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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아래서 섬진강은 수런거린다. 섬진강은 지리산 밑자락을 살포시 감싸며 돌아간다. 산을 품어 안은 강은 넓고 넉넉하다. 강과 산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정겹다. 그 둘은 두런두런 정답다. 산은 강을 덮지 않고, 강은 산을 깎지 않는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운명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운명을 개척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굽이를 도는 강은 운명을 끌어안아 운명을 사랑하는 삶을 침묵 속에서 보여 준다. 강은 산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강은 굽이굽이 에돌아 제 길을 간다. 바다에 이르는 길을. 강의 꿈은 바다다. 강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바다를 꿈꾼다. 그게 강이 꿈꾸는 자세다. 그러므로, 지리산 굽이를 돌아 흘러가는 섬진강은 황홀하다.
그 황홀함 앞에서, 나는 무참했다.

지리산, 대원산 가는 길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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