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무슨 근거로? 무슨 자신감으로? 뭐가 그리 잘나서?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어렸을 때 꿈은 책방 사장이었다. 지금은 안다. 책방 사장은 결코 마음대로 책을 읽고 사는 직업이 아닌 것을. 오히려 책방 경영과 생계 문제 라는 이중고에 부딪혀 훨씬 더 책을 읽기 어려운 직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암튼 어렸을 때 내 꿈은 서점 사장이었다. 어느 작은 시골 동네의 조그마한 책방 사장. 얼마나 낭만적인가 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했었다. 바보였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당시까지는 도서 대여점이라는 가게들도 동네마다 두세개씩 있었다. 가끔은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과 도서 대여점을 같이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조금 고민을 했었다. 도서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비디오 테이프랑 도서를 같이 빌려주는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그 고민의 뒷 배경에는 그 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난립했던 만화방과 무협 소설 및 무협 만화 양산소 시스템이 있다. 내가 한창 현실 감각 없이 대여점에 대한 고민을 했을 했을 무렵에는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왔던 판타지 소설(글로는 소설이라고 쓰지만 읽을 때는 쓰레기 라고 읽어야 한다.)들이 있었다. 암튼 그 90년대 초중반 무렵에 나는 현실 감각과 무관하게 내가 어느 조그만 시골 동네의 서점 주인 혹은 도서 대여점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이것도 조금 웃긴 이야기인 것 같다. 동네에서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나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감은빛 이라는 덧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느 정도 쓴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건 그 이야기를 전달한 화자의 착각일 뿐일 것이고, 대중적으로 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인간이다. 아주 가끔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정도. 암튼 최근에 의외의 인물들에게 글을 엄청 잘 쓰신다면서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글을 썼고, 20년 이상 남의 글을 고쳤던 입장이라 글을 못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1대 1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서 절대 긍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아주 긴 시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글을 못 쓰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는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로 아주 참신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몇몇 주제에서는 그렇다. 다른 주제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태도가 부담스럽다. 뭔가 내가 글을 쓰면 다를 거라는 그런 기대가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라고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타락한 천박한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특별한 방법이 생기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거의 손에 꼽힐만큼 가난한 사람이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사실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유명한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준비를 안 하고 특정한 분야에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정말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돈을 받는 다고 했다. 그래서 잠깐 동안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강사료가 거의 없어도 강의를 거절하지 않고 다 한다.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빈 말이라도 거의 무조건 다시 다른 강의를 청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기후위기, 환경, 에너지, 자원순환 분야 다양한 이야기 꺼리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30퍼센트 정도 약속을 지킨다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매번 내 강의에 만족한다. 물론 매번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그리 크게 변하는 요소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중요하다. 나는 어느 특정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특화된 어떤 중요한 위치를 가진 강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이겠지.


아. 글도 말도 다 쉽지 않다. 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제법 많이 받았지만, 말을 참 잘 한다는 칭찬 혹은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나는 확신했다. 상대적으로 순간 기억력이 좋아서 남들의 말들을 잘 요약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상대적으로 잘 기억해서 틀리지 않게 요약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 능력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서 특정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에도 들었다. 글을 잘 쓰는 양반이 현실은 왜 그렇게 사냐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현실도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늙은이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약간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멀어졌다. 나는 이미 늙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둬라. 글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쓸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내 나이가 점점 늘어날 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 밖에. 그냥 냅둬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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