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마호가니 책상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 이병률-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된다고 안치환은 노래하였다. 굴하지 않고 비껴서지 않으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정호승은 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근데, 외로움에 우뚝 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이들에게 더 애착이 갈 때가 있다. 열흘 남짓 열리지 않던 옆방 문소리에 머뭇머뭇 다이얼을 돌렸을 사내의 손떨림이라든지, 그 손떨림을 너무 잘 알면서도 외로움이 들켜버릴까 살며시 이불을 끌어 덥는 사내의 미안함이라든지, 두 사내 누구에게도 선뜻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그냥 외로움에 전염되어 버리는 독자라든지.... 외로움의 쓰리쿠션이 천장을 맴돌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