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글쓰기


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쓴 것이 2004년 2월이었다. 첫 글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짧은 감상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고,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고, 가장 많은 부분을 필사 했던 책이다. 젊은 시절 한때 골방에 쳐박혀 라면과 담배만 섭취하며 지냈던 시절에 계속 읽고 필사 하기를 반복했던 책이었다. 알라딘이란 온라인 서점에 만든 새로운 공간에 첫 글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첫 글은 썩 잘 쓴 글은 아니었다. 그냥 별로 개성이 없는 짧은 글. 


온라인 공간에 블로그라는 것을 만들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마 2002년 혹은 2003년 정도였던 것 같다. 몇 개의 블로그 서비스를 옮겨 다니며 꾸준히 글을 썼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10년대 초반에 주로 쓰던 블로그 서비스 하나가 문을 닫으며 약 10년 정도 썼던 글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후로는 다른 블로그를 다시 만들지 않고 그냥 알라딘에만 글을 쓰고 있다. 알라딘 서재 초기에는 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2004년에 한 서너달에 걸쳐 글 8개를 쓴 후로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몇 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가와 학원 강사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일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잠시 쉴 때였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학을 하던 선배들이 만든 잡지사이자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책과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평이나 리뷰 등 어려운 말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떠드는 방식으로 쓰자 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 혼자 생각으로 책에 대한 수다 라고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알라딘 서재는 가능하면 책 이야기만 남기는 곳이었다. 아직은 외부에 일상 생활 수다를 남기는 블로그가 있었으니까. 아까 언급한 것처럼 당시 주로 쓰던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더 이상 일상 생활에 대한 수다를 남길 공간이 없어지면서 이 알라딘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7년 가량 이어왔던 출판계 생활을 접고 다시 사회운동 판으로 돌아오면서 책에 대한 글을 점점 안 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간혹 들어와도 책에 대한 글을 안 쓰고 일상 이야기만 쓰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알라딘에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 다시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그냥 주구장창 일상 이야기만 썼다. 책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2004년 2월부터 약 12년 동안 여기 서재에 약 670개의 글을 썼다. 가장 글을 많이 썼던 해는 2011년이었다. 그때는 몸 담고 있던 잡지사에서 매달 잡지에 서평을 쓰던 때여서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책에 대한 글을 가장 많이 썼던 시기였다. 잡지에 실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매달 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글이어야 하기에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돌아보면 그 해에 유독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이 많았다. 2014년에 출판계를 떠나면서 가끔 비정기적으로 취재해서 쓰던 기사도 안 쓰게 되고, 서평 연재도 중단되고 하면서 글을 적게 쓰게 되었다. 이후로 간혹 지역에서 시민신문에 연재 글을 쓰기고 했고, 책 소개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 시민신문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며 이 조직과 인연을 끊은 후로는 공개적으로 글을 쓸 기회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행본 두 권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한번은 독서 커뮤니티 활동에서 이어져 기회를 얻었고, 또 한번은 녹색당 창당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하며 지면을 얻었다. 그래봐야 그 두 권 모두 공동 저자 수가 엄청 많아서 내 글의 분량은 아주 적었다. 이후로 출판계의 몇몇 선배들에게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기획 단계에 머물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바빠서 글을 쓸 여유가 없다가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명확하게 찾지 못해서 기획에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한 서너번 가량 기획서를 쓰다 말았고, 몇 번인가 영업부장에서 퇴직 후 출판사를 차린 선배들과 책 출간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학시절까지는 매일은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일기를 썼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몸이 두세개여도 모자라는 삶을 살다 보니 일기라는 것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재미로 살았다. 너무 바빠 며칠간 글을 단 한 줄도 못 쓰고 지내도, 머리 속으로는 늘 어떤 문장들을 쓰고 있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메모장에 이런저런 짧은 글들을 남길 수 있었고, 바쁘게 이동하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단어 만이라도 써놓곤 했다. 물론 그래놓고 나중에 열어보면 내가 이때 왜 이 단어를 남겨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작년 12월 초에 그 전날 많은 눈이 내린 것을 보고 글을 쓰다가 멈추고 그 다음 날에 북플에서 과거 오늘 쓴 글을 보니, 무려 13년 전에 쓴 글이 어제 쓴 글과 거의 완전히 똑같은 글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은 너무 같은 소재, 같은 패턴에 머물러 있구나. 어쩌면 지금 이 글과 거의 비슷한 글을 언젠가 여기 알라딘에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에 제목으로 넣은 이승환의 노래 제목도 언젠가 제목으로 써먹었을 확률이 높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제목으로 적은 것은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저 노래를 참 많이 좋아했고, 자주 불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해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살면서 딱히 올해는 꼭 뭔가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계획이란 거창한 말은 좀 그렇고, 하필 시기가 양력으로 1월이라 좀 그렇기는 한데, 이제부터 이런 거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한 것이 아침에 북플을 열어서 지난 오늘 게시판에 글이 없는 날엔 글을 하나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게 오늘이다. 2011년 전후로 한 삼사년을 제외하면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오늘 쓴 글이 없는 날이 제법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마다 매번 글을 채워 넣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니 꼭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저 가능하다면 짧더라도 글 하나를 보태 놓으려고 노력하자. 뭐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끄적이다 말고 방치 중인 책 이야기가 몇 개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중에 이걸로 글을 쓰려고 남겨둔 쪽글도 여러 개가 있다. 그리고 꽤 오래 안 보다가 최근 다시 찾아서 보고 있는 여자 프로농구 경기들에 대한 글도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북플을 열어보고 아, 지난 오늘 쓴 글이 없구나 하고 깨달은 후에 무슨 글을 하나 남겨볼까 고민했다.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 아님 늘 하듯 일상 이야기? 아니면 농구 관람기? 농구 이야기를 쓰려고 유튜브로 어제 봤던 경기들을 다시 돌려 보려다가 아, 이러면 글 쓰는데 한 서너시간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기록도 따로 찾아봐야 하고, 그 경기 뿐 아니라 최근 경기들의 흐름도 찾아봐야 하고, 다른 팀들의 경기도 살펴보며 비교해야 한다. 다른 할 일도 있기 때문에 글 하나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역시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찾아서 완성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 생각하고 끄적여 놓은 글들을 찾아보았다. 확실히 제법 많은 분량을 써놓은 글들도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글들도 다시 살리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비교적 빠르게 쓰는 편인데, 한번 멈추고 나면 그 글을 다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글을 쓸 때 당시의 감정과 느낌이 사라져 버려서 다시 그 맛을 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엔 그냥 최근에 있었던 일들 중심으로 일상 수다를 하나 더 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글감도 두세개 정도 떠올랐다. 그 전에 내가 왜 아침부터 이렇게 글을 두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써야지 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한 30분 가까이 지나버렸다. 결국 글을 다 쓰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있겠구나.


스몸비


서울역에서 파주 운정까지 GTX 일부 구간이 개통하면서 파주로 가는 시간이 엄청 짧아졌다. 그전에는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반 이상,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금은 연신내 역으로 가서 GTX를 타면 종점인 파주운정역까지 15분 밖에 안 걸린다. 물론 연신내 역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역에 들어서서도 지하 8층인 승강장까지 내려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개통 초기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수차례 갈아타며 오르거나 내려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생기며 시간이 조금 단축되기는 했다. 확실히 이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깊숙히 지하 공간을 개발하며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천상 환경활동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구나.


어느 날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열차 안 커다란 화면에서 방영되고 있는 교통 안전 캠페인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평소 이동 중에 열차 안 곳곳에 배치된 안내판과 영상들을 보며 띄어쓰기 오류나 맞춤법 오류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면 또 한 편으로 천상 출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영상에서 낯선 단어를 하나 발견했다. 스몸비? 저게 우리말인가? 저런 단어가 있나? 뭔가의 줄임말인가? 스...... 스...... 스 로 시작하는 단어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코 스위스를 떠올렸다가 우영우가 생각날 뿐이었다. 귀찮아서 검색해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다시 그 단어를 마주쳤다. 역시 파주에서 돌아올 때였다. 이번에도 무언가 줄임말이 분명할텐데, 스...... 스...... 스님 말고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를 넘기고 몸은 뭐가 있을까? 몸...... 몸...... 몸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말에 몸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나? 그날도 검색을 하기는 싫었다. 그냥 머리로만 더 고민해보다가 열차에서 내릴 때가 된 후로는 잊어버렸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 그 단어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폰을 꺼내서 검색했다. 어!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과 좀비를 섞은 합성어였다. 줄임말이 아니었다. 어느 언론 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영미권에서 주로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안 쓰는 단어가 아닐까?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걸까? 내가 보았던 영상은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만든 교통안전 캠페인이었는데, 저 스몸비란 단어를 쓸 거라면 친절하게 그 뜻도 적어주면 좋았겠다 싶다. 나처럼 이 단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의외로 제법 있을 것 같은데.


두쫀쿠


언젠가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이하게도 어려서부터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 달달한 것들을 거의 먹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두바이 초콜릿이 아무리 유명해도 먹어볼 일도 없었고, 심지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왜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부르는지 관심도 없었다. 비슷한 유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탕후루가 유행할 때는 작은 아이 덕분에 맛을 보았었다. 아, 그 혀가 아릴 정도의 단 맛 때문에 너무너무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가 먹어보라고 주었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는 잠시 참았다가 음료수를 사서 계속 입을 헹구듯 마셨다. 이런 것을 사람들이 유행처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최근에는 두쫀쿠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길래, 두바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큰 아이가 맞다며,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줬다. 쫀득 쿠키라니 이건 또 어느 나라 말인가 싶었다. 근데 두바이가 붙는 걸 보니 두바이 초콜릿과 관계가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가 두바이 초콜릿이 유행하다보니 그 파생상품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두바이 초콜릿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은 아이는 이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실제로 중동이 있는 두바이라는 지역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말았다. 암튼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두쫀쿠를 사왔다. 애들 엄마와 큰 아이 그리고 작은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안 먹을 생각이었다. 탕후루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내가 꼭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작게 자른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바삭한 느낌은 생라면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겉을 싸고 있는 초콜릿은 약간 떡과 비슷한 식감이었다. 뒷맛은 찰떡 아이스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옛날에 어린 시절에 한 번 먹어본 것이라 정확한 맛의 기억은 아니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런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저 내게는 탕후루 만큼의 충격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무슨 맛인지 알았으니 됐다.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거울 효과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다. 돈을 주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것이 4년 정도 되었다. 아주 가끔 가위로 혼자 끝 부분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곤 한다. 어차피 묶고 다니는 일이 많아서 꼭 길이를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고, 풀고 다닐 때에도 파마를 한 것처럼 반곱슬이라서 길이가 맞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짧았던 시절에는 짧으면 한 달에 한 번, 길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미용실에 가야 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옆머리와 뒷머리가 지저분하게 자란 모습을 싫어하고 못 견뎌했다. 그런데 아예 머리를 기르고 나니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돈을 아끼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한 10여분 남짓의 그 시간이 좀 싫었다. 누군가, 그러니까 나와 전혀 친밀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내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긴 시간 만지고 다듬는 것이 불쾌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처럼 머리카락을 기르고 사는 남성들이 여러 명 있다. 언젠가 어느 회의에 갔는데, 나를 포함해서 참여한 남성 네 명은 모두 머리가 길었고, 여성 세 명은 모두 머리가 짧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는 반대였다. 지금 내 머리카락의 길이는 애들 엄마와 두 딸들과 비교해도 더 길다. 머리를 기르고 살기 때문에 불편한 공간이 있다.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목욕탕 같은 공간이다. 목욕탕은 평소에는 거의 가지 않지만, 아주 가끔 갔을 때에는 나 때문에 놀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장실은 자주 사람들이 놀란다. 뒷모습만 보고 여자 화장실을 잘못 들어왔다고 놀라서 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는 수염도 기르고 다니기에 앞이나 옆 모습을 본다면 절대 오해할 일이 없는데, 뒷모습은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전철역이나 공원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자주 이런 일이 생기다보니 좀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놀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으니.


작년 연말에 동네에 있는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다. 이 헬스클럽이란 단어는 아마 콩글리쉬일텐데, 그렇다고 핏니스클럽이나 휘트니스클럽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익숙한 헬스클럽이라고 하자. 우리 동네에 이 헬스클럽이 문을 연 것이 딱 작년 이맘때였다. 큰 길가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동네에도 생기는구나 하고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시간 날 때 한 번 구경이라도 해야지 생각했지만, 일 년이 다 되도록 갈 일은 없었다. 아마 보일러 문제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갈 일이 없었을 텐데, 불행하게도 작년 연말에 보일러에 문제가 생겼다.


그날 따라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데, 보일러에 뭐가 문제가 생겼는지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한 서너번 정도 온수 배관이 얼어 붙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열선을 감아 놓아도 꼭 서너번은 그렇게 되더라. 대개는 드라이기로 녹이지만, 가끔은 저절로 녹을 때까지 친구 집으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보일러를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급하게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씻고 가겠다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이미 출근해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씻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 보니 다시 온수가 나왔다.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저절로 해결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 친구에게 부탁해도 괜찮았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한 십여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동네 친구는 동네 뒷산, 산 자락에 살았다. 그 높은 곳까지 따닥따닥 집들이 지어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 집 바로 뒤로 등산로 옆에는 텃밭들이 있었다. 그 비탈진 골목길 어딘가부터 도시가스 연결이 안 되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마다 기름 보일러를 돌려야 하는데, 낡은 집이라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기름 값만 아깝다고 하며, 그 친구는 매년 겨울이 되면 전철역 근처 헬스클럽을 등록한다고 했다. 아침에 거기서 씻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거기서 씻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그 당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기름 보일러를 돌리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좋은 방법이네. 씻기 전에 운동도 할 수 있으니 건강에도 좋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말이 이번에 생각이 났다. 이번 겨울에 또 얼마나 자주 보일러가 문제를 일으킬 지 알 수 없는데, 매번 친구네 집을 이용하는 것보다 집 가까이 있는 헬스클럽을 이용하자 싶었다. 


한때는 꾸준히 헬스클럽을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잘 안 하게 되는데, 그래도 돈을 주고 등록을 해 놓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집에 운동기구도 거의 없어서 가벼운 맨몸 운동이 아닌 제대로 된 운동을 하려면 헬스클럽에 가야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바벨을 사고, 실내 철봉을 사고, 케틀벨을 사고, 불가리안 백을 사고, 샌드백을 샀다. 덤벨로 여러 종류를 많이 샀다. 케틀벨도 무게 별로 숫자가 늘었다. 집에 운동기구를 갖춘 이후로는 굳이 헬스클럽을 갈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도 충분히 좋아하는 여러 동작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심각한 근손실을 겪었고, 이후로 다시 열심히 운동을 해봤지만, 내가 좋아했던 여러 종류의 동작들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운동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달리기에 빠졌다. 교통사고 이전에도 달리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주로 2킬미터 이내로 짧은 거리를 뛰고 쉬는 방식으로 했었다.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먼지만 쌓여가는 저 많은 운동기구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찔끔 찔끔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부터는 죄책감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열심히 하니까 운동은 좀 쉬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한 것이다.  


헬스클럽에 등록한 것은 거의 15년 만이다. 생긴지 1년 밖에 안 된 곳이라 깨끗했다. 공간이 넓지 않은 것에 비해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나는 어차피 기구 운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기구들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스트레칭 공간이 별도로 있다는 것과 좁기는 하지만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몸을 풀고 덤벨, 바벨, 케틀벨 운동만 했는데, 나중에는 워밍업으로 트래드밀을 달린 후에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집에서 헬스클럽까지 달려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야 할텐데,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워밍업이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몸에 열을 좀 내기 위해 트래드밀을 달리기로 했다. 트래드밀을 달리는 것은 참 지겹고 싫은 일이다. 이왕 달릴 거라면 무조건 밖에서 달려야 한다는 생각인데, 겨울이기도 하고, 어차피 돈을 냈으니 다른 기구들은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것 만이라도 이용하자고 스스로 타협을 한 것이다. 밖에서 달리면 10킬로미터를 달려도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은데, 트래들밀에서는 1킬로미터도 못 가서 지겹고 힘들더라. 그리고 좁은 폭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정하게 달리는 것이 너무 싫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좀 익숙해지기는 했다.


문제는 탈의실이었다. 나는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가 길어서 내가 탈의실에 있을 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어저씨들이 있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기는 한데, 그래도 나 보다는 한 열 살 이상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 게다가 나는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자국이 몸에 있다. 이게 의외로 칼에 찔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예전에 같이 목욕탕에 갔던 친구가 말했었다. 이래저래 탈의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수술자국은 최대한 옷을 빨리 갈아 입는 것으로 괜찮지만, 머리는 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운동복을 다 벗고 샤워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탈의실로 어떤 남성이 들어왔다. 깡마른 체격에 키가 작았는데 머리카락은 길었다. 눈이 딱 마주쳤는데, 곱상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여성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옷을 모두 벗은 알몸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는데,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열쇠로 사물함을 열었다. 그제서야 아, 남자구나 생각이 들었다. 샤워장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고 생각을 시작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거울 치료 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비록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카락이 긴 내가 탈의실에 들어서면 다른 사람들도 순간 순간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걸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어떤 느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놀라고 당황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놀랐겠구나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니 거울 효과라고 해야 하려나. 암튼 내가 긴 머리의 남성을 보고 순간적으로 여성으로 착각해 놀라다니.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나 때문에 놀랐을 많은 남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탈의실에 들어설 때 헛기침이라도 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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