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행
지난 주 아니 지지난 주 어느 날이었다. 경복궁역 안에서 출구를 찾아 나가려고 잠시 주변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어느 중년 여성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노, 스미마셍. 체인지 머니." 그는 손에 일본 지폐를 한 장 쥐고 있었다. 환전 가능한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영어로 "오케이. 웨잇 어 모먼트."라 말하고 잠시 생각했다. 평소 환전이란 행위를 해본 적이 없으니 환전이 가능한 곳이 어디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갈 길이 바빴다. 조금 더 고민하다가 "쏘리. 아이 돈 노 웨어 유 캔 체인지 유어 머니." 라고 천천히 말하고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내가 나가려던 출구 바로 앞에는 은행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은행에서 환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다시 그를 향했다.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지켜봤다. 그 아저씨가 적절한 답을 준다면 나는 돌아서면 될 것이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도 난감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그 일본 여성의 시야로 손을 뻗어 흔들었다.
"아이 씽크 유 캔 체인지 유어 머니 인 더 뱅크. 아이 노 웨어 더 뱅크 이즈. 팔로우 미." 내가 가능하면 천천히 발음하려고 애쓰며 말을 했다. 그 분은 뱅크 라는 단어를 잘 못 알아듣는 듯했다. 내가 다시 천천히 뱅크 라도 한번 더 말해줬다. 그러다 일본어로 은행이 뭐였더라 생각이 들었다. 긴코? 이 단어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갑자기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팔로우 미 라도 다시 말하고 앞서 걸었다. 그는 아리가토우 라고 말하며 따라왔다. 출구 계단을 오르며, 은행 입구가 어디였는지를 떠올렸다. 분명 은행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지만, 그게 과연 언제였는지, 그 사이에 혹시 은행이 문을 닫지는 않았는지 불안해졌다. 불안한 마음이 들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는데, 뒤따라오는 그 분이 금방 따라오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금방 다시 발을 멈췄다. 은행 입구는 내가 생각했던 곳에 없었다. 그 곳은 주차장부터 공사 중이었다. 은행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은행은 있었는데, 어디로 들어가는지 입구를 알 수 없었다. 그 분을 향해 웨잇 히어 플리즈. 라고 말하고 입구를 찾아 여기저기 움직였다. 그러다 카페 입구에 뭔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카페 저 안쪽 문 너머가 은행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돌아가 모시고 갔다. 카페를 통과해 안쪽 문을 열어드렸고, 그 분은 내게 두 세번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웃음으로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가려던 곳을 찾아가면서 일본어를 1년 반 정도 열심히 배웠는데, 정말 단 한 마디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은행이란 단어 하나 생각이 안 나다니. 나중에 찾아보니 은행은 긴코가 맞았다. 긴코 라는 단어를 말했으면, 그 바쁜 와중에 조금 더 소통이 원활했을텐데. 암튼 그 분이 그 은행에서 무사히 환전해서 원하는 대로 여행을 이어가셨기를 바랐다.
부산에 살던 시절에 해운대나 서면 등에서 외국인들이 길을 물어보면 길 안내를 자주 했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었고, 일부러라도 그렇게 영어를 써먹어 보고 싶기도 했었다. 이번에 일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한 마디라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텐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만 떠들어버렸다. 이게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다.
케틀벨 운동 모임
저번 글에 썼었는데, 동네에서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하기로 했고, 그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과 함께 케틀벨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갑자기, 너무 생각지도 않은 분들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조금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예전부터 운동 모임을 해보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작년에 동네 언니들과 열심히 했던 달리기 모임이 작년에 갑자기 참여자가 확 줄어서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다른 운동모임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운동을 오래 하신 분도 아니고, 거의 처음인 분도 계셔서 첫 시간에는 케틀벨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운동의 기분 원칙들을 좀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전날 밤에 준비를 좀 했었다. 처음부터 무거운 무게를 들도록 하지 않을 것이고 가장 가벼운 무게로 정확한 동작을 익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겠지만, 그래도 무게를 드는 운동은 무조건 부상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사항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알려드렸다.
다시 이어쓰기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중단한 것이 대략 10일 전이다. 그러니까 저 맨 앞의 어떤 선행은 2주 전이 아니라 거의 4주 전의 일이었다. 이 글을 한참 썼던 날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글을 두드리다가 딱 저 지점에서 임시 저장을 눌러두고 노트북을 닫았고, 그 날 이후로 이래 저래 바쁘고 여유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 망할 놈의 폭염.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일을 해야 하는 날엔 일이 바빴고, 일을 쉬는 날엔 더위 때문에 책상 앞에 노트북을 펼치기 싫었다. 예전에는 폰으로도 긴 글을 자주 두드리곤 했는데, 더위 때문에 그 마저도 하기 싫었다. 안그래도 더운데 폰 들여다보다가 폰이 뜨거워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7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정말 도저히 에어컨 없이 집에서 버티는 것이 힘들었다. 새삼 작년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에는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친구들 집을 며칠씩 돌아가며 버텼다. 내가 막 억지로 재워달라고 한 건 당연히 아니었고,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에어컨을 새로 설치한 후로 가끔 너무 더운 날엔 와서 자고 가라고 말했던 친구들이었다. 딱 작년 기억만 떠올려 보면 처음에 한 친구랑 저녁에 만나 놀다가 자연스럽게 그 친구 집으로 따라갔고, 더운데 자고 가라는 말에 같이 밤 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낮에도 너무 덥길래 그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고, 퇴근하고 돌아온 그 친구와 저녁을 먹고, 오늘도 열대야니까 또 자고 가라고 해서 또 잤던 것이다. 그 다음 날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발목이 아팠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발목이 부어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집 안에서도 걸을 수 없어서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일단 일어나서 발을 디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그 집에 갇혀 지냈는데, 다른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집에 며칠 지냈으니 이제 자기 집으로 오라고. 나는 발목이 아파서 걷기가 어렵다고 답했었고, 그 친구는 차로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는 차를 몰고 왔다. 그렇게 며칠간 아파서 꼼짝 못했던 나를 받아줬던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한의원도 가보고, 얼음 찜질도 해보고, 맛사지도 해보고 온갖 방법을 써봐도 발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통 관절 통증이 짧으면 이삼일, 길어도 10일 남짓이면 낫는 편인데, 이번엔 좀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아무렇지도 않게 나으니까 걱정이 되지는 않았는데, 당장 매일 걷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 집에서도 아마 며칠을 지냈을 것이다. 어느날 아침 갑자기 발목이 괜찮아졌고, 아무 일도 없이 갑자기 아팠던 것처럼, 이젠 귀찮아서 찜질도 안하고, 맛사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냥 나아버렸다. 그래서 한 2주 이상 비워뒀던 집으로 돌아갔었다.
물론 그러고도 폭염과 열대야는 지속되었고, 에어컨 냉방이 되는 집에서 지내다가 돌아온 나로서는 우리 집이 더 견디기 힘든 곳이 되어 있었다. 한 며칠을 어떻게든 집에서 버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또 다른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그 친구는 앞서 두 사람만큼 친하지는 않아서 딱 이틀 머물고 돌아왔다. 암튼 매년 여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 동안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자기가 너무 어렵다. 올해는 또 어떻게 버틸 것인가? 여름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일터에서 혹서기 열대야 대피소 개념으로 밤에 보드게임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등의 행사를 만들어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간에 휴가도 다녀와야 하고. 뭐 이래저래 어떻게든 버텨지겠지.
원래 이 글을 두드리던 날엔 뭔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생각없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려 이젠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건지 잊어버렸다. 일단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