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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못한 길
이번 주말은 어쩌다 좀비영화를 네 편이나 보고 말았다. 토요일에 두 편, 일요일에 두 편. 모두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지난 새벽에 쓴 글에서 소개한 두 편은 인도네시아 좀비영화 [불사의 약]과 필리핀 좀비영화 [아웃사이드]였다. 이번에는 일요일에 본 태국 좀비영화 [지암]과 스페인 좀비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렇게 두 편을 살펴보고, 맨 마지막에는 주말에 연속으로 본 네 편의 좀비영화를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어제 본 두 영화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좀비영화라는 점과 위기에 처한 가족이 좀비 세상을 맞은 이야기 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 두 편은 좀비와 싸우는 액션이 주요 내용이란 공통점과 또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지암]부터 보자. 감독 및 배우 정보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자. 찾아봐도 쓸만한 정보가 없었다. 어제 본 두 동남아 좀비영화는 영화 초반에 어느나라 영화인지 궁금해하며 봤다. 필리핀 영화는 초반 대사가 다 영어였고, 그 다음에 나오는 타갈로그어를 전혀 몰라서 감을 잡지 못했었다. 인도네시아 영화는 처음에 분위기만 보고 태국 영화인가 생각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약간 동남아 느낌이 나는 영화는 지금까지 태국 영화 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국영화는 액션 영화와 호러 영화를 중심으로 한 십여편 정도를 봤었다. 그런데 대사를 듣다보니 아는 단어들이 들렸다. 어, 이거 바하사 인도네시아 잖아.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건, 말레이시아어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면서 인도네시아 영화 맞구나 했었다.

반면에 [지암]은 맨처음 나레이션을 들을 때부터 태국 영화라고 알았다. 태국어를 알지 못하지만, 태국어 특유의 발음은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레이션이 세계관부터 설명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며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고 전세계는 식량난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정은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하여 근미래를 잘 설계했다고 본다. 실제로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과학기술도 의지도 없다. 매우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데, 대부분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아이러니한 블랙 코메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태국은 고립된 환경에서 어떤 특정한 한 인물이 식량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었고, 그래서 태국만이 거의 유일하게 잘 살아남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여기서 과거 태국의 이름인 시암이란 단어가 나온다. 태국 정부는 과거 위대한 시암처럼 더 훌륭하게 이겨낼 거라며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듯한 내용이다. 구체적인 단어나 표현을 다를지 몰라도 뜻은 그랬다.

여기서 이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지암은 태국의 과거 이름인 시암에서 첫 글자만 좀비의 Z 를 붙여 만든 제목이다. 즉,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태국을 뜻한다. 이런 작명법은 뒤에서 다룰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붙인 제목은 영어 제목인 [Valley of the dead] 를 번역한 것이지만, 원제는 [Malnazidos] 이다. 이 단어를 구글 번역에 넣어봐도 뜻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 스페인어에 없는 단어라 당연한 결과였지만, 원제의 뜻이 궁금했던 나는 좀 당황했다. 그러다 저 영화 제목이 시암에서 지암이 된 것을 보고 감이 왔다. 다시 번역앱에 malnacidos 를 넣어봤다. ˝개자식들˝ 이란 욕설이 나왔다. 원어의 어감이 궁금해서 좀 더 검색해보니 영어의 ˝bastard˝ 나 ˝wretch˝ 에 해당하는 욕이라고 했다. 이 욕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최대한 어감이 비슷한 C 자리에 좀비를 뜻하는 Z 를 넣어서 좀비를 향한 욕을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이 두 영화 모두 잘 만든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하며 정한 [죽은 자들의 골짜기] 는 너무 재미없는 제목이다. 원제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더 좋았겠다.

다시 [지암] 으로 돌아가서 조금만 더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현재보다 퇴보한 근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부부, 아니 결혼했다는 언급은 없고, 둘 다 반지를 끼고 있지는 않으니 동거 중인 연인일지도 모른다. 다만 여주인공은 반지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기는 한다. 암튼 이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완전한 빈민가처럼 나온다. 여주인공이 수도 방콕에서도 꽤 큰 규모의 병원 의사인데도 그렇다. 그것도 병원장이 인정하는 유능한 의사인데도? 이건 좀 설정 오류인 것 같다. 이렇게 큰 병원의 유능하고 유명한 의사가 가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망해버린 근미래 세계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세상일수록 의사는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질만한 직업일 것이다. 의사인 여주인공 린이 가난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남주인공 싱이 돈을 위해 폭력에 노출된 위험한 일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설정을 맞춰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무에타이 선수였고, 돈을 위해 불법 경기에도 나갔던 것으로 나온다. 현재도 해안에서 도시로 물품을 운반하는 화물차의 경호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치안이 엉망이라 도시로 들어오는 화물차는 무기를 가진 깡패들의 습격을 받는데, 주인공이 맨손으로 모두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이 남자와 좀비들 간의 액션을 보여주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린이 일하는 병원에서 좀비가 등장한 이후로는 싱이 좀비들과 싸워 린을 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액션 장면들이 썩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에타이는 맨몸 무술이다. 끝없이 몰려드는 많은 수의 좀비를 상대로 맨몸으로 싸운다? 아무리 무에타이 고수라 해도 그게 가능할까? [부산행] 에서 마동석도 맨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기는 했지만, 그는 좀 어설프긴 해도 맨살이 직접 좀비들에게 닿지 않도록 아주 최소한의 방어구(?)를 갖추고 있었다. 아니 하다못해 장갑이라도 하나 끼고 주먹질을 하면 안 되나? 영화마다 설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 좀비에게 물리지 않더라도 상처를 입어도 감염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좀비의 피나 체액이 몸 안으로 들어가도 감염이 된다. 주먹질을 하다가 주먹이 좀비의 이빨에 맞아 살갗이 긁히거나 살짝 벗겨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좀비를 제압하려면 머리를 관통하거나 뇌에 타격을 입혀야 하는데, 맨주먹과 발길질로 한방에 좀비를 제압하기에는 두개골이 너무 단단하지 않은가? 아무리 무술 고수라도 아니 오히려 무술 고수라면 무조건 무기를 들어야 할텐데, 싱은 링거를 걸어두는 쇠꼬챙이를 활용하거나 소화기를 무기처럼 쓰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맨몸으로만 싸운다. 물론 팔꿈치와 무릎을 잘 쓰는 무에타이 특유의 동작들로 조금은 더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좀비는 유난히 약한 것처럼 느껴진다. 좀비의 외모는 아주 흉측하기 짝이 없고, 물고기를 닮아 유난히 가로로 길게 찢어진 입에 아주 날카롭고 큰 이빨을 가진 인상적인 외모의 좀비들이 맨 몸으로 싸우는 단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아주 심각한 오류다. 좀비는 머리가 으깨지거나 관통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불사와도 같은 존재이며 사람보다 강한 힘을 쓰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이 떼로 몰려오니 경찰이나 군인들도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걸 한 사람이 맨 몸으로 상대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곤봉이나 삼단봉 아니 그냥 짧막한 쇠꼬챙이 하나라도 들고 싸웠으면 훨씬 편하게 영화를 봤을텐데.

이외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전세계가 식량난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느 한 사람 덕분에 태국만 위기를 극복했다는데, 그 방법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다. [설국열차] 처럼 단백질바 라도 개발해서 나눠준걸까? 아닌게 아니라 영화 초반에 유난히 바퀴벌레가 우글우글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불길한 느낌의 생선을 먹고 최초의 좀비가 나타난다는 설정인데, 이것도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바다가 오염되어서 그렇다던가 뭔가 이유가 있었어야 했다. 또 병원에 진입한 특공대가 폭탄을 설치해 건물을 폭파시키는데 이 큰 건물을 폭파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폭탄을 건물 지하에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의 가장 절정부에 해당하는 액션 장면에 있다. 옥상에서 진입한 특공대가 중요한 인물을 데리고 헬기로 탈출하려는 장면인데, 주인공 남녀와 특공대가 각자 좀비떼와 싸우다가 마주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감독도 좀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유난히 빠르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이 딱 마주치는 장면에서 싱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는다. 총을 든 이들은 특공대 밖에 없으니 이들이 쏘았을텐데 왜 그랬는지,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 직전 장면까지 특공대는 계속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공격받고 있었으니 외모상 싱이 좀비가 아니란 것은 알았을 것이다. 아, 아니 다급하면 헷갈릴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실수로 쏘았다고 해도 좋다. 일단 총에 맞은 것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 다음에 왜 린은 자신의 남편 혹은 연인이라고 특공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필요하다는 중요인물의 말 한마디 때문에 곧바로 탈출하지 않고 좀비떼와 싸워가며 린을 구하러 왔는데, 왜 린을 지켜주고 있던 싱을 공격하는 걸까? 왜 린은 해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을까? 이어서 특공대의 대장과 싱이 아주 멋있게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핵심인데,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왜 둘이 싸우지? 바로 옆에 좀비떼가 있는데,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 말이 되나?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싱은 린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인데. 소수의 특공대원들이 차례로 좀비떼들에게 당하고 좀비랑 싸울 사람이 부족한데, 왜 특공대 대장은 굳이 멀쩡한 사람이랑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걸까?그리고 왜 좀비들은 이 둘이 결투를 벌일 동안 습격을 멈춘걸까? 카메라가 둘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에 집중하는 동안 좀비들은 엉거주춤 곁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 순간까지 주위에 있던 좀비들이 모두 제압당하고 잠시 좀비들이 없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면 싸우는 컷들 사이에 주위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좀비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넣어줘서 관객들이 이해하도록 보여줘야 한다. 이건 연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싱이 헬기를 타지 않은 것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처음에 싱이 싸우는 과정에서 물렸구나. 그래서 헬기를 포기하고 그냥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장면들과 맨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헬기를 안 탄 거냐고?

아, 이외에도 따지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과 지면이 아까우니 그만하자. 감독은 어쩌면 맨몸 무술이 돋보이는 액션 장면을 멋지게 넣고 싶었는데, 좀비들이랑 싸우는 장면에서는 이게 별로 인상적인 합이 나오지 않으니 특공대 대장이랑 멋진 액션씬이라도 넣자고 생각했던 것일까? 암튼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서 아쉬운 영화였다.

이제 다음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로 넘어가자.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만약 좀비가 등장했다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하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하는 드라마 [킹덤] 시리즈가 연상되었다. 드라마 상에서 정확한 시점이 제시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은 일어나기 전이 배경일거라고 생각했었다. 또 실제 역사가 아닌 문학작품에 좀비를 등장시켜서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도 생각났다.

스페인 내전은 내전이라 부르지만, 유럽 전체에서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었고, 전체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공화제 민주주의 등이 부딪힌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배경으로 좀비물을 만들다니 이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 영화를 보기 전 내 생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기대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독창성과 장점을 괜찮게 살린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라고 해서 원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마누엘 마르틴 페레라스라는 작가가 2012년에 쓴 [Noche de Difuntos Del 38] 이란 소설이란 것 외에 다른 정보는 찾지 못했다. 아, 게임이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여러모로 만듦새가 썩 좋지는 못한데, 원작 소설은 인물들을 잘 살리고 스페인 내전이란 복잡한 시대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좀 독특한 인물 구성이다. 일단 주인공인 한 로사노 대위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을 대변하는 변호사 출신 군 법무관이다. 실전 경험이 없어 손이 부드럽고 깨끗하다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많이 배운 인물(다른 말로 먹물) 답게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리고 눈치도 빠른 편이라 흐름을 잘 읽고 일행을 이끌어간다. 파시스트 진영의 꽤 높은 직책의 간부이지만, 프랑코와 그 세력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는 듯하다. 그의 동생은 공산주의 세력에 복무하고 있다는 대사도 있었다.

여주인공은 공산주의 진영의 의용병으로 마지막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고 다만 타락한 사제 즉, 성직자를 죽였다고 사제 킬러라고 불린다. 그 사제가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건드려서 죽을만큼 어떤 벌을 준 것처럼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를 사제 킬러 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잘 싸우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맨 마지막에 좀 뜬금없는 로사노 대위와의 애정 행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화니까 넘어가주자.

공산주의 진영의 리더는 철도 노동자 출신 중사이다. 이 인물도 이름이 안 나왔던 것 같다. 약간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으나,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꽤 괜찮은 지휘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색이 짙은 이 전쟁의 판도를 잘 읽고 있으며, 적이라도 불필요한 희생은 줄이려는 생각이 있다.

비중은 좀 적었지만 멋있는 인물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파시스트 진영의 무어인이자 무슬림인 라피르 일병이다. 저격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맨 마지막에 행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아마 무사히 살아남은 것 같다. 마지막에 열차 위를 뛰어다니며 가장 크게 활약하는 인물이다.

다른 한 명은 공산주의 진영의 행동대장 같은 위치에 있는 미겔 안드레우 라는 인물이다. 정규군이 아닌 의용병이라 계급은 없다. 늘 다이나마이트와 성냥을 갖고 다녀서 성냥이라 불린다. 입대 전에 오토바이 경주로 유명한 레이서였다. 아내와 갓난 아기였던 아들이 파시스트 세력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에 폭탄이 잔뜩 실린 차 안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자폭한다.

이외에도 로사노 대위가 데리고 다니는 어린 운전병이자 정비병이 있고, 중간에 합류하는 파시스트 진영의 간부(중위?)가 한 명 있고, 사나운 성질의 수녀도 등장한다.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체격이 크고 힘이 쎈 소련 출신 의용병이 비교적 초반에 좀비에게 당하고, 미국인 사진 기자도 퓰리쳐 상을 노리고 조작 사진을 찍으려다가 좀비에게 당한다. 그리고 공산당에서 직접 파견나온 것으로 보이는 참모(?)도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원칙주의자이며 꽉 막힌 인물이며, 그에 알맞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영화에서는 좀비 사태의 원인을 나치 독일로 설정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결혼식이 열리는 작은 시골마을에 독일군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살하는 끔찍한 모습이다. 여기에 어떤 파란 가루가 포함된 가스를 살포해 좀비를 만들었다. 이후 로사노 대위와 공산주의 진영 중사 일행이 만나고, 비록 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이 나온다.

전쟁을 치루는 군인들이니 당연히 총으로 무장했고 덕분에 좀비들을 상대로 제대로 잘 싸운다. 물론 많은 수가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를 상대로 탄약이 모자라는 등 차례로 당하기는 하지만, 이번 주말에 본 좀비영화 네 편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제대로 싸웠다. 그리고 서로 적으로 목숨 걸고 싸우는 군인이지만,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올랐다. 중반 이후에 조금만 더 인물을 잘 살리고, 결말을 제대로 연출했다면 훨씬 더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이 영화의 만듦새가 이렇게 좋지 않은 건 아마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비들이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고 별로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좀 더 예산을 써서 제대로 좀비들을 꾸미고, 연기자들도 좀 더 잘 지도했다면 훨씬 그럴듯한 장면들이 나올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이 영화의 어설픈 결말 부분은 시나리오 자체가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직전 장면까지 잘 싸웠던 일행들이 유독 마지막에 멍하니 있거나 도망만 다니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전투에 임할 때 어마어마한 좀비떼가 덮쳐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터널 입구를 막아놓지 않고 그냥 터널로 들어온 것과 터널로 진입하기 직전에 잔뜩 쌓여있는 보급품 상자들에서 총기와 탄약을 보급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는 장면 등은 명백한 오류다.

자, 이제 주말에 몰아본 좀비영화 네 편을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일단 좀비영화니까 좀비 얘기부터 하자. 네 개의 영화 중에 가장 형편없는 좀비는 필리핀 영화 [아웃사이드]의 좀비다. 느리고 전투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주인공 가족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이 좀비들은 좀비로 변하고 직전에 한 말로 짐작되는 짧은 말을 반복한다. 사람을 보면 바로 습격하지 않고 먼저 말을 한다. 이렇게 예의바른 좀비라니!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면, 필리핀은 좀비예의지국이라 불러야겠다. 그 다음 한심한 좀비가 등장하는 건 태국 영화 [지암]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정체모를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어서 그런지 물고기처럼 입이 가로로 넓게 찢어져 날카로운 이빨들이 강조된 외모는 정말 흉측하기 짝이 없는데, 변변한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주인공 한 명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참 답이 없다. 아무리 상대가 주인공이라 해도, 그 주인공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도 아닌데, 단 한 명을 상대를 못 하다니!세번째로 무기력한 좀비는 마지막에 소개한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좀비들이다. 이 좀비들도 느리고 떼로 덤비는 것 외에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나마 이 정도로 점수를 준 건 마지막 장면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덤벼들어 군대를 완전히 박살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가장 강력한 좀비는 인도네시아 영화 [불사의 약] 이다. 이 좀비들은 일단 엄청 빠르게 뛰어다니고, 물린 후에 좀비로 변하는 속도도 빠르다. 결국 한 마을을 완전히 장악했고, 아마 머지않아 나라 전체를 아니, 바다를 건너 다른 섬으로 옮겨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카르타가 있는 제일 큰 섬만은 장악할 것이다.

다음은 좀비가 되는 원인이다. 어차피 좀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원인을 무엇으로 돌리던 설득력을 객관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 단순히 작중에서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자. 네 작품 중에 [아웃사이드]는 좀비 발생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미 좀비 세상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무엇을 원인으로 두더라도 어차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어려울테니 아예 원인은 언급조차 안 하는 전략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하겠다. 그럼 가장 설득력 없는 좀비 발생 원인은 바로 [지암]이다. 무언가 정체를 알수 없는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는데, 이게 무슨 생선인지 왜 그런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럼 이 세계관에서는 불안해서 아무런 생선도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설득력이 약한 원인은 [불사의 약] 이다. 이 불사의 약이 어떻게 작용해서 좀비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건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다. 실험을 통해 만들었다는 설정은 앞의 [불사의 약]과 같지만, 여기에서는 나치 독일이란 존재가 더해져 더 무게를 실었다. 요 좀비 발생 원인 부분은 언젠가 시간날 때 더 많은 작품을 두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다음은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으로 평가해보자.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지도 포함해서 보겠다. 가장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인물들은 [불사의 약]이다. 나름 독특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더 잘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에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면서 프로포즈를 하고, 그 와중에 그걸 받아주는 황당한 연출이 나온 젋은 연인의 경우 이럴 거라면 애초애 왜 이렇게 비중을 높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지암]이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꼴찌로 생각했었다. 사실 세계관 설정은 열심히 했는데, 인물 설정은 오류 투성이다. 이유는 앞서 얘기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꼴찌였는데, 3등이 된 건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나아서가 아니다. 제법 흥미로운 설정의 인물들을 너무 살리지 못한 [불사의 약]이 너무 괘씸해서 순위를 내렸다. 그 다음 2등은 [아웃사이드]이다. 여기도 너무 과도하게 남편의 형에게 집착하고, 아이들에게 좀 냉담한 아내라던가, 어릴적 학대를 당했던 고향집에 너무 쉽게 집착하는 남편이라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긴 한데,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향성만은 잘 살렸다고 본다. 마지막 그래도 괜찮게 인물들을 살린 영화는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이 이야기도 위에서 했으니 반복하지는 않겠다.

마지막으로 다른 요소들 다 제쳐놓고 순전히 재미의 측면에서만 보고 평가해보겠다. 일단 [지암]을 가장 낮은 순위로 두고, 그 다음에 [아웃사이드]를 두겠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아웃사이드]가 가장 잔잔하고 어쩌면 지루한 이야기이고, [지암]은 반대로 재미있을만한 액션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지암]이 그만큼 액션을 잘 살리지 못한 측면도 크고, [아웃사이드]의 이야기가 그만큼 신선한 접근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다음으로 [불사의 약]을 2위로 두겠다. 작은 시골 마을에 좀비가 나타나 마을이 그야말로 완전히 망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담았다. 물론 아쉬움이 많은 영화지만, 살짝 내려놓고 보면 그나마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네 편 중에 그래도 재미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결말의 전투 장면이 너무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

어쩌다 우연히 [불사의 약]을 본 것을 시작으로 주말을 좀비영화 네 편과 함께 보내 버렸다. 넷플릭스가 이후로 [아웃사이드]를 추천해주더니, [죽은 자들의 골짜기]와 [지암]까지 보여주면서 좀비 주말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나 [지암]을 앞부분 한 1/3 정도 지점까지 보다가 그만두었었더라. 병원에서 싱이 린을 구하기 위해 좀비들과 싸우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좀비들과 무에타이 전사의 액션 장면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서 딱 그만둔 것을 보면. 저 위에서는 맨몸으로 싸운다는 걸 강조해서 지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인공 혼자 싸운다는 것도 문제다. 좀비는 쉴 새 없이 떼로 덤비는데, 이에 혼자 맞서서는 도무지 승산이 없다. 어떻게든 동료를 모아서 팀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들을 놔두고 특공대 대장과 일대일 결투를 한 것은 이 영화 최대의 실책이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너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역시 폰 자판으로 글을 두드리는 일은 어렵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한번 오타가 난 글자는 수십번 반복해도 계속 같은 오타가 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폰 자판도 엄청 빠르게 잘 치던데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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