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내 인생은 진행중
  • 버지스 형제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16,650원 (10%920)
  • 2017-11-20
  • : 1,559

1.애초에 읽으려고 했던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를 읽기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이전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 <루시 바턴>, <버지스 형제>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스트라우트 소설의 결정판과도 같은 소설이라는 것을. 앞의 두 작품은 읽었지만 <버지스 형제>는 읽지 않았고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 그래서 우선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 <버지스 형제>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이런 소설이 다 있었어?' 하면서.


2. 장편 소설

크고 작은 문학 잡지에 단편 소설을 발표해오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첫 장편 소설을 펴 낸것이 1998년 (42세) <에이미와 이저벨>이었고 이후 <올리브 키터리지>가 나온 것이 2008년 (56세), 장편 소설로써 세번째 소설이다. 그리고 2013년 (61세) 에 네번 째 소설 <버지스 형제>를 발표하였다.


3. 어떤 인물이 나오나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가 배경. 

엄마와 나는 버지스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 "버지스네 아이들". 엄마는 그렇게 불렀다. (9)

이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자신이며, 읽어보건대 버지스 가족은 작가와 어릴때 한동네 살던 사람들이고, 작가의 엄마와 그들의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것을 글로 써봐야겠다 결심을 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프롤로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소설의 끝과 시작이 다시 보이며 이해가 된다.

짐 버지스, 밥 버지스, 수전 버지스. 이중 짐 버지스가 첫째 아들이고 밥 버지스와 수전 버지스는 쌍둥이 남매이다. 어릴 때부터 잘 생기고 두각을 나타내었던 짐 버지스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되어 뉴욕에 살고 있다. 동생 밥 버지스 역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그만 두고 법률구조협회 항소부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형 짐 버지스에 비해 소심한 밥 버지스는 아내와도 이혼한 상태로 자식 없이 뉴욕에서 살고 있다. 유일하게 어릴 때 마을 셜리폴스를 떠나지 않는 수전은 스웨덴 출신 남편과 이혼하고 열아홉 살 아들 잭을 키우며 살고 있다.


4.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요 사건

어느 날 짐과 밥은 수전의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수전의 아들 잭이 마을의 소말리족 난민 공동체가 신성시하는 이슬람 사원에 잘린 돼지 머리를 던져 넣는 일을 저질렀고 잭은 증오범죄를 저지른 죄인이 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짐과 밥은 조카 잭을 됩기 위해 수년 만에 고향 셜리폴스로 향하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되기만 하고 오랜 만에 만난 세 남매가 이야기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묻혀 있던 갈등과 상처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버지스 집안의 삼 남매 짐, 밥, 수전에게는 공통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것인데, 짐이 여덟 살, 밥과 수전이 네살 때, 아버지가 어린 삼 남매를 차에 태워놓고 잠시 아래로 내려간 사이 밥이 장난으로 페달을 밟는 바람에 굴러내려간 차에 치여 아버지가 목숨을 잃게 된 일이다. 그 날 이후로 밥은 평생 죄책감 속에서 자존감 낮고 소심한 성격으로 살아오고 있다. 이런 밥을 짐은 놀리고 구박을 하기 일쑤이지만 그런 형에게 제대로 반발도 하지 않는다. 

이제 중년이 된 삼 남매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수전의 아들이 저지른 사고로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짐은 일도 진전이 없고 아내 헬렌과의 갈등도 깊어지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밥에게 엄청난 사실을 실토하게 된다. 어릴 때 아버지를 죽게 한 것은 밥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기억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형의 말만 듣고 자기 잘못으로 알고 살아온 밥은 당장 혼란에 빠지고, 불륜을 저지른 일이 아내 헬렌에게 들통이 난 짐은 결혼 생활도, 직장도 잃고 외곽의 소도시로 떠나 혼자 지내게 된다. 

수전의 아들 잭은 짐과 밥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건의 증인인 소말리족 출신 주민의 선처 덕분에 기소를 면하게 된다. 


5.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품 맞아?

이전에 읽은 두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와 <루시 바턴>에 비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가족 내 갈등에 플러스 사회적, 인종적 문제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주요 소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 작품들의 시야를 한 단계 더 넘어 높아진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이런 사회 문제, 인종 문제, 이민자 문제에도 관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읽어가는 동안 낯선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올해 70세가 된 작가가 계속 소설을 발표한다면 아직도 새로운 세계를 읽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하지만 소재가 달라지고 이슈가 달라지더라도 작품을 맺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을 보는, 인간을 보는 작가의 바탕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역자 후기를 인용해본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늘 다시 균형을 찾는 쪽의 결말을 선택하는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불안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흔들림이 잠잠해져 화합의 상태가 되려면 어떤 시선들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572)


읽는 사람의 불안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잠재워주며 마친다. 어떤 과정을 거쳐왔든, 그것이 삶의 어둡고 절망적인 경로일지라도 결국 인간은 희망 쪽으로 키를 잡아 그쪽을 향하여 일어서는 힘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 무너진 듯 보이는 상황이지만 금방은 아니더라도 주인공은 어떡해서든 다시 일어난다.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가 아니라,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서.


아무리 어둠이 새어들어와도 이곳에는 늘 불 켜진 창문들이 있었고, 각각의 불빛은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밥 버지스,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162)



"어떻게 하면 좋지, 밥? 나는 이제 가족이 없어."

"형은 가족이 있어." 밥이 말했다. "형을 미워하는 아내가 있잖아. 형한테 잔뜩 화난 자식들도 있고, 형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동생들도 있고. 머저리같이 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머저리가 아닌 조카도 있고. 그런 게 가족이야." (536)


자신이 이미 만들어낸 작중 인물들을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모이게 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작가는, 진정 그 주인공들에게 하나하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제 드디어 이 책으로 넘어간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