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천재가 쓰고 언어 천재가 번역한 책
페이스북을 보다가 신견식 선생이 번역한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봤다. 다카노 히데유키라는 저자는 25개 언어를 배워서 사용한 여행 작가라고 한다. 책 소개와 목차 등을 살펴보니 이 저자가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배운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냥 부딪혀서 계속 대화를 시도한 것과 부지런히 따라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책을 사서 읽어보면 명확히 알 수 있으려나?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저자도 저자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신견식 선생이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책 소개 페이지에 있는 역자 소개 첫 문단은 이렇게 적혀 있다. "25개 이상의 언어를 우리 말로 옮긴 한국의 '언어 괴물'. 저자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25개의 언어를 배워 익힌 사람이고, 번역가도 책과 사전과 씨름하며 25개 이상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다.
아, 이거 갑자기 외국어 25개 정도 못 배우면 인간도 아닌 것 같은 열등감이 든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외국어는 하나도 없고, 그나마 영어는 어떻게든 저떻게든 대화 비스무리하게 할 수 있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좀 진지하게 익히는 중이고, 그 외 잡다한 여러 외국어를 재미로 손을 대보는 사람 입장에서 뭐랄까, 의욕이 팍 식는 기분이랄까. 뭐 어차피 남하고 비교하려고 외국어 익히는 것이 아니고 해외 여행을 가보려고 외국어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재미로 손을 댔으니, 그냥 느긋하게, 천천히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야지.
사실 이 책의 가장 신기한 점은 링갈라어, 보미타바어, 샨어, 와어 처럼 어디쯤에 있는 어느 나라 언어인지도 모를 언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본 신견식 선생의 글에서도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내가 평생 저런 언어들을 익혀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저자와 번역가 덕분에 저런 들어보지 못했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인가.
사실 젊은 시절이었던 20대에 독일로 공부하러 가려고 독일 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을 다니기도 했었는데,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독일어는 좀 더 잘했을 텐데, 현실은 유학은 커녕 짧은 해외여행조차 거의 가본 적 없이 늙어가고 있다. 이젠 실제로 어딘가 해외에 가보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저 해당 외국어를 들을 기회가 생기면 조금 알아들었으면 좋겠고, 읽을 일이 생기면 대충 읽을 줄은 알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동기에, 종류를 막론하고 외국어를 새로 익히는 일의 재미를 느껴버려서 그 재미를 이어간다는 정도로 여러 외국어를 손을 대보고 있다.
이렇게 꾸준히 야금야금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재미는 있는데, 제일 큰 난관은 시간이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조금씩 해보는 것인데, 그마저도 시간을 내기 어려운 날들이 생기면 며칠씩 중단되고, 며칠 중단한 후에는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워진다. 주말에 일정이 없는 경우엔 침대에 누워 몇 시간씩 여러 외국어를 해보다가 평일이 되면 이삼일 이상 하나도 손을 못 대기도 한다. 그나마 듀오링고의 경우는 이 앱이 워낙 집요하게 얼른 들어와서 연속 학습을 이어가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기도 하는데, 낮엔 업무로 바쁘고, 저녁엔 늦게까지 긴 회의가 이어지는 날엔 전화기를 들여다 볼 틈도 없기에 그냥 지나치고 만다.
그래도 한동안 중단했다가도 꾸준히 잊지 않고 다시 시작하기를 몇 해째가 되니, 여러 번 다시 들여다보면 저번에 익혔던 거네 하고 알아 볼 수 있게 되고, 딴 일 하면서 틀어놓은 노래 가서에서 스치듯 지나간 어떤 단어를 알아들으면 어떤 날엔 영화나 드라마 대사를 자막 없이 알아들어서 자신감이 막 솟았다가, 어떤 날엔 뉴스에서 빠르게 쏟아지는 말들을 거의 알아듣지 못해 절망하기도 하며 이렇게 외국어로 일희일비 하는 일이 이젠 재미있다. 뭐, 이제와서 대단한 목표나 의미를 찾을 필요 있나? 재미있으면 된 거지.
아참, 그런데 이 책 원제가 궁금하다. 지금 이 제목은 아마도 한국 출판사가 지은 제목일 것 같은데, 지구 정복이란 단어를 저 저자가 썼을 것 같지가 않아서. 책을 사서 판권 페이지를 열어보면 알 수 있겠지.
요상한 통증의 나날들
이 서재에 자주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다. 나는 남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통증들을 갖고 있다. 하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인데, 원인은 교통사고로 명확하다. 얼굴을 크게 다쳤던 나는 눈 밑에 뼈가 깨져서 인공뼈로 대체했고, 코 밑에서부터 눈까지 심하게 다쳐서 감각이 사라졌다.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신경이 죽어버린 부위에 가끔 아주 심하게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종류도 다양하고, 강도도 다양하다. 조금 묵직한 통증인데,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의 통증이 좀 자주 나타나고, 가끔은 날카롭고 쎈 통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심하게 아픈 날엔 눈을 뜨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두통이 함께 찾아오기도 하고, 여러 감각이 정상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하기 어렵다. 출근해야 하는 날에 이런 통증이 찾아오면 어쩔수 없이 사정을 설명하고 쉴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통증은 관절 통증이다. 이건 교통사고를 당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증상이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통증의 원인을 몰라서 많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많이 찾아보고 병원과 한의원에도 몇 군데 다녀오고 하면서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다 류마티스 인자 검사를 받았는데, 없다고 나왔다. 이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분명 증상은 류마티스 관절염이 거의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하고. 퇴행성 관절염이나 통풍과 같은 내 증상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반복한다. 다행히 내 증상은 며칠 지나면 씻은 듯이 낫거나, 오래 가더라도 이삼주면 완전히 나았기 때문에 그냥 증상이 나타날 때에만 불편해도 참고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극심하게 관절이 붓고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날들이 생겼다. 긴 시간동안 그렇게 지냈다. 의사들도 정확한 병명을 찾아주지 못한 채로. 아주 가끔 통증이 심하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저주파 마사지를 받고, 가끔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그러다가 작년 늦여름에 우연히 지인께서 내 증상을 듣더니, 본인이 똑같은 증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니, 나중에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셨다. '재발성 류마티즘' 덕분에 병명을 알고 정확한 증상을 알고 나니 가끔 심하게 아파도 안심이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언제 아팠는지 모르게 나으니까.
위 두 통증이 가끔 번갈아 나타나거나, 가끔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통증으로 고통받는 나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쉬이 이해하지를 못한다. 친한 사람들도 그렇다. 몇 년 동안 수십번 설명을 해줘도 다음에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께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용하다는 한의원이나 정형외과 등으로 나를 데려가려는 혹은 꼭 가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여러 곳의 정형외과 포함한 병원과 한의원을 몇 년 동안 다녔다는 이야기를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다음에 또 그러신다.
최근에 두 가지 일이 있었다. 5월 말에 태양광 발전소 청소를 앞두고 있었다. 미리 사다리를 구해놓고, 홍보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참가자들도 제법 모집해놓았다. 준비는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었는데, 발전소 청소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관절 통증이 찾아왔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었다. 양쪽 다리의 서로 다른 관절이 붓고 통증이 심해서 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일어서거나 앉는 것도 힘들었다. 아침엔 어떻게든 일터로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통증이 더 심해져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엄청 힘들었다. 첫날은 그래서 일터에서 조퇴했는데, 거의 등산을 해야 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걸어서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일터 차량을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발전소 청소 하루 전 날, 아침에 나오는데, 통증이 좀 심했지만, 그래도 차가 있어서 출근을 했다. 주차하고 일터로 걸어오는 길에 왼쪽 무릎은 그래도 조금 나은데, 오른쪽 발목은 도저히 디디기가 어려워서 질질 끌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서 출근하던 매니저님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내일 발전소 청소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나도 그걸 걱정하던 중이어서 둘이 한참 논의를 했다. 다음날인 토요일에 내가 어떻게든 출근해서 매장을 보고, 매니저님이 발전소 청소를 진행하시라고 했다. 청소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매니저님을 위해 아주 자세하게 내용과 전체 행사 진행 대본을 써드렸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이사장님께 보고까지 마쳤다. 그날은 저녁에 태양광 발전에 대한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 아파도 조퇴도 하지 못하고 억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 그러니까 저녁이 되기 전에 갑자기 발목이 덜 아픈 느낌이 들었다. 오른발에 무게를 실어 디뎌봤는데, 통증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 내 강의를 들으러 온 이사장님께 갑자기 발목이 나아져서 내일 청소하러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발목이 완전히 낫지는 않을 것 같으니,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작업과 청소를 직접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전체 행사 진행과 안전 관리를 맡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사장님과 매니저님은 아침까지 발을 질질 끌면서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저녁이 되자 괜찮은 것 같다고 하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직접 본인들 눈으로 보고도 어쩜 이럴 수가 있냐 했다. 그래도 나 없이 행사를 진행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 내가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아직은 조금 통증이 남아 있지만, 걷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청소 행사를 진행하러 갔다. 내가 직접 청소를 하지 않고 전체 진행과 관리 감독 역할만 한 것은 10년 넘게 이 행사를 반복 진행하면서 처음이었다. 나는 해마다 매번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많은 시간 일한 사람이었다. 이거 한번 해보니까 너무 편하긴 하던데, 조금 마음이 불편한 것과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있기는 하더라.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어제와 오늘 일이다. 갑자기 오른손 손목과 손등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건 그제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점점 심해져서 한눈에 보기에도 퉁퉁 부었고 색깔도 달랐다. 게다가 밤에는 이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또 하필이면 얼굴 통증과 동시에 왔기에 더 힘들었다. 그런데 손목 통증이 너무 심하니까 얼굴 통증은 오히려 덜 느껴지는 효과가 있기는 하더라. 그리고 둘째 날이 어제였다. 무조건 출근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하필 오른손 손을 전혀 쓸수가 없어서 난감했다. 왼손으로만 씻었는데, 세수와 양치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나 싶었다. 아주 간단한 동작조차 왼손으로는 어색하기도 하고 정확한 동작이 잘 되지 않았다.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려서 씻고 출근했다. 퉁퉁 부어오른 손목과 손등에 파스를 붙이고 손목 보호대를 단단하게 감아서 고정했다.
출근하니 마침 매장에 몇몇 친한 조합원들이 와 계셨는데,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나를 보자마자 걱정스런 눈빛으로 손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좀 부었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다가와 손을 들어올리더니 너무 심하게 부었다고 막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 친구는 작년과 지난번 발전소 청소 전에 발목 건을 아는 사람이라, 이게 지난 번 발목 건과 같은 증상이냐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제서야 내 팔을 놓아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내 허리 근처까지 팔을 받치며 내렸다. 어제는 매장으로 찾아오는 친한 선배들이 꽤 있었는데, 다들 내게 농담으로 어디 가서 싸웠냐고 물었다. 사실 사무실에 나오기는 했지만, 오른손을 전혀 쓸 수 없어서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왼손으로 마우스를 쓰려니 너무 어렵고 오래 걸렸다. 자꾸만 엉뚱한 곳에 클릭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판도 왼손 검지로만 두드리니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급한 일들을 보고 퇴근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붓기가 한결 가라앉아 있었고, 피부 색도 많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통증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어제에 비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목과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오른손으로 세수도 하고 양치도 했다. 어제 왼손으로 답답했던 걸 생각하며, 왼손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 연습을 좀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출근해 마우스와 자판을 정상적으로 쓸 수 있어서 엄청 다행이었다. 어제 미뤄둔 일들을 재빨리 해치웠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어제 내 손을 붙잡고 걱정했던 친구가 다시 방문했다. 내 손을 보더니 다시 또 깜짝 놀랐다. 하루 만에 붓기가 거의 가라앉고 피부 색도 거의 돌아온 것을 보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게 내가 말한 그 '재발성 류마티즘'의 증상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오래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작년 여름에 발목 통증은 거의 10일 정도 동안 심했었다.
얼굴 통증도 관절 통증도 아무리 심하게 아파도 결국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게 계속 된다고 생각한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빠르면 하루 이틀 안에, 길어도 이삼주 안에는 완전히 낫는다는 것을 알기에, 좀 심하게 아파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주말까지 가지 않고 오늘 거의 나아서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통증이 훨씬 덜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데, 업무 관련해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어서 다시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올해 안에 건설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발전소 부지 하나가 계통 용량의 한계로 추진이 무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건이 다소 불확실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일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음 부지를 또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답을 찾기가 어려워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다. 에휴! 이제 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