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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조각을 가지고 올게요

 

 

 

읽는 책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그중 한 권.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읽고 있다. 일단 아는 작가 먼저, 아는 작가 중에서도 진짜 아는(작품을 읽어본 적 있는) 작가 먼저. 하지만 이름을 아는 작가, 이름과 작품을 아는 작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 가리지 않고 결국에는 전부 읽을 생각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가장 좋은 건 픽션을 다루는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머무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 그들도 이 세계 지구인이니까. 때로 문학적 미사여구 뒤에 숨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반성과 회한 또는 따끔한 비판이나 충고로 제대로 기능할 때가 드물지 않다. 독재와 식민시절을 누구보다 잘 그려내는 동아프리카 최고이자 유일의 작가 시옹오에서 무덤까지 껴안고 가도 될 십대 시절의 나치 활동을 고백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진정성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냈던 모든 목소리까지 의심받은 그라스까지. 한때의 잘못된 신념과 선택을 사과하고 용서받기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생도 있는 법이다.

 

"독재의 진짜 끔찍함은 목소리를 빼앗아 간다는 거예요." 그가 말했다. 그는 영어가 가진 국제적 지배력이 토착민들의 성대를 겨눈 칼을 날카롭게 벼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모든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갖기 위해서 무조건 영어를 거쳐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방정식이 아니죠." -응구기 와 시옹오 (070)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가 에이머스 엘론은 그라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어째서 60년이나 기다리고만 있었습니까?" 그의 질문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그라스의 답변 역시 박수를 받았다. (중략)

"전 그 어린 소년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라스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하지만 그 애는 너무 방어적이었어요. 가끔은 거짓말도 했죠. 제가 소년이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두 명의 낯선 사람들처럼 여겨집니다. 언젠가는 만나겠죠." -귄터 그라스 (076)

 

 

세 편 이상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 중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알고 있는 수많은 소설가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대답하기 어렵다. 있다면 굉장한 일이지만 없어도 별 문제 없을 그냥 한번 해보는 질문.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나 혼자만 (그 진가를) 알고 또 좋아하는 작가 그것도 소설가를 간직하기란 두말할 것 없이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늘 우리 아빠가 하던 말씀. 내가 아는 건 항상 다른 사람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해. 대체로 나한테 좋은 건 남한테도 좋은 법이고, 남이 좋아하는 걸 나 역시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게 그 반대보다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누구나 사랑할 책, 예외는 없을 책, 『작가란 무엇인가』 시리즈와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나란히 놓아본다. 그들은 고지에 도달했거나 이미 절반 이상 올라 손 흔드는데 또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무 특출나거나 필요이상으로 고집스런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된다. 작가가 태어나는 거라든가 온 우주가 만들어내는 거라든가 하면 어쩐지 좀 억울할 것 같아서.

 

어느 봄에 그 어떤 책보다 진지하게 이 책들을 읽었다.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비우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의미들.

 

 

 

 

 

 

 

 

 

 

 

 

 

 

 

 

[파리 리뷰_인터뷰]를 편집한 『작가란 무엇인가』는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작가 중심으로 선별/번역되었으니 안 읽은 작가는 있어도 모르는 작가는 없지만,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에는 정말 모르는 작가가 몇 있다. 작가 시리즈가 인터뷰 녹취 형식의 진짜 인터뷰 양식을 표방한다면, 존 프리먼은 자신이 만난 소설가의 목소리를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언어로 온 역량을 발휘해 길어야 네 장 꽉 채운 분량으로 핵심만 써낸다. 작가 시리즈의 축소판 같고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귀에 쏙 들어온다. 해당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과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화권, 작품 내용, 특이한 아이덴티티, 에피소드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경우 존 프리먼의 글솜씨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놀랍게 잘 읽힌다.

 

 

 

『보르헤스의 말』에 실린 인터뷰와 [파리 리뷰_인터뷰]에 실린 인터뷰의 시기와 장소는 같지 않을 것이다. 같다고 해도 그만인데,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출처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보르헤스는 (직업상)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터뷰에 특정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같은 사람이 자신의 문학가로서의 항해와 인생을 말할 때 결국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지 않겠는가. 내가 필요이상 보르헤스-정확히는 보르헤스의 작품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두 권 다 읽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감동이 덜한 건 벌써 알고 있는 그의 생각을 다시 듣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두 인터뷰가 각각 이뤄졌지만 보르헤스는 단 한사람이다. 한사람이 세상에 대고 자신과 자신의 작품과 자신의 관심사(호오好惡)에 대해 하는 말은 천재지변이나 역변에 의한 자기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네가 아니라는(본질적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보르헤스의 외부를 더 알기 위해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어렵지만 그의 작품으로 되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존 프리먼으로 돌아가서,

 

아직 많은 책을 읽지 않았을 때 단연 Top에 들던 하루키는 나날이 그 순위가 내려가지만 그는 아직도 이십대 초중반 내 문학 사전 한켠에 조각 같은 달빛을 비춰주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괜히 한번 고백해보자면 '청춘의 찬란함을 쾌활하고 섹시하게 그려내는' 『노르웨이의 숲』이나 『스푸트니크의 연인』보다 『양을 쫓는 모험』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초현실적 판타지'나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합한' 『태엽 감는 새』를 나는 더 좋아한다.)   

"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지요. 방은 어둡습니다. 완전히 캄캄해요.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볼 수 있고, 그걸 만질 수도 있어요. 그런 다음 이 세계, 이쪽 편으로 돌아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거지요."

"강해져야 합니다. 거칠어야 하고요. 그 어두운 방에 들어가고 싶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신뢰해야 하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053)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이야기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그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내는 시간들 중 티끌만큼만 소설을 읽는 데 써도 좋을텐데. 내가 곧 나의 이야기. 당신이 가진 나는 각기 다른 나. 그것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아니다.

 

애트우드의 말처럼.

"크게 본다면 당신이 곧 당신의 이야기예요." 애트우드가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각기 다를 것이고, 그것들 모두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과는 다를 거예요." -마가렛 애트우드 (392)

 

벌써 한참 멀리 와버렸다. 가즈오 이시구로, 나딘 고디머, 도리스 레싱, 필립 로스, 모옌, 할레드 호세이니, 부부라서 2인1조로 묶인 시리 허스트베트와 폴 오스터, 사랑하는 살만 루시디와 오르한 파묵 그리고 빼먹은 여러 작가들. 다른 얘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래, 여기가 끝이 아니겠지. 늘 그다음도 중요하다, 중요했다.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그다음 독서가 더욱 기대된다. 그다음 문학이 무척 그립고 그다음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겨진다.

 

3분의 1 정도 되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읽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작가와는 또 언제 만나게 될지, 이름을 알지만 작품을 읽지 않았거나 한 작품 정도 겨우 읽어서 문체나 스타일, 주제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작가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작품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 또 당신과 만나게 될지 이야기하게 될지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지.

"그 상은 절 규정하지 못해요. 그저 노벨위원회가 제 작품을 대단히 뛰어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죠. 그게 다예요. 해마다 또 다른 수상자가 나오잖아요. 수상은 중요하고, 상금은 기막히게 좋죠. 하지만 그다음도 중요하죠." -토니 모리슨 (042)

 

 

하지만 내가 다시 이 책에 대해 말할 다음이 있을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이제 나는 여기-이 책 옆에 지금 모습으로- 없다. 읽는 내내 원래도 남 못지 않은 독서력이 데시벨로 상승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펜을 드는데 모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같으면서도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게 신기하다. 토니 모리슨에 의하면 미국 문학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이창래와 줌파 라히리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그들에겐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만). 더이상 표현도 안 되는, 사랑해마지않는 카뮈와 제발트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그들은 좀 더 오래 살아야했어(그들의 목소리를 이제 영영 들을 수가 없다니).  

 

이 짧은 생에 좋아하는 소설가 몇 명쯤 품고 사는 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거룩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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