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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놓인 책

길을 나서다. 떠나는 자는, 떠나려는 맘과 떠나지 못하는 몸 사이에서 서성인다. 혹은, 떠나고자 하는 몸과 떠나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나서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떠나기 전날 밤, 몇 개의 짐을 꾸리며 나는 외롭다. 오로지 혼자다. 떠난 길에는 기댈 누군가도, 손을 잡을 누군가도 없을 것이다. 가방에 짐을 챙겨 넣으며 얼마나 떠나 있을지 가늠한다. 일정을 정하고 가방을 싸는 게 아니라, 가방을 싸면서 대강의 일정을 정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머물지, 정하지 않은 채 나는 다만 헐거운 마음으로 떠나고자 한다.
떠나는 자는, 필요와 피로 사이에서 갈등하며 짐의 무게를 가늠한다. 짐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제 한계를 생각한다. 담아가지 않으면 아쉬울 것이나, 담아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 짐의 무게만큼 나는 나아갈 수 있다. 정확히 그만큼이 내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짐을 싸다말고 삶의 무게를 생각하니 눈물겹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 어디까지 살 수 있을까.
― 떠나기 전날의 기록




 

 

 

 

 

 

 

 

 

 

 

강릉, 경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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