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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조각을 가지고 올게요
  • [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 앤서니 도어
  • 29,700원 (10%1,650)
  • 2015-07-10
  • : 2,378

 

 

 

"다이아몬드가, 결정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로레트? 얇디얇은 층이 쌓이고, 매달 원자 수천 개가 쌓이지. 차곡차곡. 천년이 흐르고 또 천년이 흐르지.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도 마찬가지야. 오래된 돌들엔 하나같이 이야기가 쌓인단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그 작은 돌멩이는 알라리크가 로마를 점령하는 걸 봤을지도 몰라. 그 돌멩이는 파라오의 눈 속에서 반짝였을지도 몰라. 스키타이의 여왕들이 그 돌멩이를 몸에 달고 밤새도록 춤을 췄는지도 모르지. 그 돌을 차지하려고 전쟁이 몇 번이나 일어났을지도 모르고." (1권, p86)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은 배워야만 경험가능한 극한의 세계다. 겪지 않고도 알 수 있거나 안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느 정도는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겪지 않고 전쟁에 대해 대체 뭘 알 수 있을까. 베르너와 마리로르는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딱 한번 만난다. 하지만 하루가 영원이 되었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내내 같이 있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예상도 한계도 뛰어넘는다. 소설의 배경은 넓게 보면 2차대전 중이고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다룬다. 공간은 사실 큰 의미없다. 어디에나 폭격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숨고 도망치기 때문이다. 뒤죽박죽인 챕터 연도가 혼란스럽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의미없는 이유도 전쟁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의 이유-원인과 결과를 넘어서는 장엄한 서사. 이후 1970년대 한번, 2014년이 한번 나온다. 작가로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20세기 최대 전쟁을 고작 스물도 되기 전에 겪고 한 세기 가까이 고향이나 고향을 떠나 살아남은 이들의 지금을 조명하는 건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쟁을 사는 사람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또 무엇이 될 수가 있나.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 프랑스에 사는 마리는 유전병으로 여섯살부터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하다가 열여섯살 전쟁 즈음해서는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파리 박물관에서 자물쇠 보관 담당으로 일하며 딸에게 점자책을 사주기 위해 착실히 돈을 모은다. 아무도 더 큰 것을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지도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러는 통에 전쟁은 소리 없이 그들 곁을 맴돌며 일상과 시간을 갉아먹고 파괴하기 시작한다. 일단 시작된 이상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공간. 앞을 보지 못하는 딸을 업고 이 시국을 견뎌나가야 하는 마리의 아버지는 전쟁이 심해지자 관장의 명령을 받고 네 개의 다이아몬드(진짜는 단 하나이며 누구에게 할당된지 모름) 중 하나를 들고 무작정 피난하지만 계획된 안전에 닿지 못한 채 작은 섬으로 이뤄진 성벽도시 생말로에 있는 마리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의 집에 머물게 된다. 누가 알았을까. 이토록 긴 시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줄. 다시는 평범한 삶을 가질 수 없음을.

 

독일에 사는 베르너는 유타라는 귀엽고 영특한 여동생과 고아원에 산다. 전쟁으로 고아가 됐는지 원래부터 고아였는지 중요하지 않지만 잘 모르겠다(나왔었나). 이 독일 소년의 취미이자 특기는 고장난 라디오 수리로, 나중에 이 재능 때문에 여러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베르너와 유타는 매일밤 우연히 갖은 허름한 라디오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죽인 세월을 견딘다. 둘은 둘만이 그런 게 아님을 알고,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옥탑방, 지하실, 2층 침대. 삶은 늘 가장 아래 아니면 맨 밑에서 이루어진다. 베르너가 히틀러 유겐트가 되어 국가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남매의 삶은 부모 없음만 빼놓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다. 이즈음 연합군에게 밀리고 있던 독일은 타국 전파를 자국민이 듣지 못하게 강력단속하고 지레 겁먹은 베르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유타는 지금 조국이 국민에게 알리는 소식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다름을 안다. 몰래 듣는 프랑스 전파가 흘려준 목소리가 지금 독일이 일방적으로 프랑스를 침공중이라 전했기 때문이다. 베르너는 다른 남자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히틀러 유겐트로 차출된다. 고아라서 더 쉽기도 했을 것이다. 전쟁 중 국가의 부름을 받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자 성공의 가도를 희망할 수도 있는 일이라, 사랑스런 동생 유타와의 이별을 감수하면서 호기로운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다.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이를 먹는다. 마치 성실히 갖지 못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1권 내내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은 단 한번도 만나지 않는다. 소녀와 소년의 일상과 전쟁을 숨가쁨을 급박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서서히 그리고 제대로 전쟁 안으로 끌어들인다. 전쟁을 사는 삶이 아니다, 삶 그자체가 바로 전쟁이다. 평상시에도 어려운 전시를 앞을 보지 못하는 채 보내야 하는 긴장 못지않게 고아로 살아가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베르너와 마리로르여야 했을 것이다. 아직 여물지 못한 꿈꾸는 10대에 전쟁의 한복판에 서있는 일. 그때 소설은 정확하고 유려하게 소설의 의미와 가치만을 다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지식을 활용하거나 지루하게 늘어놓지도 않으며 프랑스-독일-영국 등 참가국에 대한 판단 역시 보류한다. 퓰리처라는 명망있는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여전히 전쟁을 몸소 겪지는 못한 1970년대생 소설가인 앤서니 도어에게 중요한 건 전쟁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전쟁 속에 살던 한 소녀와 소년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다. 작은 소년 소녀에게도 가족과 친구, 꿈과 미래 등 잃으면 안될 것들이 많으니. 마리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과  전부인 아버지와 유모같은 마네크 부인 또 이웃들, 베르너의 '아이들의 집' 친구들과 원장과 입대해서 만난 프레데리크, 막스와 폴크하이머 등의 친구들 그리고 동생 유타의 다양한 삶들도 엿보는 세계다. 누가 터널을 통과했는지 또 나오지 못했는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한껏 움츠려 인생의 한 시절을 통과했는지, 전쟁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어리석음인지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그때 그곳으로 인도하는 급행열차. 그리고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빛.

 

베르너는 프레데리크가 보는 것을 보려고 애쓴다. 사진이, 쌍안경이 등장하기 전 시대를. 그리고 여기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찬 미개지 속으로 주저하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그림을 그려 가지고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 책은 새들로 가득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푸른 날개를 단 덧없는 신비로 가득하다. (2권, p15)

 

오히려 담담해서 더욱 서글픈 상황이 숨막히는 문장으로 여기저기서 팔딱거린다. 글로 읽는 피는 실제의 피보다 더욱 진하기도 더욱 묽기도 하다. 더 새빨갛기도 하고 덜 빨갛기도 하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 눈앞에 있다가 금세 저 바깥에 있다. 폭탄처럼 찢어발기는 희망 없고 변하지 않는 시간이 베르너와 마리로르를 통과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다. 소설은 한번도 극적인 순간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모든 순간이 극적이고 눈부시고 뜨거웠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다. 죽음이나 죄책감으로 시간을 통과하는 게 전부였다. 빛도 사람도 사랑도 시간도 송두리째 어떤 삶을 휩쓸었다. 통과한 사람들은 다시 통과하기 전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사람이 만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진실 한 줄기를 손안에 꼬옥 쥐고 회상과 추억 속에 사는 두사람.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하고 내 소중한 누군가의 마지막을 또다른 누군가 기억하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후회하고 아프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올해 읽는 가장 대단한 문학작품은 아니다(내가 뭐라고). 정말이다, 이보다 나은 문학을 올해만 다섯 손가락 넘게 만났다. 올해를 한 달 남겨두고 이 리뷰여야 하는 까닭은 눈을 감아도 떠도 사라지지 않는 영롱하다못해 슬픈 어떤 빛 때문이다. 실패일지 몰라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을 작가의 한 줄기 빛. 베르너와 마리가 만남으로써 만들어진 하나의 운명. 폐허 위에 다시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그리고 살아있는(보는) 우리. 직선과 직선이, 면과 면이, 가로와 세로가 만나 비로소 생긴 점 하나 위 우리. 인간이라는 거룩하지만 종종 파묻히는 종족. 살리고 죽이고 살고 죽는, 그래야 백 년이 고작인 운명의 숨이 끝내 놓쳐지지 않아 읽기 시작한지 넉 달만에 그들을 소환한다. 지구상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나 시간이 돌이 되어야 하는지, 소년과 소녀가 어른이 되지 못하면 저 세상에서는 무엇이 되는지, 이루어지지 못한 꿈과 소원과 만나지 못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는 것과 보이는 것, 볼 수 없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에 뭐가 더 있는지 나는 알고 싶다. 보이는데 못 보는지, 보이지 않는데 보는 척 하는지. 모든 게 사람이었다, 그리고 숨이다. 살아있으니 뭐가 돼도 되었다. 살았으니 허락된 듯했다. 하나의 점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진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되기 전의 돌이었다. 그렇게 인생이 고달프고 이다지도 짧아서 아무도 아무도 그 누구도 끝내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삶이자 시간이고, 하늘 아래 존재하는 우주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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