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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얼마 전 내가 읽었던 책은 위근우 작가의 책. 뭐 구태여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만큼 선명하고 때로는 사이다 같은 문장들로 맞는 말 대잔치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이었다. 정확한 언어들에 신나서 열심히 플래그 붙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 책 페미니즘인데 왜 이렇게 시원하기만 하지? 이물감이 없지?

그러면서 들었던 질문 또 하나.
시스젠더 남자 사람이 여성주의를 읽거나 공부하는 기분은 뭘까. 자책? 죄책감? 서늘함? 혹은 지적 호기심? 자기부정? 답답함?

무튼, 위근우씨 글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즐거웠는 데, 즐겁기만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굳이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남자가 쓴 페미니즘적 비평은 달랐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술술 읽히고, 말이 착착 붙고, 아오, 누가 저 개소리 하면 나중에는 저 문장으로 패줘야지!! 하게 되었다능..

*

“(미투의 정치학) p.31
언어는 언제나 현실이 한참 지난 후에 당도한다. 그 간격은 몇 년일 수도 몇백 년 일수도 있다. 언어가 늦을수록 우리는 고통 받는다. 적어도 여성주의, 여성운동에는 조롱의 대상으로서 ‘강단 페미’가 있을 수 없다. 여성주의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 지배 언어와의 불일치가 몸의 통증과 폭력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에게 말과 실천이 어떻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읽었던 여성주의 텍스트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쓰고 한 말들이었다. 내가 여성주의 텍스트를 읽을 때 느끼는 기분이란,,,
대환장, 열불, 딥빡🔥🔥
본질 적으로는 아픔. 통증...?

솔직히 말하자면 읽기 겁내 힘들다. 아오, 속시원해!!! 하는 느낌도 조금 있지만 대부분 마음이 먹구름 낀듯 꾸물꾸물 해진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처럼 머리가 먼저 반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깊은 한숨, 입술을 깨물거나, 갑상선 쪽이 당기거나, 소름이 쫙 끼칠 때도 있고, 눈물(콧물)이 먼저 쏟아질 때도 있고... 가슴이 먹먹해서 실제로 두드릴 때도 있고...... 때때로 너무 텍스트에 몰입하지 않기 위해 애써서 거리두기를 노력해야할 만큼, 정말 ‘몸으로 읽는다’는 표현이 맞다. 정확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평생 문맹이었던 사람이 수년간 읽지 못해 밀쳐둔 헤어진 연인의 긴 연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페미니즘 독서는 여타의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알았다!!!’ 지적 쾌감과는 조금 다르다.... 아픈지 몰랐는 데, 거길 누르니 내가 아프단 걸 알겠어.. 하는 뭉친 근육 안마 쾌감..ㅋㅋ

*
아픈거 이제 알겠어 증상(?)은 페미니즘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더욱더 심각해져서 요즘은 여성이 쓰거나 만든 여성서사(영화 벌새, 프란시스하 등등)작품이나, 하다못해 그저 몸을 움직이는 그냥 체육(?) 에세이(아무튼 피트니스, 마녀체력)일 때도 눈물이 막 쏟아진다....


“(아무튼피트니스) p.126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p. 133~5
또 하나, 다른 세계를 알게된 기분이 묘하다. 나는 몸을 혐오했다.(...) 나는 이제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아쉽고 모자라도 내 몸이 나와 동행할 나의 일부라는 것,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활력이 있으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저 문장이 뭐라고. 뭐라고!!!
나는 눈물이 나느냔 말이다....진지하게 우울증 의심할 뻔했으나.... 아주 건강한 감정의 반응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

“(일하는 마음) p. 35

그러니까 어떤 여성들은 불운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죽어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어 소비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너네 넷이서 여사 하나를 못 당하느냐’는 말을 상무에게 들었다며 그 넷 중 하나가 내게 칭찬이랍시고 전하고선 머쓱히 웃던 장면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아무렇지 않음’상자에 처박아 놓았던 무수한 장면들이 있었다. 화가 나고 불쾌해질 때면 왜 난 ‘쿨하지 못하게’이런 일에 마음이 상할까 자책했던 순간들이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지 알 수 가 없어서 ‘아무렇지 않음’상자에 처박아 뒀던 순간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제 언어를 갖고 해석되면서 상처인 줄도 몰랐던 상처들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상처에 걸맞는 몸의 반응들이 뒤늦게야 오는 가보다. 
어쩌면 내가 나를 다독이는 눈물 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시 바라봐달라는...... ?

근데 이게........ 쉽지가 않다. 상자에 처박아뒀던 오래전의 낡은 기억과 마음들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 무슨 고구마 줄기처럼 마구마구 엮여 올라온다... 헤롱🤪🤪

이를테면
“(미투의 정치학) p.23
사회가 여성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허락했는가 아닌가 혹은 여성이 그것을 쟁취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다.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행사하지 않았을 때 보다 더 큰 피해(해고나 사회적 ‘매장’)가 기다린 다면 누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겠는가.”

누구는 그냥 머리로 이해할 이 문장을 읽으며 난,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든다. 그 때 그 새끼가 나를 만졌을 때, 왜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 지/ 혹은 그 때 그 후배에게 폭로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겠어서 그 질문 한 것 자체를 미안하다고 지금도 백번 사과해보고 싶은거라든 지 / 그가 어떤 인간인 지 잘 알면서도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공론화하지 않았기에 계속 좋은 인간인 척 하는 모습을 역겨워하면서도 인간은 참 다면적이야.. 정도로 모든 인간을 퉁쳐서 범주화 했던 어떤 시간들이라든지. (거칠게 세가지 사건을 적었는 데 모두 다른 사건이며, 세가지 사건을 적으며 연쇄적으로 삼십가지 사건이 떠올라서......... 글쓰다가 짜증남)
.

.........
*

언어가 생겼다.
그리고 상처도 추가되었다.
여전히 빨간 그 상처는 아프다.
그런데 알아서 다행이다.
이제라도 약발라 주면 되니까.

그랬구나, 아 그랬었구나.
그 때 나의 마음은 그런 거였는 데,
왜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여튼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요즘에 태어난 여자라서 다행이다. 여성서사를 몸으로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좀 힘들고 피곤하지만 사뭇 다른 독서/영화 체험. 마니 읽고 보고 느끼고 울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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