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끼리끼리' 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어쩐지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끼리 편먹고,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 편먹고 노는 행태가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없는 사람끼리, 못난 사람끼리 어울려 연대하고 논다는 얘기는 없잖아요? '끼리끼리' 하면 주로 30평대 사는 애들끼리, 40평대 사는 애들끼리 어울려 논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예로, 패거리 문화의 예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끼리끼리'의 긍정성에 대해 알게 되네요. 제가 렌트비를 아끼려고 일반 아파트에서 학교 아파트로 이사한 얘기는 말씀드렸습니다. 전에 있던 아파트는 물론 학교 아파트가 원래 후진 대신 다른 아파트보다 저렴한 관계로 지금 있는 학교 아파트보다 렌트비가 50% 정도 비쌌습니다. 그래서인지 거기 있는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었지요. 그냥 먹고 살만한가 보다 하고 안그래도 느끼던 차에 알게된 한 MBA의 부인은 정말 압권이었지요. 그녀의 시아버지는 봉제인형을 만들어 70,80년대 미국으로 수출해 부를 얻으신 분이랍니다. 그래서인지 하나 있는 시누이는 음악 전공했는데 외국에서 고등학교때부터 유학해서 13년을 있다가 귀국해서 강사하고 있답니다. 지금 출강하는 대학에 2년 후 자리가 비는데 그 자리를 얻으려고 지금 애쓰고 있다네요. 인맥관리는 13년간 시부모님이 해오셨답니다. 모든 음악회 참석하고 봉투 돌리시고 하셨다네요. 지금도 교수 부인의 전시회도 일일이 다 관람하시고 격려금도 주신다네요. 그리고도 5억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허걱!
그 부인이 외국계 직장을 다녔는데 둘째 애를 낳고 퇴직할 무렵의 월급이 300만원이었는데,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는군요. 겨우 그 돈 갖고 뭐하냐면서 시누이 로드매니저나 하라고... -시누이는 학생들 가르쳐서 월 1000만원 이상을 벌고 있대요- 남편의 MBA학비가 연간 5천만원정도이고, 아들 유치원비는 월 150만원인데 이 돈을 제외하고-이 돈은 일시불로 다 냈으니- 한달에 한화 670만원을 송금받아 쓴다네요. 그러니 저보고도 '이거 좋아요. 이거 사세요. 이거 얼마 안해요. 한 500불이면 사요' 하는 소리가 간간 나온답니다. 돈의 단위가 다른 것이지요. 한국에 내년에 가는데 가면 시아버지가 강남의 40평대 아파트로 -지금은 강남 30평대 아파트 거주- 옮겨주신답니다. 자기는 시부모님 돌아가시면 그 돈 다 자기것인데 미리 받아서 생색내는 소리 듣기 싫은데, 남편이 왜 부모님이 주시는 걸 안 받냐고, 그건 불효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사가야 한답니다. -이 얘기를 듣고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나요?- 그러면서도 자긴 여기서 렉서스 사서 가고 싶은데 남편이 안사준다면서 짠돌이라고 욕하더군요. 이미 돈 많은거 다 아는데 남편은 돈 있는 티를 내면 다른 유학생들의 시기의 대상이 된다면서 부인이 겨우 신도 15명 있는 교회의 목사 사모에게 피자 한 번 사준것을 가지고 타박한답니다. 그 목사 사모는 매주 15명의 신도에게 점심을 해 먹이는데 말이죠.
그럼 이 아파트는 괜찮냐고요? 제가 보기에 유학생의 70~80%는 부모의 원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한국에서 시부모님이 집을 사주셔서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에 보태고 있고요. 근데 이 아파트에도 한국 사람이 얼마간 삽니다. 근데 그 중 제가 아는 사람은 넷이고, 그 중 둘은 원조가 있는데 둘은 원조가 없습니다. 원조가 있는 둘은 바빠서 저랑 놀 시간이 없고, 나머지 둘과 노는데 -아이 나이도 같고요- 이 사람들은 여기서 나오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로 렌트비 빼고 한달에 한 140만원 될거라는군요- 그 돈으로 자동차 보험과 공과금을 내고 생활비로 쓰는 것이지요.-여기 보험은 한국보다 비쌉니다- 그러니 애들은 아무데도 보내지 않고 -만 3살- 그냥 하루 종일 집이나 놀이터에서 데리고 놉니다. 여유가 없다보니 20불 이상의 물건을 사는데 엄청 심사숙고 합니다. 제가 한국 슈퍼가 멀고 남편은 바빠서 자주 슈퍼 갈 시간이 없어 큰 맘먹고 180불짜리 냉동고를 하나 샀더니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한국서 가져온 애들 책이 한 700권쯤 되는 것 같은데 여기 도서관의 한국 책보다 훨씬 많다고, 도서관 차리면 되겠다고 하도 부러워해서 책을 빌려줬는데 애가 찢었다는 연락이 오고, 그나마 한달이 넘도록 되돌려주지 않네요. 저는 어차피 빌려주기 시작한 것 계속 빌려줘야지 어쩌겠냐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노골적인 부러움 앞에서 안 빌려주고 버틸수도 없지요- 좀 그렇네요. 애들 퀵 스쿠터를 25불 주고 샀는데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신경쓰이는 대상입니다. 애 태우려고 산 것을 남 눈치보여 안 태울 수도 없고, 태우자니 얼마냐 어디서 샀냐 우리애도 갖고 싶어하는데 하면서 말하니, 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눈치가 보이네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 끼리끼리 노는게 정신 건강에 좋구나. 있는 사람끼리 논다고 질시하는게 아니구나. 그게 내 인생 사는데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럼 위에서 언급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요? 제가 그들을 배제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진 한도 내에서는 다 나누고 있습니다. 제빵기를 갖고 있으니 식빵도 구워다주고, 애들 책도 빌려주고 저희집에 와서 놀게도 합니다. 그 둘은 집에 장난감도 별로 없어서 저희 집에 오는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저희집에도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근데 와서 저희 애는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들끼리 노네요. 물론 그들은 이미 1년 이상 친구로 지내와서 잘 맞긴 하지요. 그 엄마들은 모르는지 제지하지 않고요.
제가 한국에서 별로 아줌마들과 교류가 없어서 잘 몰랐던 것일까요? 아님 거기서는 동네별로 사는 사람들 수준이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엇비슷해서 괜찮았던 걸까요? 하긴 여기는 온데서 온 사람들이 다 모여 있으니 천차만별이긴 하겠지요. '끼리끼리'의 긍정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끼리끼리'는 긍정적인 단어였군요.
p.s
신랑은 이 글을 올리는데 대해 엄청 반대했습니다. 한국은 좁아서 몇다리 건너면 다 서로 아는 사이인데, 그런 글을 서재에 올리면 어쩌냐고요. 혹여 제 서재에서 이 글을 보시고,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해도 함구해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