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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놓인 책

10년을 띄엄띄엄 함께한 내 친구들. 서로 학교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 또 가끔은 각자의 연애에 빠져 띄엄띄엄 만날 때도 있지만 우리는 10년 넘게 한결같이 지내고 있다.

누군가 힘들 때 서로의 어깨를 빌려 줬고, 누군가 제 안에서 북받치는 울음을 토해낼 때 말없이 받아줬다. 넷 중 둘은 이미 여러 번 눈물을 보였다. 가끔, 그 일을 가지고 놀려먹을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 누구보다 그 눈물에 담긴 슬픔과 설움을 잘 안다. 나는 아직 한번도 녀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녀석들에게 내 눈물을 숨기고자 그랬던 건 아니다. 단지, 녀석들보다 내가 조금 덜 치열했을 뿐이고 덜 상처받았던 탓이다. 비교적 운이 좋았던 나는 녀석들보다 덜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만큼 몸 사리며 살았다는 반증밖에 되지 않는다. 적어도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그럴 것이다.

두 녀석은 녹두에서, 나는 신촌에서 학교를 다녔고, 다른 녀석은 얼마 동안 광주에서 살았다. 그러다, 올해부터 우리들은 다시 뭉치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넷에서 다섯, 혹은 여섯이 되기도 했고, 그러다 셋, 혹은 둘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 군대에 가야 했고, 또 누군가는 멀리 광주로, 혹은 바쁜 일터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셋이 되었다 다섯이 되었다 하며 우정의 몸피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했다. 어떤 친구들이 왔다가 가버렸고, 또 어떤 친구들은 기웃거리다 사라졌다. 그 결과 이렇게 넷이 남게 되었다. 하여간, 우리들 넷은 올 한해를 온전히 함께했다. 그 시간이 이제 며칠, 혹은 몇 달 뒤면 다하게 된다. 한 녀석은 늘그막에 군대에 가게 되었고, 다른 녀석은 1월부터 새 직장이 있는 아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물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의 새로운 자리로 옮아가게 된 것이다. 하여, 우리는 넷에서 둘이 되었다. 나와 한 놈만이 서울에 남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할 것이며, 다시 우리가 함께할 시간들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여느 20대 후반의 아저씨들처럼 놀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게 논다. 난 당구를 아예 못 치고, 포카(나 화투), 컴퓨터 게임도 할 줄 모른다. 그런 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대개 방구석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가리를 까곤 한다. 어쩌면 그런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없을 때 지들끼리는 더러 당구도 치고, PC방에 가서 게임도 곧잘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있을 때도 간혹 지들끼리 화투나 카드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내 기억엔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런 날에는 난 가만히 녀석들 옆에 누워 그네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소일하거나 책을 읽곤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흔한 나이트도 같이 가본 적이 없다(한두 번?). 세상의 여자들을 꼬여서 침대로 이끄는 데 지극히도 서툴렀던 우리는, 우리들의 방에 모여앉아 각자 얼마나 여성의 호감을 살 수 있을지 비교, 평가했던 적도 있다. 그나마 어색하지 않게 여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체질적으로 분위기 띄우는 걸 즐기는 내가 없었더라면, 그네들 셋이 방바닥을 박박 긁어대며 보냈을 날들은 더 많아졌으리라.

우리는 그저 방바닥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술잔을 기울이거나 토론을 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끝없이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서로의 관점과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극복하려 애썼다.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나란히 누워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함께 부르기도 하고, 새벽까지 가까스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스르르 잠들곤 했다.우리는 10년 동안 그렇게 살을 부비고 말을 섞으며 지냈다.

서른 즈음의 나이에도, 우리는 만나서 애들처럼 다투고 투정부리기 일쑤다. 가끔은 유치하게 먹는 걸 가지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두고 짐짓 어른스레 나무라는 녀석도 아이처럼 토라지기는 마찬가지다. 가끔은 그렇게 먹는 걸로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맛있는 걸 먹으며 서로를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벗은 몸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그 몸에 척척 손과 발을 갖다대며 장난치기 좋아한다. 장난스레 똥구녕을 찌르기도 하고, 한 녀석이 밤새 게워낸 토사물을 다른 녀석이 몸에 두른 채 잤던 적도 있다. 유달리 깨끗한 척하는 나는 그런 장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몸이 근질거리는 날에는 빠데루를 하며 힘을 겨루고, 누구 발이 더 높이 올라가는지 발차기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녀석들과 그러고 있노라면, 난 도리 없이 19살의 나로 돌아가고 만다. 문득, 녀석들의 얼굴에서 19살의 그네들을 볼 것만도 같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 일없이 빈둥대고 애들처럼 싸울 수 있을까. 그러기엔, 우리의 나이가 이미 꽉 차버렸는지 모른다. 돈을 벌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차도 사야 하고, 집도 장만해야 한다. 그리고 나선, 자동차 배기량을 늘리는 데 열을 내고 아파트 평수를 넓히는 데 눈벌게지겠지. 아쉽지만, 우리의 추억은 여기까지인지 모르겠다. 나와 한 놈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그 추억을 곱씹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새로운 추억에 잇대리라. 그래서, 2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변함없는 모습으로

너희와 함께 청춘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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