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구조를 좋아한다. 이러한 구조는 캐릭터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시간적 여유가 있고 그 덕분에 설득력 있는 이입의 기회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 위에 독자라면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을 책에 대한 환상을 덮어씌우면 어떨까.
『사라진 서점』은 그런 매력적인 요소를 갖춘 글이다. 책이 지닌 낭만성으로 버무려진 진수성찬 같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애서가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장소와 인물이 곳곳에 등장하며, 열거하는 문학 관련 정보와 갖가지 소문들은 반갑기 그지없다.
'책의 낭만성'은 분위기에만 의존하여 구현되지 않는다. 장르의 힘을 빌려 서점이라는 장소를 통해 직접 말을 걸어온다. 문자 그대로 서점'에게'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며 실체가 있다. 나이 든 여인의 탈을 쓰고 이야기 속의 인물을 직접 연기하면서 주인공들 앞에 과감히 모습을 드러낸다. (장르 소설 속의 탁월한 점쟁이 같은 훌륭한 콜드리딩 실력으로 주인공들에게 책 추천까지 한다. 유명무실한 온라인 서점 추천 알고리즘과는 차원이 다르게.)
책이 지닌 낭만성의 극대화는 화려한 정보값 때문에 운명론적 필연성을 불러오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문학적 완성도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 꿈꾸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좋은 인생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책과 독서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 이야기의 모든 요소는 오직 이를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 출판사 도서 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