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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못한 길


덥다. 더워.


지금까지 계속 덥기는 했지만, 그냥 어떻게든 버티고 지나왔는데, 이번 일요일 밤에는 정말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냥 세상이 찜통처럼 느껴졌다. 습기와 열기 때문에 지구를 찜통 안에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열대야. 오늘 나온 기사를 읽으니 7월 서울의 열대야 일수가 역대 가장 많은 21일이었다고 나왔다. 아직 7월이 다 지나지 않았고, 아마 오늘도 열대야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기록을 갱신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전에 가장 많은 날도 21일로 94년 7월의 기록이다. 나는 고3이었던 이 해 여름이 그렇게 이례적으로 더웠다는 기억은 없다. 그냥 여름이니 더웠지 하는 정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그 폭염에 대한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은 2018년이었다. 그 전에도 물론 덥기는 했지만, 그 해의 폭염은 정말 괴로웠다. 내 주위 아직 에어컨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그 여름을 겪고 나서 에어컨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작년과 작년도 유난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올해 아직도 7월 말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는 나처럼 아직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좀 있다. 요즘 안부 인사는 무조건 잠은 어떻게 잘 주무시나요? 라고 묻는다. 일단 나부터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양쪽에서 켜놓고, 자려고 누워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금방 땀 범벅이 되고, 그럼 다시 또 땀을 씻어내러 가야 한다. 어쩌다 너무 피곤해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긴 시간 잠을 자지 못하고 꼭 깬다. 깨보면 다시 온 몸은 땀에 젖어 있다. 다시 씻고 오면 또 더위에 괴로워하며 잠을 못 자는 것의 반복.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반드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즈음의 내가 딱 그렇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일요일 밤을 거의 잠들지 못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열대야 피난처를 만들어야겠다.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일요일 밤에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다들 에어컨 없이 버티는 사람들. 일단 일터의 매니저님. 월요일 아침에 나를 만나자마자 "이사님, 어떻게 주무셨어요?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라고 했다. 당연히 나도 잠을 못 잤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에 에어컨 없이 사는 친구 하나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도 "형,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이 더위에 어떻게 살고 계세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또 다른 지인이 쓴 글을 읽었다. 그는 충청도 어디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사람으로,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터에 출근하고, 금요일 밤에 퇴근해 내려갔다가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오곤 한다. 이번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와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잠을 청했는데, 더위와 외부 소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상황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했더라.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에 잠을 못 잔 사람이 엄청 많았던 것이다.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을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우리 집이 아닌 곳이라 사실 편히 자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찜통이 되어버린 집에서 아예 못 자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늘 방은 또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방법을 찾아봐야지.


공급예비율과 전력 피크


폭염 때문에 에어컨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전력 사용량도 역대급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 100기가와트시를 넘긴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다. 그럼에도 공급예비율은 걱정이 없다고 했다. 태양광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22%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핵발전소 비중보다 더 높다. 핵은 거의 20%라서 드디어 태양광이 추월한 것이다. 여름이면 나는 자주 전력거래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을 살펴본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에너지 분야 활동가들이 여름에는 전력수급 현황을 자주 본다. 7월 초 아주 더웠던 어느 날, 어느 선배 활동가가 오후 1시 기준 수급현황을 캡쳐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렇게 더운 날에도 공급예비율이 50%가 넘는다고 알려줬다. 나도 다른 정보를 찾아보느라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그 소식을 확인하고 전력거래서에 들어가봤다. 실제로 그랬다. 여름에 공급예비율이 이렇게 높은 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봄, 가을에 공급예비율이 70%가 넘는 날이 있어서 그런 순간을 캡쳐해두고 나중에 강의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번 건도 일단 캡쳐를 잘 해뒀다.


1년 중에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때는 한여름, 가장 더운 날이다. 겨울에도 난방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지만, 여름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이 가장 더운 날 전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계속 신규 발전소를 짓는다. 2011년 9월 15일 자칫하면 이 나라의 전력망이 완전히 망가질 뻔한 상황을 무작위 순환정전으로 간신히 막은 후에 정부는 설비 용량이 큰 석탄화력 발전소를 엄청나게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다. 전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원래 있던 석탄 화력도 폐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우리를 포함해 5개 정도의 나라만 신규 석탄 화력을 짓고 있다.) 역행하고 있고, 그래서 기후 악당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1년에 단 며칠 한 여름에만 돌리려고 자꾸 온실가스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화력 발전소를 지어야 할까? 우리 에너지 활동가들은 거의 20년 전부터 태양광을 늘리면 신규 발전소가 없어도 한 여름 피크타임을 버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태양광은 한 낮의 가장 더운 시간대에 꾸준히 전기를 생산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100기가와트시를 넘어가도 여유 용량이 남아돌 정도로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줬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의 설비용량을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중 일부(약 10~20% 가량)는 점검, 고장 등의 이유로 당장 사용할 수 없다. 이걸 제외하고 당장 언제라도 돌릴 수 있는 발전설비 중 현재 소비량을 감당하고 남은 비율을 공급예비율이라고 부른다. 2011년의 저 악몽과 같은 사건 이후로 언론은 자주 예비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질을 하곤 했다. 그걸 근거로 정부는 엄청난게 많은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규 석탄 발전소들이 늘어나자 예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전문가마다 혹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공급예비율이 10%를 넘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공급예비율은 전체 발전 설비에서 여러 이유로 멈춰있는 발전 설비들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특정한 순간들을 제외하면 공급예비율이 10% 이하로 내려가는 걸 볼 수 없다. 이 공급예비율이 20%만 넘어도 사실 엄청나게 많은 발전 설비들이 일을 하지 못하고 놀고 있다는 뜻인데, 이게 50%를 넘는 순간이 한여름 아주 더웠던 한 낮에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봄과 가을에 우리가 적당히 쾌적하다고 생각하는 온도에서는 70%를 넘기기도 하는 것이다. 전체 발전소가 120개라고 가정하고, 20개가 점검 중이라고 가정하고, 100개는 언제든 돌릴 수 있다고 한다면, 1년 중 봄과 가을에는 70개가 놀고 있고, 한여름에도 가끔은 50개가 놀고 있다는 이야기다.


태양광은 지어놓으면 별도로 연료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운영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니까.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석탄 화력을 지을 것이 아니라, 태양광을 지었어야 했다. 그럼 평상시에 놀고 있는 발전소가 저렇게 많아질 필요가 없다. 겨울이던 여름이던 냉난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태양광이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점점 더 많이 전기를 쓸거라고 가정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이미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전기를 쓰고 있다. 오히려 산업용 전력 사용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가며, 다양한 방법의 수요 관리를 통해 총 발전 설비 용량을 과하게 늘리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지금 누구나 AI 를 사용하고, 유튜브와 다양한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당장 내가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많지 않지만, 내가 유튜브로 야구 영상들을 찾아보고,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지구 어딘가의 데이터센터에서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AI 를 사용하지 않지만, 내가 구글에 특정한 단어를 검색하고, 그 검색 결과를 구글이 자동으로 AI 를 사용해 요약해주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검색하는 행위가 또 지구 어딘가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많은 전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스마트폰과 전자기기들에 의존할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영상을 시청하고, 더 자주 AI 를 활용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글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규모가 큰 기업들은 대부분 재생에너지를 통해 자신들이 사용하는 만큼의 전력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독 우리나라 기업들만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들. 다양한 형태의 기후 재난들을 줄이려면, 바뀌어야 한다. 그냥 조금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 쳬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끓는 물 속에 앉아 있는 개구리 신세이고, 찜통 속에서 익어가는 옥수수 신세이며, 서서히 침몰하는 난파선에 갖힌 승객 신세다. 언제까지 그저 말로만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라고 떠들고만 있을 것인가. 하루라도 빨리 에너지 정책을 바꿔야 하고 정책을 바꾸려면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노원 구청장 시절부터 공무원들과 함께(라고 쓰고 동원하여 라고 읽기)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었던 김성환 의원은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나름 에너지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야 할 상황에 처하니 이렇게 헛소리를 한다.


아, 오늘 읽은 기사 중에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이제 더는 바닷물을 핵발전소들의 냉각수로 사용하기 어려워 지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10년 안에 핵발전소 8기를 멈춰야 할 거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왔다. 현재 인류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거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전기가 부족해도 핵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일본은 2011년 3월 11일에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핵 발전소 4기를 아직도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이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핵발전소를 수출한다고?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인간들은 먼저 자기들 집에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고 살아보라. 그러고도 계속 그런 주장을 펼친다면 인정해 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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