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밤티, 왁뿌, 야르

아이들이 뭔가 말랑한 인형 같은 동그란 걸 손에 쥐고 조물락 거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냥 아이들 대화를 들으며 작은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요 녀석은 이제 사춘기를 지나갔으려나. 요즘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못 만난 아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큰 아이가 ‘밤티‘ 라는 단어를 쓰는 걸 들었다. 밤티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내가 아이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밤티가 무슨 뜻이야?˝ 큰 아이는 설명해주지 않고 계속 작은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큰 아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은 아이가 ‘왁뿌‘ 라는 단어를 썼다. 나는 이번에는 작은 아이를 향해 물었다. ˝왁뿌는 뭐야?˝ 대화는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이 서로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니?˝ 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아빠, 왁뿌 몰라요?왁뿌.˝ 라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만 저었다. 그러자 아이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액체괴물과 비슷한 것인데 액괴는 액체라 그 자체는 모양이 없지만, 이건 왁스를 굳혀서 고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걸 뿌시는 걸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요즘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액괴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갖고 노는 걸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해했는데, 왁뿌는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둘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었던 건데, 내가 그걸 이해해봐야 뭐 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둘이 떠들다가 이번에는 ‘야르‘ 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번에도 끼어들어 뜻을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그러고보니 밤티는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알려주지도 않았네. 대신 폰을 찾아서 검색했다. 밤티는 못생겼다 라는 뜻이고, 야르는 기분 좋다는 뜻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이상한 말들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려다가 남들이 다 쓰니까 따라 쓰는 거겠지 무슨 이유가 있겠나 싶어서 그만두었다.

요즘 매일 아이들이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걸 본다.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이 앱은 특정한 구성원들과 매 시간 약 2초짜리 짧은 영상을 공유한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엔 아이들 둘과 나 이렇게 3명이다. 아이들은 엄마와도 셋로그를 하니까 거기도 3명 방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매 시간 두 번씩 2초짜리 영상을 찍어야 하는 건가? 바쁘겠구나. 아니면 한번 찍은 걸 두 방에 공유하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방이 하나밖에 없고, 내 지인 중에 이 앱을 쓸만한 사람들은 모른다. 요즘은 언급하지 않지만, 나에게 이 앱을 깔아줬을 때 아이들 말에 의하면 애들 엄마는 이 셋로그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매 시간 이걸 올리지는 않는다. 평소엔 거의 생각하지 못하다가 가끔 쉬는 시간에 애들이 셋로그를 올렸다는 알림을 보고 나도 하나 찍어볼까 생각을 한다. 주로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회의를 하러 이동하거나 달리기를 하러 가면서 셋로그를 찍어 올린다. 아마 하루 24시간 중에 두세번 정도 올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은 주로 고양이를 찍는다. 큰 아이는 원래 본가(큰 아이 표현)에 있던 가장 덩치가 큰 고양이, 타로를 자기 자취방에 데려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학교와 알바 외에는 거의 타로를 찍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본인 셋로그가 아니라 타로 셋로그라고 써놓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에 있을 때는 태블릿과 교재 등을 찍기도 하고 밥이나 차를 찍기도 한다. 알바 가서도 일하는 중에 부지런히 찍어 올린다. 이 셋로그를 엄마 아빠랑 같이 하고 싶다고 한 건 큰 아이였다. 혼자 살면서 자기 생활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거의 매 시간 가장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건 주로 큰 아이다.

작은 아이도 자주 올린다. 집에 있을 때에는 주로 먹는 걸 찍어 올리고 가끔은 집에 있는 두 고양이, 차차와 먀오를 찍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하교 중에는 계단이나 바닥을 찍어 올린다.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에는 하기 싫다고 책상 위를 찍어 올린다. 요즘 부쩍 화장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가끔 화장한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나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일을 하다가 잠시 쉴 때 하늘이나 꽃을 찍는 편이다. 내가 일하며 이동하는 길에서 북한산이 잘 보인다. 가끔 북한산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 어릴 때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북한산을 올라가다가 도중에 내려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북한산을 보고 그 기억을 떠올려주기를 기대하고 올린다. 달리기를 할 때는 천변 꽃들을 주로 찍고 가끔 한강 풍경을 찍기도 한다. 회의나 일정 때문에 이동할 때는 예전에 아이들과 가곤 했던 가게들 간판을 찍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가끔 젊은 사람들이 이 셋로그를 찍는 걸 보기도 한다. 짧게 2초간 뭔가를 찍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셋로그를 찍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전철에 교복입은 여학생 세명이 탔는데 번갈아 셋로그를 찍는 모습을 봤다. 이 아이들은 셀카로 다같이 찍더라.

노동과 운동

약 이주 전부터 늘 몸이 피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의 나는 일과 운동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동네 헬스장에서는 약 40분 가량 운동을 한다. 먼저 2~3킬로미터 트레드밀을 달려서 워밍업을 하고, 바벨 운동을 한다. 여기는 바닥에 바벨을 두고 프리웨이트를 할 공간이 좀 애매하다 그래서 벤치프레스를 주로 한다. 우리 집에는 바벨은 있지만, 벤치가 없어서 10년 넘게 벤치프레스를 못하고 살았었다. 그동안 못했기 때문인지 그냥 벤치프레스만 해도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덤벨 운동을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한다. 마지막은 정리 운동으로 케틀벨을 한다. 스윙과 클린 앤 저크를 섞어서 하는 편이다. 스내치는 양손으로 할 수는 없어서 잘 안 하는 편이다. 암튼 이삼주 전부터 다시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하곤 한다. 일단 재미가 있으면 멈추지 못하니까. 그러면 기분 좋은 근육통 보다 조금 더 근육 피로가 더 강하게 느껴져 피로감이 심하게 들고 좀 오래간다. 거기에 주 2회 정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한번은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 사이를 그때 그때 컨디션에 따라 달리고 나머지 한번은 주로 7~8킬로미터를 가볍게 달린다. 달리기와 운동 모두 일을 마치고 저녁 회의들을 가기 전에 하는데, 일을 마치고 바로 하는 운동이나 달리기가 약간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 특히 달리기는 공복인 상태로 하다가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걸 느끼기도 했었다.

어제는 정말 힘든 하루였다. 오전에 매장간 재고 이동 일을 하는 형이 병원 때문에 하루 쉬어서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해야 했다. 근데 하필 일년에 두 번 하는 할인행사 날이라 재고 이동 품목이 많았고, 매장마다 급하다고 요청하는 건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오후 배송이 주로 하는 일이라서 각 매장간 이동 경로가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하나 실수가 있었다. 순간의 착각으로 가장 가까운 매장을 두고 조금 더 거리가 있는 매장으로 먼저 향했는데, 나중에 그 가장 가까운 매장 점장님께서 반쯤 장난으로 항의를 하셨다. 어제 아침 일을 시작하자마자 들렀던 매장이었고, 그 점장님은 자신이 아침식사로 드시던 샌드위치 반 조각을 기꺼이 내주셨었다. 그랬는데 중요한 품목 하나를 너무 늦게 갖다줬으니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다.

오후에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이미 오전에 일한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첫번째 매장으로 갔는데 배송이 10건이나 있었다. 거기에 매장 지원을 나온 사무국 활동가가 사무실로 한 건을 더 부탁했다. 이 매장에서 가장 건수가 많았던 횟수가 8건이었는데, 드디어 두 자리수를 갱신했다. 그리고 할인행사 때문에 집집마다 박스 수가 많았고, 또 무거웠다. 짐을 실으며, 이러다 두번째 매장은 어쩌나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매장에 팀장님이 나와 계셔서 그 얘기를 했더니 두번째 매장까지 할 수 없을 상황일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다른 배송 기사님을 임시로 구해 배치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고생이 많을 거라며 커피를 사주셨다. 안그래도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커피가 들어가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이 차 짐칸에 짐을 완전히 꽉 채운 것도 처음이었다. 마직막 열번째 집 박스들은 못 실을 뻔 했는데 테트리스 게임 하듯이 박스 모양에 맞춰 짐정리를 해서 겨우 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무국 활동가도 그 생각을 했는지, 테트리스를 잘 하셨다고 한 마디 했다. 열곳의 집 주소를 모두 네비게이션 앱에 입력하고 이동 동선을 머리 속에서 그렸다. 할인 행사 때문인지 처음 가보는 집들이 몇 곳 있었다.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을 보자마자 걱정이 들었다. 저번에 그 집에 갔다가 차를 돌려 내려오느라 엄청나게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경사가 무척 급한 오르막 골목이었다. 언덕 위가 좁아서 차를 돌릴 공간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후진으로 내려왔는데 언덕 경사가 급해서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중에 골목이 크게 한번 휘어 꺾이는데 이 각도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경사가 워낙 급해서 자꾸만 차가 아래로 밀렸다. 몇 차례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각도를 맞추려다가 옆으로 아주 작은 공간이 있는 걸 발견했다. 올라갈 때는 못 봤던 곳이었다. 거기로 진입하면 어떻게든 차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차가 좌우로 크게 기울었다. 진입로가 앞뒤로도 급경사에 좌우로도 경사가 급해서 마치 차가 뒤집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그 좁은 공간으로 올라섰는데, 생각보다 좁아서 차를 돌리기 위해 또 한참을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이게 지난 번에 겪었던 일이었다. 그때 무사히 내려와서 했던 생각은 그냥 골목 입구에 차를 대놓고 짐을 들고 올라가자 였다. 다시는 이 골목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지 않겠다 였다. 이번에는 이 차 짐칸이 꽉 차있어서 후진으로 내려오기는 더 어려울 것이 뻔했다. 손수레를 꺼내 무거운 박스 하나와 수박이 든 상자 하나를 실었다. 언덕 위로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경사가 급하기도 했고 길이 평탄하지 않아서 자꾸 바퀴가 걸렸다. 첫 배송부터 온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마침내 언덕을 거의 다 올라설 무렵 손수레가 뒤집히며 상자들이 바닥에 굴렀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얼른 수박부터 살폈다. 다행히 수박이 깨지지도 않았고, 상처도 없었다. 건물 입구는 아직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냥 상자 두 개를 힘으로 들고 가야했다. 그리고 계단. 이런 오래된 빌라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할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서 쌀을 비롯해 무거운 물품들을 주로 주문한다.

첫번째 집 배송을 마치고 이미 완전히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네번째 집에서는 무거운 상자가 3개였는데, 손수레가 워낙 작고 부실해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지 한 묶음을 다른 손으로 들어야 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다. 여기 배송을 마친 후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셔츠가 에어컨 바람에 잠시 마르다가 다시 짐을 옮기며 젖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열번째 집 배송을 마친 시점이 딱 거의 퇴근 시간이었다. 중간에 처음 가보는 집들 때문에 골목에서 좀 헤매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혹시 힘들면 먹으려고 챙겨왔던 에너지 바를 급하게 먹으며 잠시 쉬었던 시간이 채 오분도 되지 않았다. 사무국 활동가 자리에 마지막 짐을 배송하고 차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의 피로가 심했다. 대체로 수요일에는 아이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달리기를 했었다. 어제도 만약 조금이라도 일찍 마치면 달리기를 하려고 런닝복을 챙겼었다. 일찍 마치지도 않았고 너무 힘들어서 달리기는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회의에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 소통방에 상황을 설명하고 하루 빠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우리집도 꽤나 경사가 급한 언덕 위에 있고, 매번 귀가길은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하는데, 어제는 정말 너무 지쳐서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찬 물에 샤워를 하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배는 고팠지만, 뭔가 먹을 힘도 없었다. 그냥 잠들었다가 밤 10시쯤 깼다. 그제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 통증은 확실히 나아졌다. 다행이었다. 다음날인 오늘도 여전히 할인행사 중이라 또 얼마나 많은 무거운 상자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에 푹 잔 덕분에 다행히 피로감은 많이 가셨다. 여기저기 조금씩 근육통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상태다. 오늘 같은 중요한 행사날 대체 인력도 없는데 내가 아프다고 빠질 수는 없는 일이라, 더 최악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잠들었었다. 그래서 아침에 깨자마자 몸 여기저기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늘도 육체노동에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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