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난리
왜 이러지? 최근에 그러니까 작년 연말부터 각종 스팸이 진짜 미친듯이 온다. 일단 문자 메시지, 하루에 수십개씩 오고 있다. 확인하는대로 바로 스팸 신고 버튼을 누르는데, 끝없이 오고 있다. 이 번호를 한 15년 이상 쓰고 있는데, 이 정도로 스팸을 많이 받는 건 처음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있으나 마나 한 스팸 신고를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그냥 계속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 한도를 넘어서는 느낌이다.
두번째는 라인. 라인 앱을 깔았던 건, 해외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내게 라인 설치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이제 그들 대부분과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라인은 이제 내게 전혀 쓸모가 없는 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앱을 지웠다 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깨달았다. 앱을 아예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눈에 띄지 않도록 바탕화면에서만 없앴던 거였더라. 그걸 깨닫게 해준 것이 스팸이었다. 예전에도 가끔 라인으로 스팸이 오곤 했기 때문에 뭐 그러려니 했다. 자주 쓰지도 않는 앱인데, 스팸이라도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뭐 이런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 후로 수시로 스팸이 왔다. 문자 메시지로 오는 스팸은 적어도 새벽에는 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라인은 새벽에도 종종 울린다. 불면증도 있고, 밤에 좀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울리는 스팸은 정말 사람을 화나게, 짜증나게 만든다. 참고 참다가 이젠 정말 라인을 삭제해야지 생각했다가 그러니까 생각만 하고 깜빡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니 최근에는 그래도 라인은 잠잠하네.
세번째는 텔레그램. 텔레그램은 내가 쓰고 있는 여러 메신저 앱들 중에서 가장 스팸이 없는 앱이었다. 나는 남들이 다 카톡을 쓸 때, 카톡을 안 깔고 버티면서 메신저가 필요하면 텔레그램으로 연락하라고 했었다. 카톡보다 더 오래 썼는데, 정말 스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오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은 스팸도 좀 남다르다. 어느 순간 어떤 누군가가 나를 비롯해 수백명을 한 방에 초대해서 뭔가 불법적인 것 같은 것을 홍보하는 글을 남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어떤 수상한 방에 끌려들어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는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수백명이 수시로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내가 끌려 들어왔다는 걸 깨달으면 무엇을 위한 방에 어쩌다 끌려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방을 나온다. 처음 몇 번은 그렇게 남들 따라서 방을 나오고 말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끌어들인 그 놈을 차단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 다음엔 방을 나가기 전에 차단하려고 보니, 어라, 벌써 없는 계정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최초의 딱 하나 홍보글을 남기려고 그렇게 수백명을 한번에 몰아넣고 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와, 이거 참!
네번째는 왓츠앱. 왓츠앱은 처음 깔았을 때부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스팸이 왔다. 왓츠앱으로 오는 스팸은 딱 전형적인 패턴이 있었다. 주로 프로필에 아름다운 중국 여성의 사진이 있는 분이 어설픈 한국말로 말을 건다. "사업 때문에 연락 드린다."고 하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거나, 누구 아시냐고 묻거나 한다. 가끔은 그냥 "한국인이시냐?"고 묻기도 한다. 맨 처음에 이게 스팸인지 몰랐던 나는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물어오는 중국 꾸냥들(아마도 실체는 아니겠지만)께 친절하게 대답했었다. 아, 이게 아름다운 여성이라서 친절했던 것이 아니라(정말로?) 그냥 누구에게라도 초면에는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버릇이라서 그랬다.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쓴 적이 있는데, 로맨스 스캠인가 하는 것도 두어 번 연락 받아 봤었다. 한 번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받았었고, 또 한 번은 탄뎀이라는 언어익힘앱으로 받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로도 스팸이 몇 건 왔었다. 이 인스타그램은 서로 팔로우가 맺어져 있지 않으면 메세지를 바로 보낼 수 없는 것인지 몰라도 그냥 메시지에 들어가면 안 보이는데, 거기서 파란 글씨로 된 "요청"이란 버튼을 누르면 나오더라. 몰랐는데, 어쩌다 한번 찾아 들어가보니 스팸이 여럿 와 있었다.
와! 진짜 스팸의 시대도 아니고 무슨 스팸이 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일 때문에 전화도, 문자도, 메신저도 정말 자주 그리고 또 많이 쓰는 편인데, 요즘은 가끔 업무 연락보다 스팸이 더 많은 날도 있는 것 같다.
책 모으는 사람들
1. 전 알라딘 MD
우연히 기사를 하나 읽었는데, 지금은 모 출판사에서 간부로 일하고 계시는 예전 알라딘 MD님 이야기였다. 책을 2만원 사모았는데, 그중 약 1만 5천권 가량 책을 두는, 아니 책만 두는 아파트가 있다고 소개하는 기사였다. 그는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와 혼자 사는 서울 집, 그리고 책만 두는 인천 아파트 이렇게 세 곳에 책들을 분산해 두었다고 했다.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이 기사를 왜 읽었느냐 하면, 예전에 내가 출판사 마케터로 일할 당시에 그가 여기 알라딘의 인문,사회,과학 분야 담당 MD였어서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사로라도 오랜만에 소식을 접해서 반가웠다. 요즘은 작가로서 활동하시는, 그래서 가끔 책으로 이름을 접하는 그의 전임자와도 친분이 있었다. 다소 낯을 가리는 듯한 그 전임자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서 간신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갑자기 그만둬 버리고 후임으로 온 사람이 바로 오늘 기사에 나온 그 사람이었다. 바갈라딘 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사람. 이 분은 전임자보다 훨씬 더 사교성이 있었다. 금방 딱 필요한 만큼의 친분을 쌓았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도 오랫동안 이 분은 알라딘에서 계속 일했다. 이제는 그 전임자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가 아는 한 알라딘 인문, 사회, 과학 담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분이 맡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일했었다. 나중에 다른 출판사로 옮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출판계로 돌아가 마케터로 복귀한다면(사실 그럴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지만) 알라딘에 신간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가 맞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기사에 나온 그는 책을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2만 권이라. 개인이 가진 책의 양으로는 정말 많긴 하다.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들 중 한 곳은 책을 물류 대행업체 창고에 두지 않고, 자체 창고를 운영했었고, 나는 마케터이자 창고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때 우리 창고에 있었던 책이 약 4만 권 정도였었던가? 수십종의 단행본과 수십호의 잡지를 가진 출판사 창고에 있던 책이 그 정도였는데, 개인이 가진 책이 2만 권이면 정말 많은 것이다.
2. 현 소규모 출판사 공동대표
책을 엄청 사모으는 지인 중에 딱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사람을 떠올린다. 책에 미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책이 너무 많아서 이십년 가까이 이사도 못 가는 사람. 내가 그를 만나보기 전에 그저 소식만 접하던 때는 아마도 십오년이 훌쩍 넘은 전이었고, 그를 처음 만난 때가 딱 십일년 정도 전이었다. 그때 그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갔었는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책이 많았다. 집에 다른 것들은 거의 없었는데, 그냥 책만 있었다. 앞서 바갈라딘 님이 최근에 2만 권을 모았다고 한다면, 이 분은 이미 십년 전에 2만 권쯤 있었을 것이다. 집에 가스레인지도 없고, 옷장도 없고, 티비도 없는데, 그 넓은 집을 책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거실을 빙 둘러 서있는 서가는 책으로 가득 찼고, 작은 방에는 책탑으로 가득했다. 베란다에도 아직 풀지 않은 책 상자들이 가득했고, 구석 구석 자투기 공간마다 묶어놓은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이후로 한 서너 차례 그 분의 집에 놀러 갔었다가, 안 간 지 제법 오래 되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꾸준히 어마어마하게 책을 사 모으고 계시고, 벌써 예전부터 집에 둘 자리가 없으니 사무실에도 책 탑과 상자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아마 그 출판사 사무실에는 본인이 낸 책들보다 사 모은 책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 물론 창고가 아닌 사무실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출판사 사무실이라면 책 탑이나 상자가 아닌 서가에 책들을 잘 정리해 둘 것이다. 그것이 출판사 소유의 책이라면, 하지만, 그 분의 개인 책이기 때문에 서가에 두지도 않는 듯하다.
3.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부자였다면,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돈과는 철저히 관계 없는 일을 하는 삶을 살지 않고, 평균적인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사모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현재의 삶이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가 책을 그렇게 본격적으로 사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저 맨 위의 바갈라딘 님처럼 책만을 위한 집을(그것도 아파트를) 따로 둘 여유는 당연히 없고, 두번째에 소개한 분처럼 넓은 집과 사무실을 책을 위해 투자할 여유도 없다. 우리 집은 작고, 좁고, 낡은, 허름한 곳이라, 책을 많이 두고 싶어도 둘 수 없다.
집이 작고 좁은 것과 함께 잦은 이사도 책을 모으는데 큰 방해 요인이다. 저 앞선 두 분의 사례처럼 긴 시간 안정적으로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2년에 한번 혹은 그보다 더 자주 이사를 다닐 때마다 대대적으로 책들을 처분하곤 했다.
지금도 어쩌면 올 봄에 이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라 책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여기 올 때 저 많은 책들을 옮기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제 나이 들어서 더 힘을 쓰지 못 할텐데, 저 책들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 이제 책 사는 거 금지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하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아니지. 오늘도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들락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본다.
아, 지난 주에 받은 책들 박스만 뜯고 아직 훑어보지도 않았구나. 주말 내내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이불 속에만 있었더니 차가운 작은 방 바닥에 책 상자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네. 얼른 집에 가서 책들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