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년 동안을 기숙사에서 살았다. 처음 1년 동안, 기숙사 내 방 화장실은 <트레인스포팅>의 화장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2학년이 되어서야 대학 생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내 주변 정리 상태도 그나마 나아졌다.
군대를 다녀오고 휴학을 했다. 그렇게 2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복학 첫 학기 나의 생활은 말 그대로 범생이 그 자체였다. 복학을 하면서 나의 자취 생활은 시작되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어려웠다. 밥을 하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기숙사는 친구들이라도 있었지만, 자취방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었다. 그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더불어 나 혼자 꾸려가야 할 공간을 뜻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잘해나갔다. 언제나 나의 방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때 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대학생활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동문 선후배 10명 정도가 내 방에 놀러왔다. 집들이 겸 MT. 그날 난 한 손엔 술 잔을, 다른 손엔 걸레를 들었다. 아이들이 술이라도 몇 방울 흘린다거나 과자부스러기를 떨어뜨릴라치면, 나의 걸레질은 그 순간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때 난 거의 결벽증 상태였다. 방도 그랬고, 공부도 그랬다. 그 결과 입학 후 최초로 3.5를 넘는 학점을 받았다. 그때 내 마음은 복학해서는 뭐든지 제대로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청소는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학기에는, 그 학점에다 다소 어려운 가정 형편을 내세워 학교로부터 ‘가사곤란자 장학금’이라는 것을 받아냈다. 흥분에 떨며 엄마에게 전화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뚜렷하다. 오래 전에 억지로 빌려준 돈을 간신히 받아냈을 때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6개월 뒤 나의 방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쓰레기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방의 난지도화는 시작되었다. 1년 6개월을 그렇게 보내고 난 졸업을 했다. 가끔 여자 친구가 와서 밀린 빨래와 머릿기름에 전 베갯잇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주었고, 베개와 이부자리를 털거나 햇볕에 널어 말려 주었다.
졸업 후 나는 나의 진로를 두고 고민해야 했다. 그래, 차선으로 딱 1년만 돈을 벌고 다시 공부하는 거야. 그렇게 맘먹고 시작한 학원 생활은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뒤 1년 6개월 동안 나의 자취방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심하게 도진 비염으로 집에 오면 쉴 새 없이 코를 풀어댔다. 그러니, 방 여기저기는 코 푼 화장지로 가득했다. 방 한쪽 모서리에 묵혀둔 빨래 위에는 소복이 먼지가 쌓이곤 했다. 아침에 날 밀어낸 이부자리는 저녁에 그 모습 그대로 날 받아들였다. 그런 날들이 오래 지속되곤 했다. 그러다 가끔 여자 친구가 와서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을 말려 주었다. 돈을 벌고, 집을 청소하고, 책을 읽고,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하기엔 나의 능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리고, 난 원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한다. 청소를 하고 지내는 한동안(며칠이나 몇 주)은 책장을 덮어두어야 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청소고 뭐고 없다. 난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올라오셨다. 9년만에 모자는 한 지붕 아래서 잠들고 눈을 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한다. 심지어는 제 밥도 밥통에서 안 푼다. 엄니가 입에다 퍼주지만 않을 뿐, 아니 거의 퍼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한때는 나도 설거지도 하고 내 와이셔츠를 빨아 다려 입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일들을 까마득히 잊었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때 일일랑은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하루를 받아먹으면서 살고 있다. 이불도 안 개고, 내 양말 하나도 안 빤다. 방을 한번 걸레질을 하나, 내 방 쓰레기통을 한번 비우기를 하나.
엄니가 광주에 내려가셨다. 누나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데 수발을 들러 가셨다. 며칠 전부터 나는 혼자 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라도 해야겠다. 사실 안 해도 버틸 수는 있지만, 난 그렇게 3년을 버텨낸 과거가 있으니까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만, 엄니가 올라오셨을 때 아들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보여드리고 싶다. 아니, 이참에 내 생활 태도의 뿌리를 조금이나마 흔들어봐야겠다. 엄니가 올라오신 뒤에도 가끔이나마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좀 개고 그래야겠다. 꼭 효도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제 방 하나, 제 옷 하나, 자기가 먹은 밥 그릇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책임진단 말인가.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내 몸에 굳어진 ‘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여기는 습성은 내가 앞으로 만날 여자에게도 좋지 않다. 어미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 아들놈은, 결코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다. 생각해 봐라. 평생 부려먹는 마법에 걸려 있던 놈이,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마법에서 풀려난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그 마법은 마수(魔手)다. 달아날 수 없는 마수다.
굳이 결혼 때문만도 아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은 한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좀 그럴듯하게 얘기하자면, 그건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문제다.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도 중요하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돈을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생활을 꾸려갈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직도 반쪽짜리 생활인인지도 모른다. 벌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만 고민했지, 그걸로 내 생활을 꾸려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엄니의 몫이었다.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날 위해서라도 이젠 좀 달라져야겠다. 난 지금 추계 훈련 중이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이라 다행스럽다. 하지만, 마음은 급한데 손은 더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