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설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에는 원래 일정이 하나 있었다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확하게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막연히 뭔가 일정이 하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력을 확인하고서야 취소된 일정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낮에 뭘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운동을 가려다가 이번 주에 신나게 운동한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근육통이 찾아온 걸 깨닫고 하루 쉬자고 생각했다. 그럼 사무실 나가서 자료도 좀 찾고 글도 좀 쓸까 했는데, 피로와 근육통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뭐 그럼 낮잠이라도 자야지.
책을 조금 읽다가 졸고, 폰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좀 찾아보다가 다시 잠이 와서 또 졸았다. 다시 깨서는 서너개의 앱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익혔다. 그제서야 배가 고파서 간단히 배를 채우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시간 날 때 보려고 생각했던 일본 드라마가 뭐였더라 찾아보고 있었는데, 신작 추천으로 대만 드라마가 제일 먼저 보였다. 제목도 딱 눈에 띄었다.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추리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단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누가 출연했나 보는데, 정이건 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이건이라. 그 옛날 홍콩영화에 나왔던 그 정이건인가? 그제서야 포스터에 나온 그 얼굴을 알아봤다. 확실히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다. 그리고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살짝 애매한 장발 스타일. 그가 출연한 영화를 여럿 봤겠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풍운]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섭풍의 머리스타일도 지금 이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던가 싶다. 이 아저씨도 이젠 제법 나이가 많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드라마에 나오는구나 하며 드라마를 시작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위 말해 인플루언서 라고 불리는 SNS 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나온다. 정보를 찾아보니 각본과 감독이 수원셩(蘇文聖) 이라는 사람이더라. 이전 작품들의 수가 적었고 내가 본 건 없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원작이 있는 경우가 많던데, 그런 정보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꽤 괜찮게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일단 제목 덕분에 가벼운 느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 라는 기성 세대에게는 낯선 단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이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다루며, 거기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은 독창적으로 잘 만든 이야기라고 느낀다. 다만 더 깊은 주제의식으로 파고 들어가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사실 이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이 전체적으로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다. 뭔가 더 크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좀 안타까웠다. 제일 어이없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첫번째 살인이다. 아니 결국은 피해자가 죽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암튼 그 첫 피해자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나서 나중에 맨 마지막에 숨겨진 진짜 악당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사건은 피해자가 될 인플루언서(이 단어를 대체할 말이 혹시 없을까 검색해보니 국립국어원이 ‘영향력자‘ 라고 제시했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그건 더 어색하기만 해서 그냥 길어도 이렇게 써야겠다.) 가 실제 총과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비비탄 총을 가지고 경찰서 앞으로 와서 총격을 가할 것처럼 하다가 여러 경찰들과 대치 상태에서 주인공이 쏜 총에 맞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인데, 여기가 좀 많이 아쉽다. 일단 이 피해자가 하늘로 첫발을 발사하고 사람들이 총성을 듣고 놀라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나중에 이 피해자가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총을 빼앗아 확인해보니 이게 비비탄 총이더라. 이게 말이 되나? 아니 비비탄 총에서 어떻게 실탄 사격과 같은 큰 소음이 날 수 있나? 그리고 경찰들이 총을 든 사람을 제압하는 장면도 너무 어설프게만 그려진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해도 설마 이 정도일까 싶다. 게다가 이 피해자는 왼쪽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나중에 너무 멀쩡하게 살아난다. 물론 꽤 오랫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가이자 감독 맘대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첫 피해자가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맨 처음 응급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중에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는데, 그럼 의사가 수술 중에 마치 실수한 것처럼 고의로 죽일 기회가 있다는 뜻인데, 이 의사는 수술은 수술대로 해놓고 나중에 병실에서 이 환자를 다시 죽이려고 시도한다. 이것도 참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초반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정보를 통제하고 주인공 형사의 가족 이야기와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이야기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좀 답답한 느낌인데 조금만 참으면 가족의 불행한 사연이 밝혀지고,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면서 느린 흐름은 금방 빨라진다.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좋았다. 다른 드라마들이 중반 이후에도 계속 느린 흐름으로 쓸데없는 곳으로 자꾸 눈을 돌리곤 하는데, 이 드라마는 중반부터는 곁눈질 하지 않고 결론으로 달려간다. 맨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 초반부터 의심스러운 인상을 잔뜩 심어주는 인물이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이런 걸 반전이라 부를 수 있나 싶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반전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주인공 일행이 너무 쉽게 이 숨은 악당을 잡아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드라마를 다 본 후에 조금 곱씹어보면 전체적으로 지문 검사라던가 족적 검사라던가 포렌식이나 부검 등 기본적인 과학수사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칼이 그대로 꽂힌 채로 죽은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찔렀고, 지문을 닦지 못했는데, 지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익사로 사망한 두번째 인플루언서가 실제로 익사인 것인지 부검 결과를 보는 장면도 없다. 주인공이 시체의 입을 열어보고 입안이 깨끗하단 사실을 확인하여 죽은 후에 던져진 것이라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깨끗한 물에서 죽었다는 추측이 아니라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맞는 거겠지. 네번째 피해자도 작중 묘사로는 이미 피가 질질 흘러나오는 큰 가방을 육교 위에서 끌고가는데, 경찰에서는 부검도 없이 그냥 떨어져 죽은 것으로 말한다. 더 웃긴 것은 유일하게 시체를 두고 부검 결과를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이 앞서 말한 칼에 맞아 죽은 피해자이다. 이건 칼이 몸에 꽂힌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고 외관상으로 칼에 찔린 상처가 네 개나 보이는 거라 굳이 부검 결과를 일부러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아, 범인이 아랫쪽에서 위로 찔렀다는 부검 결과가 필요해서 넣은 장면이라는 것을 방금 글을 쓰면서 이해하기는 했다. 즉, 진범의 정체를 유추하며 범위를 좁히기 위한 의도였겠구나.
여기까지 이 드라마의 단점들을 적었는데, 그럼에도 괜찮은 점수를 줄만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질질 끄는 경향이 있고, 쓸데없이 로맨스를 넣거나 하는 등 핵심주제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인기 요소를 자꾸 섞어넣으려고 해서 일단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끝까지 다 보는 드라마가 많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8편짜리 드라마로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적당하다.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 주제는 인기를 위해 아무 짓이나 마구 벌이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스트리머 혹은 유튜버 이런 인간들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꼭 수습을 해야한다. 뭐 이런 것. 그리고 온라인으로 특히 SNS로 빠르게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가짜 뉴스들에 대한 경각심을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딸을 둘 키우는 아빠로서 이 부분 때문에 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답답했고, 결국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주위에 성인이 된 후로 아빠와 사이가 나쁜 여성들이 많았다. 심지어 애들 엄마와 장인어른의 관계도 아주 좋지 않았었다. 나는 가끔 혹시라도 우리 딸들이 사춘기 이후로 아빠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가끔 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이건이 연기하는 형사는 잠시라도 틈이 나면 딸과의 메신저를 열어보며 혹시 답장이 왔는지를 보는데, 딸은 늘 답장이 없다. 여기서 좀 재미있는 건 어떤 예뻐보일만한 이미지에 아주 좋은 것만 같은 말을 얹어서 보내는 짓을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한다는 것.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어쩌면 지금도?) 장년층들이 많이 하던 거였다. 적당한 꽃 사진이나 풍경 사진이나 이런 배경에 잡지 [좋은 생각] 이나 [샘터] 같은 곳에 실려있을 것 같은 좋은 말을 담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막 퍼뜨리는 것.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 아주 친했던 어느 형님이 나에게 딱 그렇게 하셨다. 아마 나한테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진도, 아무리 좋은 글귀도 한두번이지. 이게 끝없이 계속 오면 제대로 반응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을 법한 좋은 글이나 시, 아까 말한 류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의 글들은 얼핏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따뜻하고 좋은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사회의 특정한 면만 부각해서 보게 만들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보지 말라고 세뇌하는, 어쩌면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류의 글들이다.
또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암튼 이 형사는 아빠로서 제대로 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자꾸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짧은 틈이라도 생기면 늘 대답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이 보내기만 한 메신저 대화를 열어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딸이 아주 짧은 단답형 답을 달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드러나지만 그건 딸이 쓴 것이 아니라 딸을 납치한 납치범이 쓴 것이었다. 과연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이 부분은 극 중에서 명확한 묘사가 없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 납치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 같다. 납치범은 딱 한 두 단어로만 답을 해서 의심을 피했고, 형사는 드디어 우리 딸이 답을 했네 하고 내심 안심하고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막판에 아빠가 딸을 구해내고 나서야 나도 마침내 좀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드라마 전체에서 제일 좋은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이걸 선택할 것이다. 이 부녀 관계는 엄마이자 아내를 잃고 난 후에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빠져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마침내 아빠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버리고 그 후로 대화조차 피해버렸다. 아빠는 딸이 걱정되니까 음식을 사다가 집 앞에 놓고 가고, 불 켜진 창문을 한참 쳐나보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듯이 혼자 계속 글귀가 적힌 이미지를 보내거나, 말을 걸곤 한다.
아내이자 엄마의 죽음, 그 너무나도 큰 상실 앞에 두 사람은 정말 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남은 둘이 더 보듬고 의지해야 할텐데 늘 그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서로 상처주고 결국 딸이 집을 나와버렸어도, 그래도 둘은 아빠와 딸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늘 있었기에 아빠는 아빠대로 말을 걸었던 것이고, 딸은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고 작은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막판의 병실 장면에서 딸은 친구랑 대화하다가 밖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자 어쩔줄 몰라하면서 자는 척 한다. 친구는 서둘러 병실을 나서며 친구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아빠는 병실에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손에는 가끔 사다줬던 밥이 들려있다. 딸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사온 밥을 탁자에 놓고 딸의 친구가 보내줬던 딸의 공연 영상을 시청한다. 바로 아빠에 대한 그 노래였다. 그러자 딸이 눈을 뜨고 말을 건다. 아빠는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웠을까봐 미안해한다. 딸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니 딸은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팔을 껴안는다. 아빠도 딸의 머리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서로의 오랜 침묵을 해소한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일단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일 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밝고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것도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딸의 성격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아빠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자신이 입혀버린 상처 때문에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또 딸은 그 나름대로 긴 시간 외면해왔던 아빠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막상 자신을 구해준 든든한 아빠를 다시 보고, 또 아빠가 자신에게 한 실수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
마지막으로 배우들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일단 주인공 정이건은 앞서 말했듯 너무 반가웠고, 명성에 손색없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초반 한동안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정이건이 이렇게 나이 든 모습이라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있으니 괜찮다 여겼다. 조금 이 인물에게 어색하다 싶은 면이 드러나는 부분은 배우 탓이 아니라 대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두번째 핵심 인물은 베테랑 형사와 함께 파트너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리신핑이다. 리페이위(李霈瑜)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보면서 낯익은 얼굴이라 여겼는데, 찾아보니 처음보는 배우였다. 정보를 보니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던데, 신참 형사를 자연스럽게 잘 연기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긴 시간 주연 배우들을 보면서, 또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약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사이버 수사대 팀장인 허전웨이, 배우는 리리런 이라는 분이 맡았다. 딱 보자마자 분명 최근에 본 적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최근에 본 대만 영화 [96분]에 나왔더라. 배역도 그렇고 당연히 배우의 실제 나이도 정이건이 훨씬 더 많을텐데, 옷차림을 비롯해 분위기는 어쩐지 이 사람이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정이건이 젊어보이고, 멋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응급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이자,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궈따푸, 배우는 왕보지에(王柏傑)가 맡았다. 이 배우도 분명 본 얼굴이다 생각하면서 내가 대만 배우들을 이렇게 많이 알 리가 없을텐데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까 말한 최근에 본 영화 [96분]에 나왔고, 또 예전에 열심히 보았던 [화등초상]에도 나왔더라. 그리고 내가 봤던 옛날 영화들에도 조연으로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나름 아주 슬픈 사연의 주인공인데, 그만큼 드러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인플루언서 패거리 중에 공격을 받고도 유일하게 구출된 요우쯔(별명, 이 배역 실명을 메모해두지 않았네)는 러우쥔슈어(婁峻碩)라는 배우가 맡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연기였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딸 첸유치에는 첸옌페이(陳姸霏)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에 학생으로 나올 때는 엄청 어린 배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나 오디션 보는 모습은 또 완전 어른의 얼굴이더라. 앞서 언급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 장면의 감정 연기가 참 좋았다. 그 다음으로 첸유치에의 친구이자 극 중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녀 바바, 리팅언은 샹지에루(項婕如) 배우가 연기했다. 드디어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나왔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던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연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귀여우면서도 정말 예쁜 얼굴이라 쉽게 잊을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저 [숨통을 조이는 사랑]이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주인공 셋을 엮어 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별로 매끄럽게 전환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쓴 글에 자세히 다뤘었다. 이 배우는 그 첫부분에서 남자 주인공이 정말 순수하게 빠져드는 사람을 맡아 청순하면서도 무서운 매력을 보여줬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이 예쁜 얼굴을 계속 가면으로 가려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상으로 마녀 바바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중이 엄청 큰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이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아니 얼굴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래도 저 첸옌페이 배우와 둘이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 등 장면들은 다 좋았다. 다음으로 초반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맛있다고 소문난 케이크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예핀쉬안이란 배역은 청위시(程予希)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는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 이란 대만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상견니]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에 대한 글도 조만간 쓰려고 생각 중이다. 배역 특성상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늘 얼굴에 멍과 상처가 있는 상태로 나온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나중에 배우 정보를 찾아보고 이 배역이 이 사람이었어? 라고 조금 놀랐고 다시 등장했던 장면을 찾아보니 이 사람이 맞았다. 사실 이 배역 자체가 초반에 관객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 진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역할이라 비중이 작다.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데, 다들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어서 그냥 넘어가야겠다.
아! 우리나라로 치면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 같은 개념으로 출연한 주인공의 아내이자 첸유치에의 엄마 샤오후이 배역만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린신루(林心如) 배우가 맡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대만에서는 엄청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바로 [화등초상]의 로즈 마마, 뤄위눙 역이었다. 이 드라마는 정말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걸작인데, 특히 이 로즈 마마의 매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다음으로 본 작품은 미미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을 드라마로 만든 [카피캣 킬러]에서 야망을 드러내는 방송국 간부를 맡았었다. 이 드라마도 나중에 소설 원작과 비교해 글을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또 [희생자 게임]이란 드라마에서도 이 배우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자폐 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감식반 형사가 자신의 딸과 얽힌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드라마로 첫번째 시즌은 엄청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두번째 시즌은 첫시즌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린신루는 첫시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었다. 음, 글을 쓰면서 보니 내가 생각보다 대만 드라마를 꽤 보긴 했구나 싶다.
정말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만 하고 마치자. 원제는 [百萬人推理] 로 백만명의 추리 로 옮길 수 있겠다. 이 백만명이 인플루언서 를 팔로우하는 백만명의 팔로워를 나타내는 것이니 우리나라 제목도 정확하다. 영어 제목은 [Million-Follower Detective] 로 팔로워를 탐정이라는 명사로 받았다. 문제는 이거다. 원제의 추리와 우리 제목의 추리 중이라는 부분, 그리고 디텍티브 라는 단어. 이 드라마에서는 팔로워들 다시 말하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일반인들이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추리는 주인공과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그리고 납치 당했다가 유일하게 구출된 인플루언서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모르고 빠르게 유포되는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악플만 달아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빗대어 비판하려는 의도일까? 사실 사회에서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유독 온라인 공간, 특히 SNS 에서는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를 나타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 평범한 일반인들이 온라인에서 거짓 정보 때문에 휩쓸려서 해당 인물에 대한 온갖 개인정보들을 까발리는 짓, 흔히 말하는 신상털이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예전에 넷티즌 수사대가 신상을 털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무서운 일인가! 제목만 보고 긍정적인 의미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내용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인 셈이다.
글을 써야지 생각하고 있는 책, 영화, 드라마 이야기가 제법 쌓여있다. 연휴에 부산에 안 가기로 해서 시간도 많으니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써볼까? 아, 일정이 있는 날도 있으니 매일은 어렵겠구나. 그럼 이틀에 하나씩이라도 써봐야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특히 서재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추신. 글을 다 쓰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중간에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을 짓는 부분에서 언급된 어떤 이름이 엄청 익숙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바로 의사인 궈따푸와 만삭인 그의 아내가 딸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이다. 아내가 궈메이메이, 궈롄리, 궈징징, 궈펀룽, 궈비첸 이렇게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며 좋은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하던 궈따푸가 아내에게 궈쉐푸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나무라듯 말하고, 그러자 그가 진지하다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왜 아내가 진지하게 하라고, 즉 장난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유명한 연예인 이름이라서? 아님 뭔가 꺼려질만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뜻이나 발음에 놀림 당할만한 뉘앙스가 있을까? 암튼 나중에 찾아보니 궈쉐푸(우리식 발음은 곽설부)는 대만의 가수이자 배우이자 모델 이름이었다. 아마 아이돌 그룹 출신인 듯했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드라마 [화등초상]에도 출연했었다. 이렇게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을 보니, 내가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짓기 위해 엄청 많이 찾아보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며칠을 밤을 새며 작명법 책을 찾아보고, 옥편을 뒤지기도 했었다. 나는 혹시 이 드라마에 아주 잠깐이라도 이 궈쉐푸 라는 배우가 나왔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찾아봤는데, 내가 여러 경로로 검색해봐도 나오지는 않았다. 왜 그 이름을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