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옷을 벗고 있다. 수년 동안 내가 입고 있던 옷을.
그 옷은 내게 딱 맞았다. 지나칠 정도로 딱 맞았다. 배와 가슴을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동여맨 중세의 코르셋처럼.
한 여름 햇살 아래서도 나는 그 옷에 내 몸을 숨겼다.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햇살의 행복을 애써 무시했다. 햇살처럼 따사로운 행복을 시기의 눈빛으로 쏘아보거나, 짐짓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 옷은 편안했지만, 많이 답답했다.
숨쉴 틈 없는 그 옷에 내 몸은 조금씩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랩으로 칭칭 감아놓은 생선토막처럼, 내 몸은 세상의 공기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니, 내 몸은 내 밖의 몸과 만날 수 없었다.
한때는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한때?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고.
적당히 헐거워도 좋을 옷에 너무 많은 풀을 먹여놓았는지 모른다.
모든 딱딱한 것들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옷에 먹인 풀기가 죽고 빳빳한 옷깃이 풀어지듯이.
내게는 지금이 그 때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헐겁고 적당히 풀어져야 한다.
풀어지리라.
6월 30일
나는 정말 하찮고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한 말들의 많은 부분은, 정말 입에서만 중얼거리는 말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 말들에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길 바라고, 또 내 삶이 나의 말만큼이나 진실할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모두 내 삶의 뿌리로부터 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구? 나 역시, 나의 몸 역시, 나의 무의식 역시, 나의 일상적 의식 역시 그때 내가 했던 그 말들과 충돌하고 부딪치곤 하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충돌과 모순에 나를 내던지려 하고, 또 내 삶과 내 말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안간힘을 쓴다는 거겠지. 부족하나마.
7월 2일
인라인을 타다 다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멍이 들었고, 왼쪽 골반 깊숙이 상처가 남았다. 외상은 없다. 그냥 보면 멀쩡한데, 어젯밤에는 아예 그쪽으로 돌아눕지를 못했다. 대개 옆으로 누워 자는 데 익숙한 나로서는, 어젯밤 잠자리는 그리 편치 않았다. 갑작스럽게 내 쪽으로 내달려온 그 사람을 원망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더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게 아무 잘못도 없었는지. 난 뒤로 주행 중이었지. 물론 주행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예상 불가능하게 움직인 건 아니니까. 지그재그로 움직일 때 상대가 와서 부닥쳤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나는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저 그 방향으로만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근데, 문제는 나의 주행 방향이었다. 나는 그때 거꾸로 가고 있었던 거다. 뒤로 가더라도 (앞으로 주행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마주보고 달렸던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그와 같은 나의 주행은 당연히 상대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는 맞부딪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탓일지도. 아니, 분명 나의 탓이리라. 왜 그렇게 방향을 잃고 거꾸로 가고 있었던지.
사랑도 그렇게 할 때가 있다. 있다? 아니, 많다. 앞보고 하지 않고, 거꾸로 돌아서서. 그러니, 매번 부딪치고 깨질 수밖에.
7월 23일
살이 찌는 달, 몰락하는 달, 하얀 눈썹 같은 달, 둥근 은접시 같은 달, 달은 참 다양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달에는 예상 가능한 과정이라는 게 있다. 사람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정말 편할 텐데. 아니 있다 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이 나를 한없이 옥죌 뿐이고 내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달은 제 모양을 바꾸면서, 주위 사물들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변화다. 밀물이 밀려오고 썰물이 밀려가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 바다는 제 몸이 흔들리는 것을 원할까. 기원적으로 따지자면 바다는 달의 힘에 밀려 흔들리는 것이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바다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달과 바다는 깊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달의 힘이 바다를 꺾으려 하지 않고. 달과 물이 서로에게 스미듯, 달의 변화가 제 밖의 것들과 자연스레 섞이듯, 그렇게.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