빌딩’을 개인서재로 만들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까지 만들었다. 그리고서 자신의 자료와 문서들을 보관하고 관리, 정리하는 비서를 뽑기 위해 광고를 냈다. 500통이 넘는 지원자들이 몰렸다. 결국 21명으로 추려서, 최종후보를 4명으로 압축해서 시험과 면접까지 보았다는 이야기는 일반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내용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확실히 광적이다.
그의 저서, <지식의 단련법>을 읽다 도서관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었다. 그리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을 빌렸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이 책은 읽다가 한번 대충 훑어보고 반납했다. 모든 독서가들은 나름대로의 주관과 고집이 있는데, 메가 독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피가 되고 살이 되기엔 나에게는 너무 벅차다 싶어 추천도서만 챙기고 반납했다. 특별히 기억나서 구매한 책은 사진작가 카파의 책이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런 지의 거장이 추천하는 책은 분명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명작과 양서를 훔쳐볼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 대한 내가 느낀 점을 대충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일본인들 중에 지적 거인이 굉장히 많다.
둘째, 일본 저서들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이 많다.
셋째,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식욕과 정보욕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fact이다. 잡지, 과학, 우주, 수학, 철학...모든 영역을 뛰어넘는 지적 탐욕이 그에겐 있다.
넷째, 지식이 차고 넘치면 외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최신의 과학정보와 자료가 외국어로 넘쳐난다. 관심은 있는데 언어가 안 된다. 언어의 한계로 보지 못한다면, 지식인으로 그것도 힘든 일이다. 과학관심자들에겐 더 그러할 듯!
다섯째,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렇게 ‘지적 거인’으로 서기 위해선 아내의 내조가 크게 작용했다. 새벽에 남편의 ‘고양이 빌딩’의 벽에 그릴 그림 그리는 일로 인해 지인을 찾아가는 데, 아내가 운전을 손수하며 동행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내는 과연???
여섯째, 지적호기심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저자의 탐욕적 지식의 호기심은 넘쳐났던overflow 것이다.
일곱째, 짧은 시간에 다치바나 다카시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좋았다.
여덟째, 더 많은 앎을 위해 그는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학독서습관을 들 수 있고, 후천적으로는 그가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문학을 좋아했던 학창시절이지만, 저자는 문학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문학fiction보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non-fiction이 더 흥미롭다고 말한다.
아홉째, ‘멋지다’는 말보다는 ‘대단하다!’ 말을 남기고 싶다.
열 번째, 하지만, 내겐 ‘딱, 거기까지다!’
여담...인용 쪽수가 없네요. 그땐 뭐 중요하겠나 싶어 기록하지 않았나 봅니다. 겨울이 너무 추웠나? ㅋ
(다치바나 다카시 책 다 읽을 것도 아닌데, 리스트를 올린 것은 여러분의 검색하실때 수고를 덜어드리려고 올렸슴돠! 이미지 안보이는 두어권의 책은 제외시켰네요. 번역 안 된 책도 많겠죠! 대단하지만 부럽지는 않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니깐 이라믄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