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 곽미성
  • 15,120원 (10%840)
  • 2023-06-05
  • : 523

좋아하는 것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던 뭔가를 마주했을 때, 싫을 수도 있고, 그닥 좋지는 않을 수도 있다. 아무 감정이 안 들수도 있고. 아주 좋지는 않지만 뭐 그리 싫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좋다는 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싶다. 사실 평소 뭔가를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한참을 망설인다. 그냥 대체로 모든 음식을 다 잘 먹고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씩 떠올려보면 또 대부분의 음식이 그저 적당히 괜찮을 뿐 막 그렇게 좋다는 생각이 안 든다. 약간 삐딱한 성격 탓에 뭐든 이런 식이다.


이런 삐딱한 성격에도 분명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몸을 써서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바벨, 덤벨, 케틀벨, 불가리안백, 샌드백, 실내철봉 등 운동기구들과 그 부속 용품들을 사 모으며 한창 열심히 운동했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나는 달리기와 간단한 맨몸 운동들을 즐기고 좋아한다. 그리고 최근 동네 사람들과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하면서 다시 한번 케틀벨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바빠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등등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는 많겠지만, 아마 나는 앞으로도 평생 운동을 하고 살 것이다. 좋아하니까.


그럼 운동 다음에 두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다. 내가 익힌다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했는데, 내가 외국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바로 이 단어인 것 같다. 나는 외국어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공부에는 자신도 없고, 분명 실패할 것이 뻔하므로. 그저 나는 관심이 생긴 외국어를 깔짝 깔짝 살펴보고, 조금 따라해보고, 조금 읽고 이해해보려는 것에 그친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언어인만큼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따라하고 또 들을 것이다.


이렇게 외국어를 익히는 일에 진심이 된 것은 환경운동을 하면서 몇몇 국제행사에 참여하면서였다. 대학시절 몽골에 사막화방지 운동으로 국제행사를 가면서부터 나는 외국어라는 존재에 끌렸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국제교류행사 준비와 진행을 맡았던 나는 일본 담당자였던 학생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준비를 했지만, 서로 영어가 짧아서 원활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몽골에 도착해서 실제 행사 준비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측에서는 담당자이자, 실무 책임을 맡은 그 여성에게 통역까지 붙여줬지만, 나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내가 그 일본 여성에게 짧은 영어로 말을 하면, 그 여성이 일본어 학과 대학생인 몽골인 남학생에게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다시 그 몽골 학생이 몽골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곤 했다. 이게 잘 전달이 되면 너무나도 다행이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나는 일본어와 몽골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니, 그들이 뭔가 황당한 이야기를 해도 절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쨌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제교류 행사를 치뤘지만, 나는 그 행사의 완성도가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 10일 정도 이어졌던 이번 몽골 탐방 마지막 행사였던 자리에서 한국 대학생 대표로 발표를 맡았었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하면 일본 대학원 유학생이던 선배가 일본어로 옮겨줬고, 그걸 몽골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선교사가 다시 몽골어로 옮겨주셨다. 내 말 한 마디가 일본어와 몽골어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가만히 그 말들을 듣고 있어야 했는데, 재미있었다.


그 순간 느꼈다.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 나도 다른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제일 먼저 배우고 싶다고 떠올랐던 몽골어는 너무 어려웠다. 사실 몽골에 머물렀던 약 10일 동안 나는 손짓 발짓과 땅에 그린 그림으로 몽골인들과 소통을 시도했었다. 이게 어떨 때에는 그래도 좀 통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가기도 했다.


암튼 몽골어는 어려워 포기했지만, 뭔가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다. 영어는 너무 당연히 배워야 했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한 서너달 회화학원을 다니며 원어민 강사 반에 들어갔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나이대가 비슷했던 원어민 강사와 개인적으로 만나 장기를 두거나(장기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이었음) 당구를 치거나, 삼겹살에 소주를 먹거나 하면서 조금 친해졌다. 이때 영어에 대한 울렁증 이런 걸 극복한 것 같다. 이후로 해운대 같은 관광지에서 길 안내를 종종 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영어 통역으로 자원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한참 영어를 쓸 일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더듬더듬 말을 했는데, 부산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는 영어를 쓸 일이 없어졌다. 영어를 더 자주 써 보려고 해외에 펜팔을 만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언어 교환 앱 등을 통해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영어 말고 다른 외국어들도 조금씩 조금씩 익혔다. 독일어는 고등학교 때 배웠다. 시험 성적은 늘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기 시험이었고, 영어와 마찬가지로 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 남산에 있는 독일 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에 몇 달 다녔었다. 그때는 당시 여자친구(나중에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한)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가자는 조금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1년 넘게 공부하고 돌아온 지 시간이 좀 지났었지만, 다시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나는 부산에서 환경단체에 일할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독일에서 유명한 태양광 전도사이자 환경운동가와 연락해 태양광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열심히 독일어 공부를 했지만, 둘 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면서 독일 유학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갔고, 그런 와중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독일어 공부도 점점 소홀히 하게 되었다. 결국 몇 달 후에는 더 등록하지 않았다.


중국어는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왔던 유학생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어떤 선배가 그룹 스터디를 제안해, 거기에 참여하면서 처음 배웠다. 사실 중국어를 공부할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일단 게을러서 중고등학교 시절 한자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서 한자에 무척 약했고, 성조라는 개념이 무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모두 그만뒀고, 나만 혼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혼자서 내는 돈으로는 생활비를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단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늘 내게 했던 말이 그 특이한 말투 때문에 지금도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들린다. "어빠는 발음이 아주 조아요. 성조도 비교적 정확해요." 부산 사람이라서 성조를 잘 익혔던 것 같다. 이 친구의 칭찬 덕분에 그 후로 긴 시간이 지나도 가끔씩 다시 중국어를 들여다 보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친구는 나중에 한국에서 취직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언젠가 한번쯤 보자는 이야기를 동기나 선배에게 듣기도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주위에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대학 시절에 노래를 엄청 잘했던 동기 한 명은 나중에 일본에서 제법 오래 살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일본어 능력시험 같은 걸 준비하는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일본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짧은 기간이지만 일본에서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익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을 자주 보게 되었고, 특히 주위에 일본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오타쿠들이 좀 있어서 그들의 영향으로 일본어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몽골에서의 사막화방지 운동 일정을 소화하며 일본 학생들과 소통했던 기억도 일본어 공부를 언젠가는 해야지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년 봄에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익히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시작한 계기는 재작년 가을에 일본 대학원생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왔던 건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는지, 나에게 직접 이메일로 연락을 해서 찾아왔던 그 일 덕분에 나는 이제 드디어 일본어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 7~8년 전 쯤부터 이런저런 언어 익힘앱, 언어 교환앱 등을 깔아보면서 다양한 언어를 야금야금 해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딱히 그 언어들을 제대로 배우리라 생각한 것은 당연 아니었고, 그냥 순전히 재미로 듣고 따라해 보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튀르키예어 등이었다. 인도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편이어서 힌디어도 좀 배워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늘 그림처럼 느껴지는 문자의 한계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프랑스어는 발음이 너무 어려워 금방 흥미를 잃었다. 튀르키예어도 발음과 동사 변형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나마 가끔 시도했다가 한동안 잊고 살다가 다시 가끔 또 들여다 보는 것은 스페인어와 인도네시아어 이렇게 둘이다. 이탈리아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미국 군인들이 나치에게 들키지 않게 이탈리아어를 떠듬떠듬 말하는 장면에서 그 특유의 억양이 너무 재미있어서 언젠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아직은 여력이 되지 않는다.


욕심도 많지. 이 많은 외국어를 언제 다 익혀보겠나! 아마 평생 시도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기는 어려우리라.  


이 책 이야기를 좀 써야 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만 잔뜩 쓰느라 시간을 한참 보내버렸다. 이 책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알라딘 서재 이웃인 다락방님의 글을 읽고 빌려 달라고 부탁드려서 읽었다. 첫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가 이탈리아 열차에 무임승차 해서 차장에게 표를 결제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스릴도 넘쳤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이웃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멋진 이야기였다. 이 첫 장면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이 책과 이 저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프랑스에서 저자가 이탈리아 문화원에 강의를 알아보고, 등록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하는 장면들에서는 아주 조금 텐션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강의를 두 학기 들으며 저자가 20대 초에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와서 프랑스어를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던 과거와 지금 중년이 되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단순히 이탈리아 문화와 음식이 좋아서 배우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현재를 비교하며 보게 되는 부분은 좋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조금은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자는 그 어려운 프랑스어를 배워서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직장을 얻어 2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어를 얼마나 하는지는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사람들과 소통하다 막히면 영어로 소통하는 장면들이 나오는 걸 보면 영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할 것이다. 이렇게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어와 비슷한 면이 좀 있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은 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는 나 같은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


그런데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이런 마음은 곧 사라졌다. 그가 일주일 어학연수를 선택해 직장생활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어쩌면 휴가 같은 이탈리아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그의 남편과 함께 일주일을 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연애 시절과 신혼 초 시절의 추억들을 되새기는 장면들을 읽으며, 그 역시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책의 서두에서 독자를 확 사로잡는 솜씨와 중간 중간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내용들을 특유의 정서와 문체로 잘 풀어냈다고 느낀다. 그리고 저자가 외국어 공부를 통해 인생을 지나온 과정들, 그 좌절과 환희의 시간들이 잘 묻어 나있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면, 그 독자는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에 늘 관심이 많지만, 제대로 아는 외국어가 거의 없는 한국인 독자로서 너무나도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이 책을 빌려주신 다락방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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