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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넘기는 이쁜 손
  •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13,500원 (10%750)
  • 2019-07-25
  • : 811

일본 추리소설계 중견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집이다. 예전에 불운한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가 두 편 출간된 적이 있는데, 중간의 몇 편을 건너뛰고 2016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조용한 무더위>가 국내에서는 올해 나온 것이다. 시리즈의 첫 두 작품은 읽어보았지만 큰 인상은 남아 있지 않고 하무라의 다소 시니컬한 성격과 터프한 언행만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 <조용한 무더위>에서도 큰 변화는 없지만 아주 살짝은 밝아진 듯한 모습이라 반가웠다. 표지 그림만 보면 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소소한 사건을 해결하는 발랄한 일상계 미스터리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여기저기서 맞기도 하고 크고 작은 사고도 당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프로페셔널 탐정이 등장하는 소프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에 가깝다.

전체 6편이 실려 있는데 첫 작품은 6월, 마지막 작품은 12월에 끝나 하무라의 반년을 보여주는 계절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시리즈 초기작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것은 하무라가 '살인곰 서점'이라는 추리소설 전문 서점에서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탐정 일을 해나간다는 것. 주요 배경이 추리소설 전문 서점이라는 독특한 공간이다 보니 분위기가 다소 밝아졌고, 자연히 동서양 추리소설에 관련된 얘기들이 많이 나와 추리소설에 대해 많이 알수록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 작가, 편집자, 독자 등 추리소설 씬의 뒷얘기도 자주 언급되니 추리소설 마니아 입장에서는 한층 몰입감이 배가된다. 탐정사무소라는 조금은 음험한 이미지가 아닌 밝은 느낌의 추리소설 전문 서점을 무대로 삼은 것은 2기 하무라 시리즈의 최대 특징이라는데, 배경과 이야기들이 찹쌀떡처럼 잘 붙어 작가의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시니컬한 나레이션을 내뿜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등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소프트한 하드보일드지만 단편마다 다양한 장르의 맛을 선보이는 것도 강점이다. 표제작 '조용한 무더위'는 아주아주 유명한 고전 탐정소설의 모두가 아는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본격 미스터리이고,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는 서점에 매인 하무라가 전화로만 인질극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물이며, 제목에서부터 <붉은 수확>의 패러디인 '붉은 흉작'은 해밋 류의 고전 하드보일드에 바치는 오마쥬, '성야 플러스 1'은 하무라가 고객의 귀중품(?)을 운반하며 겪는 온갖 위험 속에서 음모(?)의 실체를 깨닫는 모험물이다(이것 역시 제목 자체가 모험소설의 고전 <심야 플러스 1>의 패러디).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부터 절찬받은 인간 내면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악의, 독기 등을 은근하게 그리는 필체는 여전한 가운데 독특한 개성의 조연들이 선사하는 유머가 추가되어 예전보다 훨씬 부담없이 읽힌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열혈 팬도, 서점을 다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일상 미스터리 팬도, 다 떠나서 그냥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을 찾는 사람도 모두 만족시켜줄 뛰어난 단편집으로 많은 일미 애호가들이 선택에 참고하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랭킹 2위를 한 것에 충분히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붉은 흉작'과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 '조용한 무더위' 순으로 좋았으며 특히 앞의 두 편은 일본 단편 추리소설 올타임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 본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크게 떨어지지 않으니 6타수 3홈런, 3안타쯤 된다고 할까. 이 정도 타자라면 틀림없이 프로팀에서 드래프트가 된다. 여러분의 서재에 드래프트해도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고 감히 조언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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