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 커피 중독
20대 후반쯤의 나는 우유와 커피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우유는 유당분해효소인가 그게 없어서 국민학교 시절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 먹어야 하는 것을 고문처럼 느꼈었고, 군대에서도 억지로 먹이는 문화 때문에 좀 힘들었다. 이후 입에도 댄 적이 없고 지금도 먹지 못한다. 가끔 우유를 사먹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낯선 느낌이 든다. 그럼 당시에 커피는 왜 먹지 못했을까?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별로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가끔 마시면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커피는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오히려 소화를 돕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왜 나는 커피만 마시면 소화가 안 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었을까? 그 이후로 커피를 안 마셨다. 그런데 30대 초반에 출판사 영업 일을 하면서, 여기저기 크고 작은 서점들을 다녀야 했는데, 서점 사장님 혹은 담당자들이 우리가 방문하면 무조건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한 잔씩 타서 갖다 주시더라. 처음에는 고맙습니다만, 제가 커피를 마시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을 하며 사양했는데, 대부분 사장님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냥 종이컵을 내 손에 쥐여주며, 이거 한 잔이라도 대접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이거 안 마시면 섭섭하다고 하셨다. 한 두 곳 서점에서만 그런 곳이 아니라 가는 곳 대부분에서 그랬다. 결국 안 마실 수 없어서 억지로 한 잔, 두 잔, 세 잔, 네 잔 마시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커피를 마셔도 소화에 전혀 문제가 없게 적응이 되었다. 확실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
출판 영업 일을 그만두고는 꽤 오랫동안 다시 커피를 안 마셨다.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일부러 찾아 마시지 않는 편이었다. 약속이 있어 커피숍을 가게 되면 나는 늘 다른 종류의 차를 마시거나 쥬스를 마시곤 했었다. 내가 커피를 안 마신다는 사실을 잘 아는 지인들은 미리 알아서 다른 차를 주문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커피를 입에도 안 대고 지낸 시간은 제법 길었다. 내가 일부러 커피를 찾아 마실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한 10년 전에 지금 이 일터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달라졌다. 일이 정말 많고, 야근도 많고, 늘 피곤했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인데,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럴 때 믹스 커피를 마셔보니 확실히 각성 효과가 생기더라. 커피숍의 아메리카노도 가끔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내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아메리카노 보다는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믹스 커피에 더 손이 자주 갔다. 처음 한 동안은 일을 하다가 가끔 뭔가 머리가 멍 하거나 집중이 잘 안 될 때에만 믹스 커피를 먹었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자주 먹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거의 매일 하루에 한 잔씩 마셨고,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서는 하루에 두 잔을 마시기도 했다. 예전에 커피 못 마신다고 떠들고 다녔던 사람이 과연 내가 맞았던가 싶다.
한동안 일을 쉬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때는 당연히 커피도 몇 달 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하면 금방 다시 믹스 커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한동안 일하다가 오후에 좀 졸리기도 하고 조금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커피를 마시는 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데, 요즘은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한 잔 타서 마셔야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이거 점점 커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믹스 커피의 그 달달함. 즉, 설탕에도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남들보다는 훨씬 더 물을 많이 넣고 마시기 때문에 혈당 스파이크 걱정은 덜해도 될 것 같다는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믹스 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니 보통 머그 컵에 물을 절반도 안 되도록 넣고 타던데, 나는 뜨거운 물을 절반 조금 넘게 넣고 잘 저은 후에 미지근한 물이나 찬 물을 컵에 가득 차도록 다시 채워서 마신다. 그럼 단 맛이 많이 희석되어서 마실 만한 상태가 된다. 암튼 요즘 갑자기 믹스 커피에 계속 손이 가는 내 모습을 깨닫고 이제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염과 땀
정말 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낮에 외부 일정이 있어서 좀 돌아다니다보면 금방 옷이 땀에 젖어 버린다. 그래서 속옷과 셔츠는 여벌 옷을 사무실에 두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저녁까지 매장을 보다가 밤에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땀에 젖은 머리띠와 두건 등을 바로 빨아서 널어놓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낮에 여성 조합원 한 분이 매장에 오셨었다. 우리 매장엔 중고 의류이지만, 예쁘고 스타일이 괜찮은 옷들을 잘 손질해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 한동안 사람들이 그 코너가 있는지도 모르고 별로 판매도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 기다란 행거 채로 밖에 놔뒀더니 오가다가 옷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날 매장에 오셨던 여성 조합원님도 거기서 화사한 색의 원피스 하나를 골라 결제하시더니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셨다. 낮에 어디 다녀오느라 옷이 땀에 다 젖어서 갈아입으려고 하셨던 것.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오셔서는 매니저님은 언제 오시는 지를 묻는다. 그때 매니저님은 세 군데 가량 외부 일정이 있어서 1시간 반이나 2시간 후에나 돌아올 상황이었다. 그렇게 말씀 드렸더니, 그 분이 갑자기 그럼 이거 좀 잠가주세요. 라고 하시며 뒤를 돌았는데, 등 한 가운데에서 목으로 올라오는 지퍼가 절반 정도 잠긴 상태에서 위쪽은 열려 있었다. 아, 이거 때문에 여성인 매니저님을 찾으셨구나. 그런데 매니저님은 안 계시고 지금은 남자인 나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한테 부탁을 하셨구나.
상황은 이해했는데, 나는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뭔가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그 분은 등을 돌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기다리고 계셨는데, 나는 뇌에서 경고가 먼저 울리느라 멈칫하고 있었다. 암튼 그렇게 불편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누군가 지퍼를 올려드리기는 해야겠지. 지금은 나 밖에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손을 뻗으며 한 번 더 확인을 받았다. 제가 올려드려도 되는 거 맞죠? 그 분은 그럼요. 제가 부탁드렸잖아요. 라고 답하셨다.
아까 얘기한 그 중고 의류들은 교환, 환불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안내를 하면 가끔 입어 볼 수 없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옷가게라면 당연한 요구일텐데, 여기는 탈의실이 없다. 그나마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무 공간에 미닫이 문이 있어서 내가 밖으로 나오고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다. 그래서 가끔 여성 분들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면 나는 일하다 말고 쫓겨나서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중고 의류는 거의 99%가 여성들을 위한 옷이다. 이렇게 옷이 잘 팔리면 좀 더 자주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다.
케틀벨 운동 모임
우리 동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는 조합원들의 자치를 통해 운영하는 운동공간이 있다. 여기서 여러 운동 프로그램들이 운영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운동 모임들도 자발적을 운영하고 있다. 한 달쯤 전에 나는 어쩌다가 50대 60대 여성 조합원들과 대화하는 중에 케틀벨 운동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내 기준에서 케틀벨은 바벨이나 덤벨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운동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좋은 도구여서, 그런 이야기들을 전한 것이었는데, 그때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던 분 중 한 분이 나중에 나에게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해달라고 요청하셨다. 나는 혼자 집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굳이 그 운동공간을 이용할 필요는 없는데, 다른 분들에게 케틀벨 운동을 알려주고 좋은 자세와 적절한 강도와 횟수 등을 봐주기 위해서는 그 분들과 같이 운동모임을 꾸릴 수 밖에 없었다. 몇 해 전에 동네 50대, 60대 언니들과 달리기 모임을 운영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케틀벨 모임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꽤 오랫동안 바벨과 케틀벨을 별로 들지 않았더라. 가끔 덤벨 정도만 들고, 대부분 맨몸 운동 중심으로 아주 짧게 운동하는 정도로 근력 운동은 별로 하지 않았다. 달리기에 집중한 탓도 있고, 게을러진 탓도 있고, 예전에 재밌어 했던 동작들에서 흥미를 잃어가고 있기도 했다.
혼자 다양한 케틀벨 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이 분들에게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도록 알려드리고, 이후 바른 자세에 익숙해지도록 어떤 방식으로 연습을 시킬 것인지, 그리고 데드리프트, 클린 앤 저크,스내치, 스쿼트, 푸시 프레스 등 동작 들을 바벨과 덤벨 그리고 케틀벨로 들어 올리는 자세와 각각의 고유한 특징들 등을 잘 알려드릴지 머리 속에서 금방 그릴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뭐든 가르치는 일에는 재능이 있고, 자신이 있다. 이번에 이 언니들과 재미있게 잘 해보면서 나중에 언젠가 운동 강사의 길을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지금 나의 몸 상태와 나이를 생각하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거의 곧바로 들었다. 게다가 나는 아무런 자격증도 없으니.
어쨌거나 운동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치지 않는 것이다. 맨 처음 시작할 때 이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강조할 생각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맞는 무게를 잘 고를 수 있도록 옆에서 신중하게 살펴보고 조언해줘야 할 것이다. 가벼운 무게로 각각의 동작이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 또 반복하도록 권해야 한다.
바로 엊그제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하자는 제안을 승낙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벌써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일단 나부터 케틀벨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움직여 봐야 할 것 같다. 예전에 보았던 영상들이나 시각 자료들도 다시 찾아보고, 가능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직접 말로 해보고, 써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준비를 잘 해서 다들 케틀벨의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해야지. 이번 기회에 나도 다시 운동의 재미에 빠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