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삼일절의 첫 뉴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독재자가 죽었다는 내용이었고, 이어서 이란의 반격으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화면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이 고귀한 일을 했다고 떠벌리고 있었다. 저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겠지. 애초에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로 지지자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이겠지. 누군가는 독재자를 죽이고 이란 국민들을 구한 것이니 잘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억압받는 이란 국민들이 직접 혁명을 일으킨 결과라면 무조건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코 이란 국민들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공습으로 독재자와 그 부하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무고한 학생들도 죽었다. 트럼프의 이 공격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저지른 것이다.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시키고 다시 선거를 했는데,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고도 했다. 그 전까지 여당인 자민당이 소수이고, 야당 연합이 다수였던 상황이 다카이치와 자민당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손쉽게 야당 연합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이유로 꼽는 의견이 더 많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일본 국민들은 과연 전쟁을 원하는 걸까? 다시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대일본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비록 지금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윤석열이 처음 등장해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며,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까지 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나 다카이치의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이 이렇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모습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국민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걸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정에는 관심 없는 멍청한 지도자를 선택했던 걸까?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현재 트럼프 정권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집행에 반발하는 시위가 많은 지역으로 번졌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푸틴과 시진핑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초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겠지만, 일본에도 다카이치와 자민당에 맞서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이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와 선택의 결과이다.

오래전에 누군가와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손쉽게 친일파를 비판하면 안 된다며, 만약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친일 행위를 할 거라고 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고, 잘 살기 위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친일 행위에도 수위와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일본제국의 이익에 도움을 주면서, 우리 국민들을 탄압하고 생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즉,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 만주와 간도로 넘어갔던 이유는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리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척박한 땅을 찾아가는 선택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범죄다. 만약 법으로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지르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륜이나 도덕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더라도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그걸 비난할 수 없다고 누구나 그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친일 행위를 했을 거라고 말하는 건 그 인간이 딱 그 정도로 자신만 아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다는 사실만 봐도 어불성설임이 당연하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부당하게 이 나라를 삼킨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 바로 오늘 삼일절이다. 우리가 이미 다 배웠듯이 삼일만세운동은 겨우 하루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탑골공원 인근에 있던 사람들만 참여한 국지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전국으로 그리고 해외로 확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 국민의 저항이었다.

오늘 삼일절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비록 내란을 저지른 세력들이 구속당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빨간당은 그들을 옹호하고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독재 지지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마 많이 겹쳐지겠지만,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을 숭배하는 인간들도 많다. 심지어 학살자 전두환을 옹호하고 노태우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인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지지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걸로 착시를 불러 일으켰던 사람들은 과연 괜찮았을까? 노무현은 김선일 씨 납치 사망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전쟁에 참여하는 파병을 강행했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가 저지른 노동자 탄압과 환경 파괴를 생각하면 절대 존경한다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재인은 어떤가? 우유부단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들면 그라고 불릴 정도로 국정운영을 엉망으로 했고, 박근혜를 몰아냈던 촛불의 의지를 모조리 배신했던 인간, 수많은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팽개쳐버린 인간이었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윤석열을 욕하지만, 결국 윤석열을 만든 것은 문재인이었다. 과연 지금 이재명은 어떨까?

누구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일부러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내 주위에는 빨간당 지지자도 없지만, 파란당 지지자도 많지 않다. 특히 이재명 집권 이후로 일부러 민주당 지지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에 빌붙어서 의석을 얻은 기본소득당과 진보당도 민주당만큼 싫어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니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데, 결국 나중에 이렇게 많은 표를 얻는 것을 보면 이상할 수 밖에.

내가 빨간당보다 파란당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중성과 거짓말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당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여러 파벌이 있고,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 정당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필연적으로 노동자인 국민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아주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늘 국민들에게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하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기 위해서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현황을 다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누군가 제시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결국은 어떤 틀에, 그가 속해있는 상황의 한계 안에 갇혀있을 확률이 높다.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늘 다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단 먼저 의심하고 깨어있으려고 애쓰는 삶은 피곤하고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갇혀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언제나 그 틀을 벗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단이나 세력이 언제나 같다고 느껴진다면 한번쯤 의심해보고 다른 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항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건 선택이니 타인이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다. 지금 보면 정치도 종교에 가깝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 없이 그저 당의 색깔만 보고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보다 더 굳건해 보인다.

작년 가을부터 여러 갈등 상황에 긴 시간 시달리고 있다. 사람은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바뀌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